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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5) 몰입의 즐거움 [인문학]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21-35) 몰입의 즐거움 [인문학]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

재도담 2021. 6. 30. 18:50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저, 이희재 역, 해냄, 232쪽.

이 책을 읽기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무료함을 느끼는 것은 적절한 수준의 도전과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는 대부분의 것들은,

적절한 난이도의 문제가 주어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과 육체가 협력하고, 그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맛보는 과정이다. 

(게임이든, 운동이든, 시험이든, 업무든 마찬가지인듯)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적절한 수준의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그 수준이 다르고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문제는 다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은 동일한 것 같다. 

 

 

1. 일상의 구조

▷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지만, 그럼 뭣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오든
▷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삶의 길은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삶이란 무엇일가? 분명히 한낱 생물체로서의 생존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까운 시간과 재능을 허비하지 않고 나만의 개성을 한껏 발휘하면서 복잡다단한 이 세상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충만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리라.
▷ 인간이나 원숭이나 인생은 3등분된다. 한두 시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체로 1/3은 수면, 1/3은 먹이 구하기, 1/3은 놀이로 구성된다.
▷ 사람의 신경계는 한순간에 아주 적은 양의 정보만을 처리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외부 사건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부자도 바지를 벗을 때는 한 다리씩 빼는 법'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한 번에 한 입을 베어 먹고, 한 번에 한 노래를 듣고, 한 번에 한 신문을 읽고, 한 번에 한 사람 하고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접할 때 쏟아부을 수 있는 에너지의 포화점, 곧 주의집중의 절대적 상한선 안에서만 우리의 인생은 전개된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도 사람들이 시간을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는 놀라우리만큼 비슷하다.
삶은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이다. 그런데 경험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시간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할당하고 투자할 것인가를 지혜롭게 결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물론 시간 투자가 우리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인류의 일원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문화나 사회의 성원이기에 반드시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엄격한 제약 조건이 있다. 그러나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은 어느 정도 열려있고 그 속에서 시간을 배분할 수 있다.
▷ 이 책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의식에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사가 인간 공통의 조건, 사회적, 문화적 범주라든가 우연성에 의해 결정된다면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성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리라. 다행히도 개인이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현실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운명의 굴레를 박차고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 우리가 돈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주어 삶의 제약에서 우리를 어느 정도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 사람은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고 고대 사상가들은 주장하였다. 그리스 철학자들에 따르면 학문, 예술, 정치 같은 자기개발 활동에 시간을 투여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된다. 실제로 학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school '은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scholea'에서 나온 것이다. 여가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곧 학문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2. 경험의 내용

▷ 마르크스, 사르트르, 푸코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지만, 나는 어떤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무시하거나 정반대의 뜻으로 해석할 권리가 없다고 본다.
▷ 내적 동기 부여(이것을 하고 싶다)든 외적 동기 부여(이것을 해야 한다)든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집중을 해야 할 어떤 목표도 갖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하는 상태보다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준다. 동기 부여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우리에게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 감정은 유기체를 접근이나 회피의 태세로 움직여서 주의를 집중시키며, 목표는 욕망하는 대상의 모습을 제시하여 주의를 집중시킨다. 사고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이미지의 연쇄를 낳아 유기체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자신의 목표를 다스리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은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그것은 자연발생적 욕망에 몸을 맡기는 것과도 다르고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는 것과도 다르다. 최선의 방안은 자기 욕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편견을 인식하면서, 사회적, 물질적 여건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목표를 겸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이보다 덜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보다 과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좌절을 자초하는 셈이다.
▷ 정신의 작용을 깊이 있게 파고들려면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집중하지 못하면 의식은 혼돈에 빠진다. 마음은 평상시에는 정보의 무질서 상태에 놓여 있다. 생각은 논리적 인과 관계에 따라서 가지런히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두서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혀 있다. 집중하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노력을 한곳으로 모으지 못하면 사고는 아무런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지리멸렬해진다.
▷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성숙한 지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재능의 개발에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집중력이야말로 모든 사고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 우리 삶의 많은 시간은 감정, 목표, 사고가 서로 흐트러져 있고 의식 안에서 격투를 벌이고 있지만, 때때로 이 세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져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것을 ‘몰입 경험’이라고 부른다. 몰입을 유발하는 활동을 ‘몰입 활동’이라고 부른다.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동력과 기회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보통 사람은 하루가 불안과 권태로 가득하지만 몰입 경험은 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강렬한 삶을 선사한다.
목표가 명확하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나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 각성 상태에 놓인 사람은 어떻게 하면 몰입의 상태로 넘어갈 수 있을까? 실력 연마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자신감의 상태에 놓인 사람은 어떻게 해야 몰입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 경우에는 과제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렇듯 각성과 자신감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상태다. 그 밖의 상태에서 몰입으로 넘어가기는 이보다 어렵다.
그러므로 몰입 경험은 배움으로 이끄는 힘이다. 새로운 수준의 과제와 실력으로 올라가게 만드는 힘이다.

