목록Scribble (245)
redGen's story
조국 사태를 보면서 조국의 말과 행동의 이중성에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열심히 남을 비판하고 제도를 비판했으면 자기 가족도 돌아볼 일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조국에 대해 실망한 부분이 크다. 하지만 조국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돌팔매질을 하는 것들이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죄과에 비해 조국이 더 나쁜 놈이라는 식의 발언은 기가 차고 코가 찰 말이다. 조국에게 잘못된 점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정부의 의견에 반대하는 유명인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밥줄을 끊고,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여론을 조작하고,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협박하여 간첩으로 몰아간 새끼들이 조국을 향해 자신들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씨부리는 것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응, 조국 어찌 보면 나쁜 놈 맞아..
예전엔 나이가 들수록 지혜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근거가 없는 말인것 같다. 사실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가는 나이는 10대후반에서 20대초반이다. 나도 이제 암기능력이 떨어지고 뇌회전이 빠르지 않다. 하지만 그 나이대가 가장 지혜롭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사회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론과 다르다.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실제 삶에서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수많은 특이사례들이 존재한다. 20대를 지나면서 우리는 그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지 배우게 된다. 그런 경험들이 보완된 후에 좀 더 성숙하고 세련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40-50대가 가장 지혜로운 시기가 아닌가 한다. 그 시기를 지나면 ..
조국 아내를 밤10시 조금 넘어서 기소해두고 12시까지 엠바고, 그리고 국개의원은 가족이 기속당하면 후보사퇴할꺼냐고 종용. 검찰 압색한 자료들을 국개의원들이 가지고 있음. 검찰이 수사한 내용을 조중동 등 황색언론에 흘림. 조국의 딸 아이 입시문제에 특수1/2/3/4부 총출동.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장자연, 버닝썬, 엘시티, BBK,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등등에는 특수부 한개 정도가 수사하는데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피의자 조사도 없이 임의제출한 컴퓨터만으로 기소. 이게 이상하지 않나?
우리나라에 보수와 진보는 없다. 정의도 없다. 네 편 내 편만 있을 뿐이다. 나는 어느 편에 서기도 거부한다.
매년 20~30만 정도 되던 신규고용인구가 올 들어 7만으로 급격히 줄었다. 교육서비스업, 도소매업, 음식점, 건설업 고용률이 많이 줄었다. 최저임금 상승을 통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면 소비가 증가하고 소비가 증가하면 이것이 내수경기 향상을 일으킨다, 이것이 최저임금 상승의 목적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률을 떨어뜨리면 이런 연결고리가 깨어진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고용률이 줄어든 이유 : 노동인구의 감소로 인한 공급감소, 임금상승으로 인한 수요감소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공급감소는 가격(임금)상승, 수요감소는 가격상승을 일으킨다. 최저임금상승율 = 물가상승율+경제성장율+α (α를 얼마로 볼 것인가) → 최저임금상승율은 고용율을 떨..
우리가 일반적으로 의식을 이야기할 때 뇌손상을 받아 식물상태가 된 사람에게는 의식이 없다고 한다. 또한 뇌의 일부분이 손상되면 특정 감각을 느낄 수 없거나 기억의 일부분이 소실되거나 정상적인 논리과정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보면 우리의 의식은 뇌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뇌의 활동은 신경의 전기적/화학적 활동에 의한다. 그렇다면 컴퓨터에도 의식이 있는가?
토론이나 논쟁의 목적은 승리가 아닌 진보가 되어야 한다. ※ 성숙한 토론을 하는 방법.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지향점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그 해석이 다르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토론자로서 가장 나쁜 자세는, 나의 해석만이 옳은 해석이라고 믿는 태도와, 상대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잣대를 무가치하다고 폄훼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해석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조롱을 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하고 올바른 토론을 방해하는 요소다. 그렇게 해서 일종의 배설적 쾌감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토론으로서는 전혀 가치가 없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 고민을 하면서 내가 과거에 왜 그토록 토론을 하면서 분노했는지 알게 되었고 그런 나의 모습에 부..
문재인 정권 들어서고나서 언론이 민주당에 장악당했다는 사람이 있던데, 지금 조국 관련 기사가 1400개 정도 나왔다고 한다. 대선에서 후보자 검증할 때도 이 정도로 기사 안나온다. 이런데도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ㅎㅎㅎ 웃긴다, 그저.
지지하는 정당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을 꼽으라면, 도덕성과 경제성과를 들 수 있다. 자한당은 경제성과를, 민주당은 도덕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그 지지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자한당은 민주당을 향해 실력도 없는 바보멍청이라고 욕하고, 민주당은 자한당을 향해 양심도 없는 탐욕덩어리라고 말한다. 과연 그들의 말처럼 자신들은 100점, 상대는 0점짜리인가? 나는 도덕성에 있어서 민주당과 자한당에 각각 40점, 30점을 주고 싶다. 그리고 경제성과에 있어서는 60점, 70점(그나마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포함해서)을 주고 싶다. 실제로 두 당은 경제성과나 도덕성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나는 정당이 아니다. 하지만 그 지지자들은 두 당이 완전히 다른 정당이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에 있어 상대정..
