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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거리 집회를 바라보며

재도담 2017. 12. 23. 00:10

난 의협지도부가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하는데, 계속 보다보니 멍청한건지 사악한건지 구분이 안되기 시작했다. 나름 지식층이라고 불리는 이 집단의 지도부가 정말 저런 전략밖에 생각해내지 못하는건가. 

최근 JSA 귀순병 치료로 이국종 교수와 외상치료센터의 상황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때 만큼 국민들에게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잘 알려줄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을까. 일부 의사들은 이국종 교수를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놈이라고 비난했고, 적절한 시기와 상황 다 놓치고 나서 거리에 나서며 들고나온 슬로건은 제밥그릇 줄어들까 걱정하는 것으로 보일만한 것들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느 국민이 의사들 집회를 보면서 의사들의 목소리에 공감을 해줄까. 또 반대로 바라봐서 의사들중에 다른 직종/노동자들의 거리 시위나 투쟁을 바라보며 그들의 아픔이나 부당한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 공감해보려고 노력한 이들이 몇이나 될지 정말 궁금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전체를 판단해서 미안하지만, 내가 겪은 상당수의 의료인들은 그런 것에 관심 1도 없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직종과 일자리가 망가져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상황이 되고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집회를 할 때에는 손톱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그들의 주장을 밥그릇 챙기기용 몽니 부리기로 여기다가, 이제 와서 '의사가 망하면 환자도 망한다'라는 구호를 내거는 것이 과연 국민들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싶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한창 치과의사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던(?) 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분은 비보험 진료를 일체 안하시는 분이었는데(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3741.html)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은 아마 그 분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강창용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면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이 바로 드러난다. 그것은, 양심적이고 적절한 진단과 치료만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지위를 누리기는 커녕, 직원들을 고용할 수 있는 병원여건도 안된다는 것이다. 강창용 선생님의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수많은 환자가 몰려드는데,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이윤이 발생하기만 해도 그는 당연히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부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환자들이 몰려들수록 병원의 적자 규모는 커져가고, 그는 직원을 고용할 수도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1인의원을 하면서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으로만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의료시스템일까. 왜 이런 분들의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면서 적절한 수준의 의료수가 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질 못하는 것일까. 

의료시스템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의료기관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만 가지고는 생존하기 어렵고,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생존'과 '이윤추구'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시스템의 개혁을 이야기 할 때는 반드시 개혁 방안 안에 의료인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도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의료시스템의 개혁을 위해서는 대정부 전략과 대국민 전략, 투 트랙의 전략이 필요한데, 결국 중요한 것은 대정부 전략이다. 대국민 전략은,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내고 공감을 끌어내어 정부를 압박하고, 또는 정부가 의사들과의 합의를 정책으로 내걸어도 국민들에게 반발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바운더리 전략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정부를 설득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대정부 전략을 세움에 있어 가장 멍청한 짓 중의 하나는, 특정 정당과의 연합을 시도하는 일이다. 삼성도 대선시기가 되면 정부 야당과 제1야당 양쪽에 모두 돈을 뿌린다. 어느 쪽이 당선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의협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에만 줄을 대면 안된다. 거대 정당 양쪽에 모두 줄을 대고 그들을 설득하고 국민을 위해 올바른 의료정책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정치인들 대부분이 의료정책에 무지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의료 시스템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고 있고, 의료 사각지대가 어디서 발생하고, 소비자로서의 환자가 갖고 있는 도덕적 해이가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며, 생명을 다루는 중환자실/응급실 등은 왜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 규모가 커져서 병원 전체가 망하는 지경에까지 가는지를, 알아듣기 쉽게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사회보장이 잘 되어있는 선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고 그것은 현재의 재정구조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건보료를 올리고 국가 예산 중 일부를 의료비로 가져다 쓰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한다. 

건강한 의료기관의 생존을 위한 정책을 세울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문제는 의료인들의 도덕적 해이다. 예를 들어 어떤 좋은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진료 하고 싶어 진료 시간을 늘이기 위해서 의료수가의 인상을 주장한다고 쳐보자. 미국처럼 환자 한명 한명과 충분히 면담을 하고 넉넉하게 시간을 들여 환자의 몸을 진찰하기 위해서는 진료비 수가의 인상이 필수적이나, 진료비 수가를 올려도 어떤 의료인은 30초진료, 1분진료 행태를 지속할 수 있다. 의료인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준비하지 않고 내놓는 의료정책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국민들에게 신뢰받기 힘들고 또 실제로 의료인들의 도덕적 해이를 양산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현재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설명할 때에는 절대 일반 개원의의 상황이나 사립병원의 상황을 가지고 설명하면 안된다. 설사 개원의가 주축이 되어 투쟁하는 집회라 하더라도, 그들이 표면에 내세우는 슬로건과 구호는, 공공의료기관과 환자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곳(이를테면 외상센터나 응급실, 중환자실, 등)의 상황 개선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런 전략은, 의료인들이 국민들을 기만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와닿을 만한 구호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발 지혜롭고, 공익과 국민의 의료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의협지도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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