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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 소설처럼 [인문학/에세이] (다니엘 페나크)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21-09) 소설처럼 [인문학/에세이] (다니엘 페나크)

재도담 2021. 2. 7. 21:38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저, 이정임 역, 문학과지성사, 234쪽. 

<책건문> 

조급하게 얻으려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 곧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얻는 길이다. 

한 때는 아이의 더없는 즐거움이었던 일이 결코 마지못해서 하는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아이가 그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아이 스스로가 그 즐거움을 의무로 삼고자 할 때까지는 말이다.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의무란 모든 문화적 수련 과정이 그렇듯 무상성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해서 어른들 자신도 그 무상의 즐거움에 다시금 새롭게 잠겨볼 일이다. 

다시 읽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늘 새롭게 보아주는 끝없는 사랑의 표시다. 

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다. 그리고 그 무언가란, 다름 아닌 우리가 처한 온갖 우연한 상황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마치 무슨 성벽이라도 두르듯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을 동원하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질문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읽는 것에 대해 조금도 부담을 주지 말고, 읽고 난 책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보태려들지 말아야 한다. 섣부른 가치 판단도, 어휘 설명도, 문장 분석도, 작가에 대한 언급도 접어두라. 요컨대 책에 관한 그 어떤 말도 삼가라.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자신이 어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아이는 곧 학교 교육과 교양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학교에서도 거부당한 학생은 자신이 독서나 교양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만다. 결국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아이는 평생 책과 담을 쌓고 지내게 된다. 

독서를 하면서 가장 먼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다. 

책읽기는 목적이나 실용을 떠난 무상의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이여, 마음을 비워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잔뜩 기대했다간 자칫 모든 걸 잃을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