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Disuse/Christian archive (38)
redGen's story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우리를 박해하고 감옥에 가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핍박의 때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그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적대자들이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러한 핍박을 참고 견디면 우리 영혼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일들 후에 전쟁과 기근, 지진, 역병, 하늘의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살면서 예수님 때문에 핍박당한 적이 있는가? 없다. 왜 없는가? 내가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때문에 우리를 핍박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도가 세상의 규율과 법칙에 반하기 때문인가? 내 안에 남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도가..
시편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임과 동시에, 다윗의 주Lord이시다. 흡사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그것은 안이면서, 밖이 되는 현실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므로 다윗의 주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주시므로, 다윗의 자손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임과 동시에, 다윗의 주시다. 우리는 종종 머리로 이해되어지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그러할 때가 많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어 지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거나, 부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우리의 지식 체계..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한 여인이 일곱 남자와 결혼하고 죽으면 그는 누구의 아내입니까?"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부활한 사람들은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다. 너희는 부활이 없다고 믿으나,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안에서 모세에게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부활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인지 알지 못하나, 부활에 소망을 두고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부활 후 우리의 모습은 지금의 삶의 굴레를 그대로 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 있을 것이다. 나는, 또한 우리는 죽은 후에도 살아 있을 것..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잡고 싶었으나, 백성이 두려워 로마 총독의 치리권과 사법권에 넘기려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아첨하며 의인인 척 접근하여,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물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셈을 알아채시고,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며 접근하는 사람들의 겉모습에 속지 않으시고, 그들의 간계를 파악하셨다. 사람의 겉모습만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특히나, 아첨하는 말, 듣기좋은 말에 스스로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자고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모든 것은 주인에게로 돌아가야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시간과 물질, 정력은 다시 주님께 돌려드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시고 성을 보시고 우셨다. 그리고,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네가 멸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네게 찾아온 때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그 땅에서 사역하실 때 그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그들은 여전히, 메시아의 초림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눈뜬 장님과 같이 그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손길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말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후, 휘장이 갈라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은 허물어졌다. 이제는 하나님의 때가 따로 있지 않다.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고, 어느 곳에나 함께 하시며, 내 안과 밖에 충만히 존재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실 때, 두 제자를 먼저 보내어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오라고 명하신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우고, 가실 때에 그 제자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펼친다. 겉옷은 자신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을 나타낼 수 있는 도구다. 그리고 겉옷은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겉옷을 벗어서 나귀위에 안장처럼 걸쳐 놓았고, 나귀가 가는 길에 레드카펫처럼 깔아놓았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시는 그 때(지금)는, 나의 신분, 나의 사회적 지위, 나의 보호막을 모두 벗어 놓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만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나의 신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1므나(=100드라크마=약1000만원?)를 맡겼다. 귀국 후, 왕은 종들에게 맡긴 돈이 어떻게 되었나를 물어보았다. 그 중 어떤 이는 10므나, 어떤 이는 5므나를 남겼으나, 어떤 이는 맡긴 돈 그대로를 들고 있었다. 왕은 1므나 가진 종의 돈을 빼앗아, 열배로 불린 종에게 주고,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원수들을 끌어내어 죽였다. 이 귀인이 각 종에게 맡긴 돈은 무엇을 비유하는 것일까? 이 구절의 바로 앞의 내용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귀인이 종에게 맡긴 돈은, 복음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우리는 각자 하나님의 복음을 들은-또..
내가 어렸을 때 교회에 가면 교회에서는 복음을 가르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얘기했었다. 지금은 새신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구원관에 대해 비슷한 논조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과연 성경에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내 생각에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을 틀린 말인 것 같다. 마틴 루터와 장 칼뱅의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는 개혁주의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개혁주의 신앙은 믿음의 근거가 성경에 있다고 보고, 교리와 교훈이 성경의 그늘에서 벗어나 있을 때, 다시 성경의 그늘 안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르친다. 성경 곳곳에서 구원은 믿음에 의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현대의 기독교, 명목상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바로 이방인을, 나와 다른 자들을, 나와 가치가 다른 자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정으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있는 교회에 오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는 식이 아니라, 이방인도 올 수 있고, 죄 지은 자도 올 수 있고, 저 같은 사람도 이야기할 수 있는 교회, 이웃의 이름으로 허락해주고, 사랑의 이름으로 감싸주는 교회 말입니다. 이것이 리더십이고, 이것이 세계를 제패하는 가장 큰 힘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끼리 비기독교인에게 담을 쌓고, 배제하고, 배타하고, 길 가는 사람에게 사탄이라고 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 의문은 지성을 낳지만, 믿음은 영성을 낳습니다. ... ... 사막처럼 척박한 환경에서의 굶주림과 갈증이 정신적으로 ..
