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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5) 여행하는 인간 [인문학]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17-35) 여행하는 인간 [인문학]

재도담 2017. 10. 5. 12:51

여행하는 인간 

문요한 저, 해냄, 340쪽. 


원북원부산 독서릴레이 올해의 책으로 지정된 책. 

도서관에 갈 때마다 제목을 마주하게 되고, 그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인데,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지만 너무 좋았던 책이다. 


여행에는 쾌락으로서의 여행, 노동으로서의 여행, 휴식으로서의 여행이 있다. 

현실이 고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쾌락을 좇는 경향이 있고 이들의 여행은 호화롭고 쇼핑이나 유흥으로 채워져 있고 심지어는 도박과 성매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 경우 쾌락의 특성상 점점 더 강한 쾌락이 주어져야만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은 점점 일탈로 치닫고 쾌락의 시간을 얻기 위해 현실은 더욱 고달파진다. 쾌락은 결코 휴식이나 충전이 되지 않는다. (p.53)

노동으로서의 여행은 짧은 시간 강행군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려고 하고 더 많은 사진을 남기려 한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기억은 희미한데 증거들은 넘쳐난다. 기록의 과잉은 여행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여행에서 사진 등 촬영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뇌는 덜 느끼고 덜 기억한다. 이렇게 노동으로서의 여행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 때문이다.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과잉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p.54)

휴식으로서의 여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휴식에는 '소극적 휴식'과 '적극적 휴식'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쉬는 것은 소극적 휴식이다. 아무런 노력이나 스트레스 없이 주어지는 순수한 편안함은 에너지 재충전의 효과가 약할 뿐 아니라 심지어 에너지를 더 소모시킬 수도 있다. (p.57) '적극적 휴식'은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다. 휴식으로서의 여행은 삶의 활력을 되찾는 여행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속도와 건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자신과 잘 맞고 영혼이 원하는 활동으로 채워진 여행을 해야한다. (p.58)

다수의 사람들이 속도중독에 빠져 살아간다. '빨리빨리'와 '급하게'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사실 속도중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철새들이 날아가는 속도가 앞서가는 무리에 의해 맞추어지듯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속도도 타인의 속도에 맞추어지기 쉽다. 이 사회에서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p.63)

여행을 하게 되면 중간 시간의 미학을 배우게 된다. 시간이 압축되고 단축되면 시간은 만족을 질식시키고, 시간이 무한정 처지면 자아가 밋밋한 무감동으로 늘어난다. 만족은 중간 시간에 존재하는데, 그 중간 시간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시간을 말한다. 최고의 만족은 압박이 중간 수준에 있을 때 경험된다. 적절한 시간 압박이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p.64)

여행은 익숙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일 뿐만 아니라 익숙한 자기로부터의 일탈이기도 하다. (p.83)

우리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하지만 더 중요한 만남은, 내 안에 감추어진 또다른 나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으로 더 멀리 나아갈수록 자신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때로는 한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색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p.110)

많은 이들이 나 자신을 알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알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탐색을 강조하지만 사실 세상과 등지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체적 상황, 관계, 환경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깊이 관찰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p.110)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명상이자 행선이다. (p.134)

우리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 속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는 근원적인 연결감을 회복하고 일체감을 느낀다. 나 자신이 홀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나보다 더 큰 존재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 느낌이 바로 애착이며 치유의 핵심이다. (p.148)

우리는 무모한 위험이 아닌 계산된 위험으로 걸어 들어갈 필요가 있다. 계산된 위험의 정점에까지 도달하면 두려움은 오히려 힘을 잃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긴장은 두려움이 아니라 에너지가 돼 여행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여행에서뿐만이 아니다. 계산된 위험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그리고 그 턱을 한 번 넘어서는 것. 그것은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핵심이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의 책략이다. (p.163)

두려움이 없는 게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용기다. 두려움과 맞설 때 당신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p.171)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거는 용기는 아마도 자연이 가르쳐 준 것이리라. 자연의 존재들은 끊임없이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건넨다. 바람은 나뭇잎과 가지에게, 곤충은 꽃에게, 하늘은 땅에게, 모든 존재들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자연에는 절대 고독이란 없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낯선 존재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p.187)

여행가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자신의 기준과 다른 기준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관을 인정할 것.' (p.202)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살아 숨 쉬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p.213) 

