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미투 운동을 보면서 든 몇 가지 단상 본문
1.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땅에 그동안 소리 소문 없이 얼마나 많은 성범죄가 저질러졌던가. 권력과 위계에 의한 성추행과 성희롱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여성의 인권은 짓밟히고 그들이 느껴야 하는 수치심은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미투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사회 곳곳의 썩은 부분들을 양지로 끌어내줘서 너무 고맙다.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과거의 어두웠던 과거를 용기내어 알려주는 그 분들이 존경스럽다. 피해자이면서도 끊임 없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은 없었는지 돌아보고 괴로워하던 세월은 이제 영원히 사라지길 진심으로 빌어마지 않는다.
2. 하지만, 많은 이들이 무고에 의한 부작용을 우려한다. 나도 그런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걔중에는 분명히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하지 않고도 상대에 대한 악감정이나 앙심으로 누명을 씌우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작용을 감안하고서라도 이 미투 운동이 옳다고 본다. 모든 사회적 운동에는 정작용과 반작용,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거치며 다듬어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뜨거운 물을 먹고 속이 데이면 미지근한 물로 속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물로 속을 달래야 한다. 차가운 물을 먹다 보면 다시 따뜻한 물을 찾게 되겠지만 그렇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노선에 점점 더 가까운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3. 그러나, 미투 운동으로 지금의 성적 불평등이나 추행/폭행을 바로 잡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오래 된 일을 끄집어 내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문화는 어느 한 순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점차적으로 변해 온 것이다. 지금 공공건물 복도나 사람이 많이 모인 광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야만인이나 범죄좌 취급을 당하지만 20년전만 해도 병원진료실, 학교교실, 심지어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20년전에 버스에서 담배를 피운 사람에게 지금의 잣대로 손가락질을 하는 건, 비난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다.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 당시의 성추행이나 강압적인 언사가 옳다고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문화가 그러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년 전 내가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스킨쉽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미니스커트를 입거나 화장이 조금만 진해도 조신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고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스킨쉽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남자가 원한다고 얘기를 했을 때 바로 승낙하는 것도 금기시되었다. 남자가 애정표현을 할 때, 처음에 거절하지 않으면 헤픈 여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여자 동료들에게, 네가 먼저 남자에게 좋다고 고백도 하고 애정표현도 하라고 하면, 도리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연애를 하던 시절 지나칠 정도로 상대의 의사를 많이 물어보는 습관이 있었다. 남자가 뭐 이리 눈치가 없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상대가 원하는 분위기가 보여도 직접 말로 원한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의 의사를 쉽사리 넘겨짚지 않았다. 그래서 밀당을 한다는 오해를 샀을지는 모르겠는데, 그 때 당시의 문화가 그랬다.
4. 나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여자가 당당하게 자신의 성적 취향을 얘기하고 자신의 욕구를 이야기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동안 남자는 얼마나 당당하게 자신의 욕구를 떠벌렸고, 여자는 얼마나 자신의 감정과 본능을 숨겨야 했던가. 우리 자녀가 맞이할 세상은 조금 더 건강하고 투명하고 차별이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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