텍스투스 레셉투스의 정체(正體) 박 창 환 (전장신대교수, 신약학) 1. 이 글의 목적 우리 한국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사랑한다. 아니 참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존중하고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어느 성경이 성경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곤란해진다. 많은 신자의 경우 성경이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성경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대개 번역된 성경에 불과하다. 가령 한국 크리스천의 경우라면, 오늘 흔히 교회 강단에서 읽고, 널리 보급되어 있는 개역 한글판(대한성서공회 1961년판)을 성경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의 크리스천들은 또 그들이 흔히 읽고 사용하는 번역 성경을 성경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통계에 의하면 성경은 2,000여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그 번역..
우루과이 한 작은 교회 벽에 적혀 있는 글 --- "하늘에 계신" 하지 마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딸로 살지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
테 텔라스타이 장사꾼이 장사 밑천을 빌려서 그 돈을 갚지 못해 몇 년을 벼뤄오다 스스로의 노력이나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빚을 다 갚아버렸을 때, 어떤 예술가가 몇 주, 몇 달, 몇 년간의 작업 끝에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 외치는 한 마디, "테 텔라스타이" 헬라어로 "다 이루었다"는 뜻이다. 그 땀방울, 그 기쁨...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던지신 한 마디, "테 텔라스타이..."
공부를 하다 이런 예화를 보게 되었다. 한 젊은이가 아버지와 함께 길을 가다가 길 중간에 통행에 불편을 주는 커다란 돌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젊은이는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옮겨놓기 원했고 자신의 힘으로 그 일을 하려고 바위를 잡고 힘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도 바위는 움직일 줄을 몰랐고 녹초가 됀 청년에게 그의 아버지가 물었다. "얘야 넌 네가 가진 힘 전부를 다 사용한거니?" 그러자 젊은이가 대답했다. "네 정말 제 전력을 다했어요 아버지" 잠시 침묵을 하던 청년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 얘야! 넌 네가 가진 힘 중에서 나를 이용하지 않았잖니. 넌 최선을 다한게 아니야." 그렇다. 내가 가진 본신의 힘만이 내가 가진 전부인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인적 자산과 기꺼이 도움을 청..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내가 아들들의 순교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할 질문... 1. 완전히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가? 2.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성령의 소욕으로 제어할 수 있는가? 3. 말씀과 기도의 은사를 받았는가?
동래보건소로 파견을 나가서 지역 건강증진사업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요가강연을 듣게 되었다. 강사분은 요가의 동작만 강의하신 것이 아니라 그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걸 말씀하셨다. 그걸 들으면서 확실히 요가가 인도철학-뉴에이지즘,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는-에 밑바탕을 둔 운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거부감도 생겼지만, 그 중에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깨달음도 주셨다. 요가 수행에는 총 8단계의 수련과정이 있는데 그 단계의 마지막 과정인 8단계가 '삼매'란다.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독서삼매경'에서의 삼매가 바로 그 삼매다. 삼매란 자아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어떤 대상에 깊이있게 몰입하는 단계다. 이 삼매의 단계는 요가를 엄청나게 오랜 기간 수련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경지이고, 강사 그 분도 7..
눅 18:9~17 "하나님이여! 저는 다른 사람들, 곧 국회의사당에서 정치는 안하고 제 살 궁리만 하고 제 이속만 챙기는 사람들, 또 아무 개념 없이 인생관, 가치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선악의 구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옆사람에게 피해 줘가며 눈치 없이 지내는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나마 하나님도 알고 인생의 목표와 인생관도 있고 매 주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도 드리며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남에게 드러내지 않아도, 아무리 거룩한 모습을 잘 지킨다해도, 그것이 곧 자기 내면의 교만과 이어진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나는 학교 친구들보다 나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내 주위 사람들보다 더 많은..
눅 18:18~30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다.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킨 관원이 예수님께 영생 얻는 방법을 물으려고 왔다. 그 관원은 마19:20, 막10:17을 통해 부자 청년으로 등장한다. 그는 율법을 잘 알고 실천하며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데다가 영생을 얻고자 애쓰는 진지한 사람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또 현대 교회가 갖고 있는 시각으론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그의 간증과 기사가 실려나가고, 묻사람들에게 도전이 되는 그런 사람이다. 젊어서 부자 관원이 될 정도의 실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그런 겸손함까지 갖추고 있다니... 당연히 칭찬과 칭송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지 않으신다. 그에게 소유를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