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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1) 글쓰기의 최전선 [인문학/글쓰기]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16-21) 글쓰기의 최전선 [인문학/글쓰기]

재도담 2016. 8. 23. 12:55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저, 메멘토.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었던 책이었는데, 너무 좋았다. 

뜻하지 않게 이런 보물같은 책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책의 표지에 있는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와닿지 않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확연히 와닿는다. 

글을 쓰면, 내 마음이 정화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매우 유익하다. 

나도 저자의 글쓰기 강좌를 듣고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합리적 인식'이 아니라 '자신의 정서'로 판단했다. 자신이 이해하면 선이고 불편하면 악으로 취급했다. 조직에서는 다수가 지지하면 선이고 소수가 주장하면 악이 되는 구조였다. (…)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 그렇다면 서로의 차이는 어떻게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 회의했다.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외적 원인에 휘말리고 동여할 때,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후련했다. 

어렴풋이 알아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 

조지 오웰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며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선에서 물러서기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시간이 삶을 쓸모 있게 만들어주는 아이러니는 늘 유예되는 진리다. 이미 경험한 자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고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는 설명이 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글쓰기는 물러서서 숨 고르기의 쉽고 좋은 방편이다. 

글을 매개로 남의 의견을 듣고 삶을 관찰하다 보면 세상에는 나와 무관한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이가'에 대한 균형 감각이 발달한다. 이는 삶에 이롭다. 인간은 아는 만큼 덜 예속된다. "우리가 충분히 배우고 우리의 눈과 귀를 충분히 연 경우 언제든 우리의 영혼은 더욱 유연하고 우아하게 된다."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으로, 부단한 연마가 필요하다. 자기 안에 솟구치는 그것에 대해 알아채는 감각, 자기 욕망과 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감성적 역량, 세상을 읽어나가는 지식과 시선 등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 글 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 

시작을 해야 능력의 확장이 일어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쓸 것. 써야 한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문장을 쓰고 그걸 다듬어서 문단을 만들고 그 문단의 힘으로 한 페이지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아무리 보잘것 없고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능력에서 출발하기. "질보다는 양"이 문장력 향상의 지름길이다. 

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드는 구도는 어쩌면 단순한 글쓰기다. 선악구도를 넘어서는 지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싹튼다. 그게 어렵지만 먼저 느낀대로 말하고 쓰고, 그 생각을 공적인 장에 내놓아 외부에서 검증받고 소통하면서 어떤 사건에 대한 해석을 바꾸어나가는 것. 그러니까 다른 내가 되어가는 과정의 기록이 글쓰기의 본령이다.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대개는 자기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로 남을 대한다.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과정은 자기의 편견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자기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든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다' 좋은 책을 읽었다. 읽기와 쓰기는 다른 행위지만 내용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읽기가 밑거름이 되어 쓰기가 잎을 틔운다. 책을 ㅇ릭어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사람을 이해하는 눈을 키운다. 세상은 어떤 것이구나 통찰을 얻는다. 모국어의 선용과 조탁, 표현력을 배운다. 좋은 문체에 대한 감을 잡는 것인데, 총체적으로 글을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다. (…) 좋은 글에 대한 감각을 길러놓아야 내 글의 어디가 문제인지 짚어내고 고쳐 쓰면서 더 나은 글을 지향할 수 있다. 

글쓰기 수업을 찾는 이들에게 책 읽기 숙제를 내어주는데 대략 백 쪽 안팎으로 정해준다. 글을 쓰기 위해 그 정도는 읽어야 하는 필요 분량이고, 그 책의 매혹에 빠질 수 있는 최소 지점이며, 글쓰기 수업이 끝나도 읽고 쓰는 일이 계속되도록 바라는 마음에 마련한 장치이기도 하다. (…) 자발적으로는 절대 택하지 않았을 장르의 책들과 씨름하면서 자기 의 취향을 발견하게 된다. 그간 내륙 지방에 고립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20년 만에 바다에 나가보니 내가 물과 친하고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나를 열어두고 나를 실험하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기회가 주어진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거칠더라도 자기 느낌과 생각으로 시를 읽어내고 해설하느라 낑낑대는 것이 공부다. 독서의 참맛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느낌의 시행착오다. 그 오락가락과 아리송함을 통과하면서 느낌은 단련된다. 

