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16-32) 그 쇳물 쓰지 마라 [문학-시] 본문
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저, 수오서재.
최근에 나에게 시집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제안이 몇 번 있었는데,
'나 주제에 무슨 시를...'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막연히 어렵고,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그 쇳물 쓰지 마라》가 출간되는 소식을 듣고 언젠가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선물로 받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사실, 문단에 등단되어 있지도 않은 일반인(이라는 추정)이 쓴 시집이라는 생각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시집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눈물 흘릴 줄은 몰랐다.
이 시집은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기사들에, 제페토라는 필명을 가진 이가
시 형식의 댓글을 달았던 것들을 모아서 펴낸 책이다.
여러 가슴 아픈 뉴스들에 시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댓글 시인 제페토.
이 시집을 계기로 앞으로 시도 공부해 보고싶고, 다른 시집들도 많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 고맙다.
딸 아이를 잃은 시각장애인이 쓴 시에 대한 기사를 읽고
< 명치 >
만져지는 시란
어떤 느낌입니까
그 두텁고 무덤덤한 종이 위에
오돌토돌한 요철을 나열한 다음
느린 손끝으로 읽어내는 일 말입니다.
가을여행을 더나고 싶었다, 라고 읽는 일
골목길에서 수없이 울었다, 라고 읽는 일
딸이 세상을 떠났다, 라고 읽는
그런 일 말입니다
손끝에 만져지는 슬픔이란
어떤 느낌입니까
혹시 잠 못 드는 밤
명치끝에 만져지는 그것은
따님의 이름입니까
가난이 대물림되는 한국 사회, 빈곤탈출률이 8년 새 최저라는 기사를 읽고
< 지루한 이야기 >
사람들은 죄가 없고
아이들을 생산했다
이름 모를 장난감과 효과 모를 교육에
돈을 치렀으므로 죄의식 따위는 버려도 될 만한 명분이 있었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내 몸 하나로도 힘들었고
가족의 추억에서 배제되었고
아이들은 죽을 때까지 제 부모를 미워했다가
가여워했다가
그리워했다가
술 취했다가
여간해선 뒤집어지지 않는
세상은 삼각형 구조였고
긍정을 훈련받은 아이들은
꼭 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김없이 아이들을 생산했고
지루한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를 않고
선천성 기도 무형성증으로 태어나 35개월의 짧은 생을 살다간 해나를 기리며
< 해나를 보내며 >
비보를 듣고서
울컥 올라오는 것이
너처럼 목에서 걸렸다
어부로부터 도망친 새끼 가마우지의 자유를 떠올리며
축하한 날이 엊그제인데
어찌해볼 도리 없는 지금에 와서는
떠났다는 말로나마
위안 삼아야겠다
도착할 곳이 있다는 그 말.
아주 이별은 아닐 거라는
비록 먼 약속을 생각해낸 최초의 사람에게
감사해야겠다
못해도 며칠 동안은
닫힌 이후로 한 번 열린 적 없는
내 견고한 무신론의 뒷문을
잠시 열어놓으며
안녕, 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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