3. 일과 감정

▷ 삶의 질은 일평생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이 저마다 하는 행동은 경험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가장 보람찬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루의 활동을 설계해야 한다.
▷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남과 어울릴 때 우리 주의력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 구조화된다. 타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목표를 제공하고 행동의 결과를 곧바로 알려주는 효과를 낳는다. 남에게 시간을 물어보는 아주 간단한 교섭도 어느 정도의 사교술이 동원되어야 하는 결코 만만찮은 행위다. 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느냐 못 남기느냐는 목소리, 웃음, 몸짓에 크게 좌우된다. 친밀한 사이일수록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 있고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할 수 있다. 이렇게 타인과의 교제에는 집중이 필요하다. 반면에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혼자 있을 때는 정신력을 집중할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서서히 무너지고 무언가 격정거리를 찾게 된다.
눈부신 일상생활은 결국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우리가 매일 하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어떤 활동,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어떤 사람 옆에서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를 포착해야 한다.

4. 일의 역설

▷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를 싫어하면서도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역설을 경험한다. 
▷ '필요하지만 내키지 않는 일' vs '쓸모없지만 즐거운 일'. 
▷ 최악은 일 같지도 않고 놀이 같지도 않은 것. 
▷ 일은 게임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그래서 일에서 몰입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명확한 목표와 규칙을 가지고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이상적인 경우는, 일의 난이도와 일을 하는 사람의 실력이 엇비슷한 경우다. 
일에서 얻는 본질적 보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전문직인데, 이는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과제의 나이도도 조정할 수 있으며, 개성이 깃들 여지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값지게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다. 문제는 일을 어떻게 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통해 어떤 경험을 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5. 여가는 기회이며 동시에 함정

▷ 여가는 일보다 즐기기 어렵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쓰는 요령을 모르면 삶의 질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로 저절로 터득할 수 있는게 아니다. 
▷ 목표가 없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차츰 의욕과 집중력을 잃는다. 
▷ 능동적 여가(몰입)의 즐거움이 수동적 여가(멍때리기)의 즐거움보다 더 크지만, 몰입에는 '에너지 허들'이 필요하다. 너무 피곤하거나 불안한 상태에서는 이 에너지 허들을 넘기 힘들어 많은 이들이 TV를 틀어놓고 멍 때리기로 시간을 소진한다. 
▷ 여가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일을 할 때처럼 창조력을 발휘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사람을 성숙시키는 능동적 여가는 저절로 굴러오는게 아니다. 
▷ 한 사람의 삶이 알차려면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한 사회의 질적 수준은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6. 인간관계와 삶의 질

▷ 대체로 행복, 자신감, 의욕은 타인(친구)과 함께 있을 때 증가한다. 혼자 있을 때 유일하게 올라가는 요소는 집중력이다. 
▷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정서적 안정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가정에는 두 개의 거의 상반된 특성이 공존한다. 그것은 원칙과 자발성, 규율과 자유, 높은 기대와 무조건적 사랑의 공존이다. 
▷ 창조성이 뛰어난 인물들은 대체로 외향성과 내향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외향성을 통해서 타인에게 자극을 받고, 내향성을 통해 집중력 있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7. 삶의 패턴을 바꾼다

▷ 낙천적/비관적 기질이 선천적인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 시나리오는 쾌활함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데서 오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선천적인 기질이 어떠하건 몰입의 경험은 디자인할 수 있고, 몰입 경험 빈도의 증가는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집중력, 자부심, 희열, 적극성을 키워줄 수 있다. 
▷ 한 사람의 삶에서 직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하므로 사람은 직장 생활에서 당연히 즐거움을 얻고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보수와 안정성만 높다면 일이 즐겁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방기다. 
▷ 직장 일을 고역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① 하나 마나 한 일을 한다는 불만, ② 지겨운 일을 밥 먹듯이 한다는 불만, ③ 업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불만. → 이러한 불만의 요소를 제거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직업이 주는 의미는 남이 부여할 수 없고, 스스로 부여해야 한다. 
▷ '일'과 '대인관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힘들다. 인간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히 균형을 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일 못지 않게, 가족이나 친구관계에도 에너지를 쏟아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 타인에게 이득이 되도록 돕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도 가장 득이 된다. 

8.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

▷ 그 일 자체가 좋아서 할 때 그 일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를 우리는 '자기목적적'이라고 한다. 
▷ 자기목적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수동적으로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별로 얻지 못한다. 사람은 몰입을 낳기에 좋은 활동, 곧 정신노동이나 능동적 여가 활동을 할 때 비로소 몰입을 경험한다. 
▷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집중력/즐거움/행복감/자부심/미래의식이 높다. 
▷ 본인의 입으로 털어놓는 행복감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썩 잘 반영하지 않는다. 
▷ 관심의 방향을 좌우하는 힘은 유전 명령과 사회 관습, 우리가 어릴 적에 익힌 버릇이다. 삶의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다. 

9. 운명애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길은 주인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꼭두각시처럼 남이 이끄는대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자진해서 원하는 일을 늘려야 한다. 무엇을 원한다는 사소한 마음의 움직임이 집중력을 높이고 의식을 명료하게 만들며 내면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운명애는 자기 행동의 주인 의식을 가지려는 자세에 다름 아니다. 
▷ 성장의 과정은 절정감으로 귀결된다. 자기실현에 이른 사람은 자유롭게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자기 의지대로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