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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6) 두렵고 황홀한 역사 [인문학-종교/역사] (바트 어만)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21-26) 두렵고 황홀한 역사 [인문학-종교/역사] (바트 어만)

재도담 2021. 5. 29. 16:00

두렵고 황홀한 역사 

바트 어만 저, 허형은 역, 갈라파고스, 464쪽.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고증한 책. 

정독하지는 않았고, 발췌독+속독 했다. 그래도 대충 내용 파악은 다 되는 듯. 

 

이 책에 제시된 의외의 논제 중 하나는 이런 관점들의 기원이 기독교 초기까지 거슬러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약에도 안 나오고, 예수가 직접 가르친 것도 아니다. 그럼 어디에서 온 걸까? 이와 관련된 논제는 (그것들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여타 종교들은 고사하고) 고대 그리스도교에도, 그것의 기반이 된 유대교에도 단일한 사후 세계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두 종교 모두(더불어 당대의 다른 종교들 전부) 사후 세계에 관해 놀랍도록 다채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다양한 관점들은 서로 부딪히고 엎치락뒤치락했다. 신약성서 안에서조차 여러 핵심 인물이 서로 다른 갈래인 사상을 설파했다. 사도 바울은 사후 세계에 대해 예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의 사후 세계관은 「누가복음」이나 「요한복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후 세계관과도 달랐다. 그뿐 아니라 그 관점들 중 어느 하나도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도가 품은 믿음의 근간이 된 2세기와 3세기, 4세기 기독교 지도자들의 관점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관점들은 어디에서 발생했을까?

한마디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수십억 인간이 받아들인 사후 세계관들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어찌 공평하고 하나님 또는 신들이 어찌 공정하다 할 수 있는가 고민하면서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빚어낸 개념이라는 얘기다. 죽음이 이야기의 끝일 리 없다. 아무렴 모두가 자기 행실에 걸맞은 대가를 받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이 줄곧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불공정함과 악에 대해 선이 궁극적으로 승리해야 할 당위성을 설명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생각해 낸 개념이었다.

현대 사회의 많은 이가 사후 세계에 대한 특정 믿음(예를 들 면 천국의 영광과 지옥의 불)을 워낙에 자주 접하며 자라서, 그런 상벌의 장소가 아예 지당하다고 느낀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런 장소들이 존재하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다고 느낄 정도다. 이러한 믿음은 감정, 특히 그 어떤 감정보다 더 강력한 희망과 두려움으로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관점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특히 지배적인데) 구약성경이나 역사적 인물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흥미롭다. 후대에 생긴 관점들이라 그렇다. 그러나 그런 관점들이 어째서 서구 문화를 1900년 남짓 지속적으로 지배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내 추측은 우리가 각자 영위한 삶의 질에 따라, 혹은 각자의 신앙적 헌신에 따라 개별적으로 상과 벌을 받는다는 개념이 인간의 매우 뿌리 깊은 요구와 염원을 충족시켰기에 그렇다는 거다. 도덕적 존재인 우리는 이 세상이 말이 된다고, 결국에는 정의가 이루어지며 선이 궁극에는 악을 이길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믿어야만 하고, 또한 그렇게 믿고자 한다.

우리도 죽음을 불안해할 필요 없다. 대신 이 인생을 최대한 오래, 있는 힘껏 사랑할 동기, 가능한 한 최대치로 인생을 즐길 동기, 또한 남들도 그러도록 이끌어 줄 동기로 삼으면 될 일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죽어도 계속 살 것이다. 우리 뇌가 죽은 뒤 의식이 잔존해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인생에 족적을 남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