문화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감정의 세분화, 다름의 향유다. 모든 감정의 평준화를 양산하는 건 결코 좋은 문화가 아니다. 

"우리는 늘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 조건이 우리의 견해나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과 부딪히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체가 될 일도 없다." - '구조주의'를 설명하는 우치다 다쓰루의 말. 

때로는 도덕은 가족, 학교 등 현실의 제도를 보호하는 값싼 장치에 불과하다. 일상의 평균치만을 관성적으로 고집하며 살아가는 순치된 개인을 길러낸다. 하지만 평균적인 삶도 정해진 도덕률도 없다. 천 개의 삶이 있다면 도덕도 천 개여야 한다. 자기의 좋음을 각자 질문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게 중요하다. 

글쓰기는 이미 정해진 상식, 이미 드러난 세계의 받아쓰기가 아니라 자기의 입장에서 구성한 상식, 내가 본 것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글, 그 사람만 쓸 수 있는 고유한 글이 나온다. 

길들여지지 않은 사유! 영화감독, 사진가 등 예술가는 기성의 관념, 도덕, 규범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뒤집으며 기존의 가치 체계를 흔드는 사람이다. 좋은 작품은 물음을 던진다. 자기 시대가 떠받드는 가치 체계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져서 자기 삶을, 주변 사람을, 이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철학자도 마찬가지. 철학이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 대신에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지 알려고 하는 것이라고 푸코는 말했다. 

에세이, 칼럼, 논문 등 모든 글에는 하나의 메세지, 하나의 질문이 담겨 있어야 한다. 문제의식이 없는 글은 요란한 빈수레와 다름없다. 메시지가 없는 미사여구의 나열은 공허하다. 지식은 넘치고 지혜가 빈곤한 글은 무료하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학식이 높은 사람,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 감각이 섬세한 사람, 지구력이 강한 사람 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이미 훌륭한 글이 넘치므로 나는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 중 하나는 담겨야 한다. 인식적 가치, 정서적 가치, 미적 가치. 곧 새로운 지식을 주거나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감정을 건드리거나. 

좋은 디제이는 바로 나한테만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한다. 소곤소곤 말을 건네는 어조나 내용이 연인 같은 친밀감을 제공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디제이가 마이크 앞에 친구나 가족 사진을 붙여놓듯이 내 글을 들려주고 싶은 구체적 대상을 정하고 써야 한다. 그래야 글이 어떤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살아 있는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글 쓸 때 주의해야 할 지점이 있다. 계몽, 곧 도덕적 마무리는 위험하다. 상황을 단순화시켜버린다. 감정을 평준화한다. 섣불리 가르치려들지 마라. 

저절로 얻어지면 악, 힘들게 얻어지면 선. 

접시 닦이, 노숙, 부랑자 생활 등을 자처했던 조지 오웰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의 주제, 곧 마땅히 표현해야 될 바를 표현하는 일인데 그건 경험하지 않으면 실상을 드러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오웰은 또한 표현의 방식과 스타일 등 넓은 의미의 작품성은 그 다음에 따라오며 그건 고통스러운 반복 작업과 훈련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현장으로 내려갔기에 잘 쓴게 아니라 충실한 경험에서, 곧 삶에 밀착한 경험에서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이다. 

"그전에는 엄마가 하소연할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 그냥 들어주었거든요. 인터뷰를 계기로 들어주는 게 아니라 정말 듣게 된 거죠. 내용도 깊게 들어가고 질문도 많이 하고 그러니까 엄마도 단순히 푸념이 아니라 자기 생애를 차근차근 말하게 되었고요. 엄마가 점점 좋아지더니 1년이 지난 직므은 우울증 약을 거의 안드세요. 엄마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당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고 나면 우리는 느낀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누구를 안다고 말하는 것의 조심스러움을, 할머니나 엄마의 인터뷰처럼 가족의 배치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으로 만날 때 더 극적이다. 
(…) 
수많은 인터뷰를 하고 학인들의 인터뷰를 읽고 토론하면서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졌다. 보이는 것 너머 이면을 상상한다. 가령 경복궁 역 앞에서 검은콩이랑 감자랑 귤 같은 것을 놓고 파는 할머니를 보아도, 단지 '불쌍한 존재' 혹은 '실속 있는 알부자'가 아니라 노점은 언제부터 하셨을지, 저렇게 번 돈으로 자식 몇 명을 길러내셨을지, 자기 삶에 대한 원망을 있을지 없을지 생각하게 된다.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길러졌다. 한 존재를 바라보는 '겹의 눈'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의 도움 없이 삶을 지탱할 수 없으며 정신을 배양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터뷰 경험을 소중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인생의 스승으로 보게 하니까. 