조국이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자한당 의원들을 (불법이 아닌)외압의 정황이 보일 때 비판하지 않았었는지 생각해 봤음 좋겠다. 마찬가지로 자한당 의원들의 자녀 채용비리나 입학특례 의혹이 불거졌을 때 그걸 괜찮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조국의 딸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것이 일관성 있는 판단인지 생각해 봤음 좋겠다. 정치인들의 내로남불이야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수준은 좀 더 높아져야 하지 않겠나.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들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
신을 섬겨온 시절, 우리는 같은 신을 섬기며 같은 경전을 읽으며 같은 율법을 지켰지. 그렇게 사는 곳이 달랐던 너와 나였지만 우리는 하나로 뭉쳤어.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신이 되었어. 계급은 하나 둘 무너져내리고 서로를 평등하다 믿었어. 누구에게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믿었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옳다 생각했어. 또 다시 시간이 흐르자 신의 자리를 돈에게 내어주었어. 돈이란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자연속에 존재했던 것인냥 우리를 원래 지배했던 것인냥 믿고 따르기 시작했지. 지금은 알아, 신도, 자유평등박애도, 돈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서로 믿기로 한 이야기일 뿐이란걸.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해도 우리는 이 거짓에 의탁해 살아온 인생살이라 쉽게 부인할 수 ..
나도 빨갱이 혐오와 친일혐오 둘 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산주의를 지지할 수도 있고, 일본을 찬양할 수도 있다. 현 정부를 비판할 수도 있는 건 물론이고. 하지만, 친일을 혐오하는 현상에 대해 비판하고 몸서리쳐 하면서 지난날 공산주의를 혐오해왔던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 채 남의 눈의 티만 찾는 격이다. 이제는 좀 성숙해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나는 복지에 대해 호의적인 편이다. 하지만 가난한 이를 위한 원조가 어떻게 쓰이는 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복지는 가난한 이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생산적인 사람들을 생산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아픈 사람들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고, 의지가 꺾인 사람들에게 의지를 심어주는데 복지가 사용되어야 한다. 단순히, 가난한 이들을 부유하게(또는 덜 가난하게) 만드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국가의 복지정책은 망하는 길로 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간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임금의 격차가 다르고 노력 여하에 따라 벌어들이는 수입이 생기는 것을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불공정의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능력과 역할에 따라 다른 수입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재화가 나눠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근본적으로 합리적인 분배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운동장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로 토지의 사유화를 막아야 하고, 둘째로 화폐의 발행을 통제해야 한다. 토지의 사유화를 허용한 상태에서 부가가치의 상승을 거기에 기여한 대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유효통화량이 제멋대로 늘어나는 상태에서도 부의 부적절한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수는 없다. 이 두가지 문제가 선결되지 않으면, 경제성..
최근 피터 드러커의 저서를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았던 말은, 기업/조직/사업은 사회내에서 존재하며,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의 필요를 위해 조직이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조직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그리고 흑자경영은 조직의 의무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해도 경영의 잘못으로 인해 조직이 재정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은 사회에 손실을 끼치는 행위이다. 내가 속한 조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병원은 "서로 어울려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존재하고, 그것이 우리 병원의 소명이다. 성과가 중요한데, 병원내에서 내가 속한 내과는 어떤 성과를 좇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성과는 무엇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성과에 대한 평가를 할 것인가?
어제 월례회를 보면서 그동안 재활 참여자들을 몇년이나 봐왔지만, 내가 그들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경의 sensory와 motor가 모두 손상된 사람이 motor를 회복하기 위해 재활하는 과정에 sensory도 같이 살아나면서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어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밥 한 숟가락 떠먹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제 비로소 깨달았다. 편견과 오해, 무지를 많이 극복하고 싶지만 아직 내게는 요원한 길이다. 더 많이 소통하고 겪고 부딪혀야 할 것 같다.
모두가 동의하는 당위명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선악과 옳고 그름의 판단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늘 변해왔다. 그래서 내가 당연히 옳다고 믿는 가치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 왜 그래야 하는가? 라고 묻는 질문에는 속수무책, 아무런 답을 내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런 가치관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중에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따르고, 그것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투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변호하고 옹호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다.
시민으로부터 폭력에 대한 권한을 이양받은 국가권력이 그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시민들의 공분을 제대로 삭여주지 못한다면, 리바이어던에 의해 통제된 시민들의 폭력이 언제 튀어올라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게 될지 모른다. 미투 운동으로 그동안 불편하고 무례하게 행해져 왔던 성추행과 언어폭력이 처벌받고 있는 시대에, 멀쩡한 여대생을 유인, 납치하여 폭행하고 마약투여, 강간하는 것도 모자라 신고하지 못하도록 불법 촬영한 영상으로 협박한 사안에 대해 ‘혐의없음’이라는 딱지로 돌려보내는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지나가는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만진 혐의로 2년을 선고받는데, 형평성을 기하자면 앞의 범죄에 대해서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사지를 말에 묶어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판인데, 아무도 처벌 받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