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묵상 (8)
redGen's story
예수님이 끌고가던 십자가를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지고 예수님을 뒤따라가게 했다. 많은 사람들과 여인들이 예수님을 뒤따라가며 슬퍼했으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로 인해 슬퍼하지 말고, 너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고난보다 더 힘든 심판과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자신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다.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하나님의 아비된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마음은 또 어떨까? 태어난 것만 못한 인생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끼는 인생이 되어야지, 죽음보다 못한 인생이 되어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고백하는 삶이 되어서야 되..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유대인들이 요구하는 죗가를 치를 만한 죄를 찾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세번이나 풀어주겠다고 공포했다. 그러나 대중은 빌라도가 그렇게 할 때마다 큰 소리로 "예수를 없애라! 그리고 바라바를 대신 풀어주라!"고 외쳤다. 그리하여 결국 빌라도는 대중의 요구대로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락했다. 옳은 일과 그른 일,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 이런 일들 사이에서 우리는 고민하고 선택하고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하며 즉흥적일 때가 많은가? 나의 선택과 행동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중이 원한다고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다. 거기엔 인기와 지지와 명예와 권력이 있는 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우리를 박해하고 감옥에 가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핍박의 때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그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적대자들이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러한 핍박을 참고 견디면 우리 영혼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일들 후에 전쟁과 기근, 지진, 역병, 하늘의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살면서 예수님 때문에 핍박당한 적이 있는가? 없다. 왜 없는가? 내가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때문에 우리를 핍박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도가 세상의 규율과 법칙에 반하기 때문인가? 내 안에 남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도가..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한 여인이 일곱 남자와 결혼하고 죽으면 그는 누구의 아내입니까?"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부활한 사람들은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다. 너희는 부활이 없다고 믿으나,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안에서 모세에게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부활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인지 알지 못하나, 부활에 소망을 두고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부활 후 우리의 모습은 지금의 삶의 굴레를 그대로 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 있을 것이다. 나는, 또한 우리는 죽은 후에도 살아 있을 것..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잡고 싶었으나, 백성이 두려워 로마 총독의 치리권과 사법권에 넘기려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아첨하며 의인인 척 접근하여,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물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셈을 알아채시고,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며 접근하는 사람들의 겉모습에 속지 않으시고, 그들의 간계를 파악하셨다. 사람의 겉모습만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특히나, 아첨하는 말, 듣기좋은 말에 스스로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자고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모든 것은 주인에게로 돌아가야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시간과 물질, 정력은 다시 주님께 돌려드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시고 성을 보시고 우셨다. 그리고,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네가 멸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네게 찾아온 때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그 땅에서 사역하실 때 그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그들은 여전히, 메시아의 초림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눈뜬 장님과 같이 그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손길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말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후, 휘장이 갈라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은 허물어졌다. 이제는 하나님의 때가 따로 있지 않다.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고, 어느 곳에나 함께 하시며, 내 안과 밖에 충만히 존재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실 때, 두 제자를 먼저 보내어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오라고 명하신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우고, 가실 때에 그 제자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펼친다. 겉옷은 자신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을 나타낼 수 있는 도구다. 그리고 겉옷은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겉옷을 벗어서 나귀위에 안장처럼 걸쳐 놓았고, 나귀가 가는 길에 레드카펫처럼 깔아놓았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시는 그 때(지금)는, 나의 신분, 나의 사회적 지위, 나의 보호막을 모두 벗어 놓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만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나의 신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1므나(=100드라크마=약1000만원?)를 맡겼다. 귀국 후, 왕은 종들에게 맡긴 돈이 어떻게 되었나를 물어보았다. 그 중 어떤 이는 10므나, 어떤 이는 5므나를 남겼으나, 어떤 이는 맡긴 돈 그대로를 들고 있었다. 왕은 1므나 가진 종의 돈을 빼앗아, 열배로 불린 종에게 주고,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원수들을 끌어내어 죽였다. 이 귀인이 각 종에게 맡긴 돈은 무엇을 비유하는 것일까? 이 구절의 바로 앞의 내용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귀인이 종에게 맡긴 돈은, 복음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우리는 각자 하나님의 복음을 들은-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