관계란 기억의 교환이다. 다른 사람에게 평범한 기억밖에는 만들어 줄 수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의 기억을 갖지 못하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 황현산 

인터뷰이가 될 수 있는 사람과 못 되는 사람의 구분은 자기표현 능력이 아니다. 사회적 관계의 여부다. 보이는 존재인가, 보이지 않는 존재인가. 관계의 끈이 없으면 자기를 규정할 수도 없고 존재가 드러날 수도 없다. 

참고도서. 

시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창비. 
        『가재미』, 문태준, 문학과지성사.
        『기억의 행성』, 조용미, 문학과지성사. 
        『김수영 전집 1-시』, 김수영, 민음사. 
        『그 여름의 끝』,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남해 금산』,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문학동네.
        『마징가 계보학』, 권혁웅, 창비.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박연준, 문학동네.
        『이 時代의 사랑』, 최승자, 문학과지성사.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문학과지성사. 
        『(정본)백석 시집』, 백석, 문학동네.
        『혼가 가는 먼 집』, 허수경, 문학과지성사.
        『花蛇集』, 서정주, 문학동네.
소설  『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열린책들.
        『무진기행』, 김승옥, 문학동네.
        『백의 그림자』, 황정은, 민음사.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작가정신. 
        『침묵의 미래』(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문학사상.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창비. 
산문  『거대한 고독-토리노 하늘 아래의 두 고아, 니체와 파베세』, 프레데릭 파작, 현대문학. 
        『김수영 전집 2-산문』, 김수영, 민음사. 
        『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D에게 보낸 편지-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학고재. 
        『말』, 장 폴 사르트르, 민음사.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삼십세』, 잉에보르크 바흐만, 문예출판사. 
        『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 민음사.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창. 
        『올드걸의 시집-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꾸는 존재에게』, 은유, 청어람미디어. 
        『이상 전집-수필』, 이상, 뿔.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열린책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마음산책. 
        『파리의 우울』, 샤를 보들레르, 민음사. 
여성  『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이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민음사.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임옥희, 여이연.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교양인. 
르포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밀양을 살다-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 밀양구술프로젝트, 오월의봄. 
        『4차원 인생-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4명, 한겨레출판. 
        『위건 부두로 가는 길-조지 오웰 프로르타주』,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이것이 인간인가-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둘베개. 
인문사회 『경제학-철학수고』, 카를 마르크스, 이론과실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원, 그린비. 
        『그을린 예술-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삶의 불길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심보선, 민음사. 
        『김영민의 공부론』, 김영민, 샘터. 
        『김예슬 선언-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느린걸음.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김상봉, 한길사. 
        『노동을 거부하라-노동 지상주의에 대한 11가지 반격』, 크리시스, 이후. 
        『눈먼 자들의 국가-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문학동네. 
        『동무와 연인』, 김영민, 한겨레출판.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 마티. 
        『문학은 자유다』, 수전 손택, 이후. 
        『베를린의 어린 시절』, 발터 벤야민, 새물결. 
        『사랑은 왜 아픈가-사랑의 사회학』, 에바 일루즈, 돌베개. 
        『세 개의 동그라미-마음·이데아·지각, 김우창과의 대화』, 김우창·문광훈, 한길사. 
        『이 사람을 보라』, 프리드리히 니체, 책세상. 
        『일방통행로-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발터 벤야민, 새물결. 
        『전태일 평전』, 조영래, 아름다운전태일.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교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책세상.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앤서니 기든스, 새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