절정 경험이란 부모가 되는 경험, 신비 또는 광활함에 대한 경험, 자연에 대한 경험, 미학적 지각, 창조적 순간, 치료적 또는 지적 통찰력, 오르가슴의 경험, 특정 운동에서의 성취 등을 맛보는 순간 등이 있다. 이처럼 최상의 완성감을 느끼는 순간에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인지적 현상들을 절정 경험이라 부르며 일상생활에서 이를 얼마나 많이 경험하는지가 자기실현 정도의 척도가 된다. (p.215) 
절정 경험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해냈는지 등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얼마나 많이 열려 있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매슬로는 삶의 절정 경험을 얼마나 자주 느끼느냐가 바로 자기실현의 척도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절정 경험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을 '고원(plateau)' 상태라고 불렀다. (p.216)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려면 새로운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심리적 유연성이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선택과 행동을 달리할 줄 알아야 한다. 유연성을 기르려면 무엇보다 불확실성과 친해져야 한다. (p.234)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살아가다보면 그 당시에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와 미련이 뒤따를 때가 많다. 그러나 이는 결과가 나타난 다음 떠오르는 착각일 뿐이다. 지금의 결과와 그로 인한 깨달음이 없었기에 우리는 과거에 좀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 얻은 깨달음 덕분에 향후 비슷한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본디 후회라는 감정의 목적은 자기 비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개선에 있다. (p.238) 

삶의 발전은 오직 시행착오와 후회 그리고 이를 통한 개선으로 이뤄진다. 우리는 지난 선택을 비난하는 대신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삶을 성장시키고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다. 우리는 실수하고 헤맬 수 있는 권리와 그로부터 배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여행에서 우리는 앞을 향해 걸어간다. 실수와 방황에 관대해지고 시행착오를 허락한다. 설사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일이 꼬이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후회하지 않는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남은 여행에 집중하려 한다. 
발레리나 아그네스 드 밀, "삶이란 확실하지 않은 것,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조금씩 죽어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우리는 틀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뛰고 또 뛴다." (p.239)  

여행은 브리콜라주 작업(주어진 재료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나 작업)의 연속이다. 여행 중에는 문제나 불편이 생길 때마다 누군가를 불러 일을 맡길 수 없다. 맥가이버처럼 스스로 지금 있는 것을 가지고서 문제와 불편을 해결해야 한다. 어설픈 해법을 내놓을 때도 많겠지만 때로는 창의적이고 멋진 해볍도 생각해 낼 수 있다. 이는 여행의 또다른 기쁨이다. 당연히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의 문제 해결력은 비약적으로 커진다. (p.242)
잘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라는 식의 수동적인 체념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용이다. '수용(acceptance)'은 체념과 달리 의식의 확장이고 정신적 자유이며 창의적 전환이 된다. 예컨대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일기장을 꺼내 여행기를 적고, 갈 길이 멀다고 투덜거리기보다는 아직 튼튼한 두 다리가 있음에 감사하고, 날씨가 춥다고 짜증을 내기보다는 땔감을 찾아 불을 피우고, 털털거리는 고물 버스를 탈 때는 어린 시절에 탔던 놀이기구를 떠올리며 신이 나는 것이다.
자발적인 불편은 우리 내면에서 기쁨으로 전환된다. 불편함은 나쁜 것이고, 편안함은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히려 불편함이 여행의 풍미를 느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향신료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유연해지는 것이다. (p.244) 

여행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영역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p.273) 

여행은 삶의 베이스캠프. (p.299) 

꽃을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수많은 평범한 시간들이 있기에 여행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더 빛이 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평범하고 무료하다. 하지만 그 무난한 흐름을 뚫고 올라오는 불꽃같은 시간들이 있다. 바로 도전, 사랑, 여행 등을 하는 시간이다. 그 가슴 두근거리는 시간들이 우리의 평범한 삶을 빛나게 만든다. (p.304) 

칼 마르크스,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가 그대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 저장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존재를 키우고 삶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행의 시간 동안 우리의 존재감은 커지고 우리는 살아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그러면 자연히 소유욕과 저장강박이 약해진다. (p.313) 

좋은 여행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행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이후의 일상에 달려 있다. 좋은 여행은 여행자 자신을 유지하고 일상을 보다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다. 그에 비해 여행 때는 좋았더라도 여행 후의 일상이 더 초라하게 느껴지거나 고달프거나 빈곤해져 간다면 이는 좋지 않은 여행이다. (p.318) 

니체, '가장 중요한 것들은 바로 길 위에 있었다.' (p.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