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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Gen's story

(2017-38) 신화와 인생 [인문학]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17-38) 신화와 인생 [인문학]

재도담 2017. 10. 16. 11:14

신화와 인생 

조지프 캠벨 저, 다이앤 K. 오스본 엮음, 박중서 역, 갈라파고스, 464쪽. 


책을 다 읽진 않았지만, 서문에 주옥같은 말들이 너무 많아 기록하고 싶어 이렇게 옮겨놓는다.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마치 놀이를 하듯 하라.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이든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이다. 

전사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라.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만약 우리가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우리는 단단히 잘못 짚은 셈이다.
이 세계는 완벽하다. 그것은 혼란의 도가니이다. 이 세계는 항상 그렇게 혼란의 도가니였다.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임무는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계획해 두었던 삶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니까.
낡은 허물을 벗어던져야만 새로운 껍질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전 것에 집착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떤 형상에 매달리게 되면 우리는 썩을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지옥이란 말라붙은 삶이다. 

욕심꾸러기, 뭔가를 고수하려 하고 붙들어 놓으려고만 하는 우리 안의 그 욕심꾸러기를 반드시 없애 버려야만 한다. 

현재의 형상에만 매달리면, 우리는 다음의 형상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서 오믈렛을 만들 수 있겠는가.
파괴가 있은 다음에 창조가 있다. 

완벽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모든 과정은 우선 뭔가를 깨뜨리는 것과 연관된다. 생명이 움트기 위해서는 반드시 흙이 부서져야만 한다. 씨앗이 죽지 않는다면 식물이 생길 수 없다. 빵이란 결국 밀의 죽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생명이란 다른 생명들을 희생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근거한 것이다. 

자신이 살 만한 가치를 지녔다면 그 가치를 기꺼이 취하라. 

우리의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삶을 경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 모두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짝이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짝이다.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삶의 고통과 잔인함에 대한 부정은 결국 삶에 대한 부정이다. 그 모든 것에 "예"라고 말할 수 있게 된 후에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어떤 것에 대해 [의례적으로] 공정한 태도를 지니는 것은 곧 그것을 모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외심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여러분 자신의 길을 따라 삶을 계속해 나아가는 동안에는 혹시 새똥이 떨어진다 해도 그걸 닦느나 신경 쓰진 마라. 

여러분이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여러분은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 결국 유머 감각이 여러분을 구원하리라. 

영원은 여기와 지금으로 이루어진 차원이다. 신은 여러분 안에 살고 있다. 

여러분 자신의 중심에서 살아가라. 

여러분의 진정한 의무는 공동체로부터 멀리 떠나 여러분만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사회가 그 체제를 개인에게 강요할 때 사회는 곧 적이 된다. 그 용에게는 수많은 비늘이 있으니, 그 각각에는 "너는 할지니"라고 적혀 있다. "너는 할지니"라고 하는 용을 죽여라. 그 용을 죽인 사자는 비로소 아이가 된다. 

깨뜨리고 나옴은 [남이 보여 준] 희열의 모범을 따르고, 옛 장소에서 떠나고, 여러분의 영웅 여정을 시작하여, 여러분만의 희열을 따르는 것이다. 뱀이 그 허물을 벗어 버리듯, 여러분은 지난 날을 내팽개쳐라. 

여러분만의 희열을 따르라. 영웅적인 삶은 '각자만의' 모험을 실행하는 것이다. 

모험으로의 부름을 따르는 것에는 아무런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안다면 그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럼 부름을 거부하는 것은 부패를 의미한다. 여러분이 긍정적으로 경험하지 않는 것은 결국 부정적으로 경험될 것이다. 

여러분은 숲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가장 어두운 곳을 골라서. 그곳에는 아무런 길도 없다. 
만약 그곳에 어떤 길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길이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길이 아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의 길을 따라간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보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영웅의 여정에 담긴 목표는 영혼에서 여러 층위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파헤쳐 마침내 여러분 자신이 붓다의 의식이며 그리스도라는 신비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 여정이다. 
그것은 바로 몰입이 물방울처럼 떨어져 내리는 여러분의 마음 속 정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심연 속으로 내려감으로써 우리는 삶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는 곳, 거기에 여러분의 보물이 묻혀 있다. 
여러분이 차마 들어가기 겁내던 바로 그 동굴이, 여러분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의 원천임이 밝혀진다. 
동굴 속에 숨어 있던, 그 무시무시하던 저주받은 것이 바로 그 중심이 된다. 
여러분은 보석을 발견하고 보석은 여러분을 끌어당긴다. 

영적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여러분은 세속적인 것을 얕보지 않을 것이다. 

여정의 목적은 공감이다. 여러분이 여러 대립자들을 지나쳐 왔을 때, 여러분은 이미 공감에 도달했던 것이다. 목표는 보석을 다시 이 세계로 가져오는 것이고, 그 두 가지를 서로 합치는 것이다. 

겉으로는 따로따로인 듯 보이는 사물들도 근본적으로는 하나에 불과하다. 대립자의 세계 너머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경험되는 통일성과 동질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오늘날 지구는 유일하게 적절한 '내집단'이다. 여러분이 반드시 희열을 느끼고 돌아와 그것을 통합시켜야 한다. 

귀환은 어디에서나 광휘를 복격하는 것이다. 

깨달음을 찾으려는 자라면 마치 머리에 불붙은 사람이 연못을 찾는 것과 같은 간절함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원한다면, 신들을 그것을 주리라.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거대한 풍파 속에서도 신과 같은 침착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마치 디오니소스가 표범에 올라타고도 갈가리 찢기지 않은 것처럼. 

어느 아메리카 인디언 소년이 입문제의를 행할 때 이런 조언을 얻었다.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멍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 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진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