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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 스콧 니어링 자서전 [인문학/사회과학]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16-20) 스콧 니어링 자서전 [인문학/사회과학]

재도담 2016. 8. 19. 01:33

스콧 니어링 자서전. 

스콧 니어링 저, 김라합 역, 실천문학사. 


사유할 거리를 많이 준 책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전쟁과 평화, 노동, 자급자족, 자연과 지구, 등 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서 너무 좋았다.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앞으로도 좋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토론하여 결론에 도달하고 그 결론을 자유롭게 발표하게 하는 수단이다. 토론을 통해서만 합리적인 공공의 의견에 도달할 수 있으며 토론이 제한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시민들에게 그들의 신념을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권리는 올바른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올바르지 못한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동시에 포함하는 것이다. 헌법은 시민들이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권리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자기가 정직하다면 잘못된 생각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까지 보장하고 있다. 

모든 시민은 자신을 표현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에서는 어떤 주제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문에 대한 견해를 발표할 수 있다. 정부가 개입하여 이러한 권리를 제한한다면 그 순간 민주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우리 앞에 놓은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지금 이 나라의 풍요는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게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여,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지적순수성을 조금이라도 훼손한 채 얻은 선이란 어떤 경우에도 영원한 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청년기에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고를 지닌 사람은 당대에는 화려한 성공을 거두기 힘들지 몰라도 결코 자신이 외톨이가 되었다는 것 때무에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 올리브 슈라이너 『인생』 

나는 인생을 즐기거나 다른 사람의 노동에 의지해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일을 하기 위해, 그것도 있는 힘을 다해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이다. 

일단 정신적 순응이 습관화되면 그 습관을 뿌리뽑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세상에 고통이 있는 한 나는 편안할 수 없으며 감옥에 단 한 사람이라도 갇혀 있는 한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한 유진 뎁스의 말에 나는 일찌감치 공감했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행복한 삶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시켜 보면, 계급과 신분의 차별이 없어지고 모든 젊은이들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꼭 필요한 노동은 분담하고 착취가 중지되어야 하며, 이와 함께 사회적 친교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상생활에서의 행복한 삶은 빵을 얻기 위한 노동과 전문적 혹은 기술적 봉사, 그리고 동료들과의 친교로 이루어져야 한다. 

생산량이 충분하다고 가정할 경우, 누구에게 어떤 비율로 생산의 성과가 돌아가야 하는가? 토지 사용료, 자본에 대한 이자, 위험수당, 노동에 대한 임금, 경영에 대한 보수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과연 어떤 비율로 생산성과가 분배되어야 하는 것일까? 분배문제를 놓고 자산 소유권과 전문/비전문 노동 사이의 사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상 그것은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는 사람들 간의 싸움이었다. 

나는 학창시절에 이미 부의 위험을 알게 되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에 따르다가 타락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여 자기 배를 불린다는 사실을. 

만일 누군가 배고픔에 시달린다면, 푸짐한 식사 한 끼로 그를 만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행위는 일시적인 미봉책이지, 가난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과는 거리가 멀다. 또 수혜자는 기생적 생활습관을 얻어 재차, 삼차 구걸의 손을 벌리게 되어있다. 구걸이 제도화되고, 빈곤에 익숙해지는 악습을 낳는 것이다. 개인 차원의 자선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경제적 불공정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눈앞에 닥친 긴급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무조건적인 재정 보조는 수혜자를 그것에 길들게 만들어 결국은 자생 의지를 꺾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삶의 수단이나 목표가 비열하고 저급하다면, 그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으며 자존심을 유지할 수도 없다. 지식을 습득하고 이용하는 데에도 올바른 동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 지식을 말과 행동에 적용하고 생계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이 마지막 명제는 부처가 말한 팔정도 가운데 하나이다. "바른 생활이란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옳은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 

이 지상에 착취와 부정이 존재하는 한 하느님의 나라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나라가 이기든, 피해를 입고 고통받는 쪽은 양국의 민중들이다. 실제로 전쟁에서 이기는 쪽은 군수품 제조업자들이고, 지는 쪽은 민중들이었다. 민중들은 전장에서는 죽음과 고통으로, 후방에서는 걱정과 사별로 대가를 치렀다. 

「죽은 자를 슬퍼 말라」  - 랠프 

싸늘한 흙 속에 누워 있는 죽은 자를 애도하지 말라 
인간은 모두 한 번은 죽는 법 
시신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가더라도 
부드러운 대지가 따뜻한 손길로 그를 덮어주리니 

저들에게 붙잡힌 동지의 운명을 슬퍼하지 말라 
비록 강철로 만들어진 관에 산 채로 매장되어 
무덤 속에 갇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불굴의 의지를 잃지 않으리니 

대신 냉담하기 짝이 없는 대중들을 애도하라 
세상의 커다란 불안과 잘못 앞에서도 
감히 입을 열어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굴종의 사슬에 묶인 겁에 질린 대중들을 애도하라 

전쟁은 한 집단이 무력을 사용하여 다른 집단에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이 바로 전쟁의 직접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전쟁에는 더 넓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전쟁은 권력을 쥔 자들에게 애국심이라는 미명하에 반대파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생명을 존중하기에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나는 생명이 우주라는 현상세계의 중요한 일부분이라 믿는다. 나 역시 이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는 생명의 한 표현이다. 그리고 나는 우주의 모든 부분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 자신과 우주 안에 사는 다른 모든 생명체를 존중한다. 
우주의 한 양상으로서 생명은 충분히 존중받을 가지가 있다. 늘 깨어 있고, 의식적이고, 창조적이고,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생명은 보호되고, 귀하게 여겨지고, 연장되어야 하는 것이지, 결코 좌절되고, 천시받고,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학대와 증오는 생명을 단축하고, 타락시키고, 파괴한다. 자기 안에서 이런 감정을 용납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은 그런 감정, 사고, 행위가 가져오는 심각한 변화들에 의해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이런 감정들은 또한 우주의 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나는 사회변혁을 이루는 길 중에서 폭력, 증오, 공포, 강제 등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값비싼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가져오고, 더 이상의 진전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인간은 하나의 생명 형태일 뿐이다. 지구상에는 인간 말고도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이런 여러 생명체가 어울려 지상에 존재하는 생명 패턴을 이룬다. 이들 각자는 하나의 힘의 표현이며, 각자 목적을 지닌다. 모든 생명체는 성장하고 발전하고 기여한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사는 동시에 다른 생명체와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는 인간에게 최대한 창조적이고 건설적 차원에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협동적 사회유형을 계획하고 건설하기 위해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사회적 관계는 각 개인의 성격과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진보는 그 구성원 모두를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따라서 어느 공동체에서나 사회를 의식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이 최우선 과제이다. 나는 사회주의라는 사회적 변화가 인간의 행복과 안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회주의자로서 나는 공동체 전체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제의 부분들은 공동체가 소유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간선도로, 우체국, 학교, 보안림 등은 공익을 위해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 철도, 전화, 전력, 공장, 석유, 광물 같은 공동사업들은 인민이 소유하고 인민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개인주의적인 사기업사회는 19세기 내내 경쟁을 부추겨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사회는 전쟁이라는 가장 차원 높은 경쟁을 통해 파괴와 살인이라는 끔찍한 수확물을 거둬들였다.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협동을 사회적 사고와 행동의 중심에 두고 경쟁을 효과적인 협동을 위한 하나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정책의 급반전 없이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경쟁을 협동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이다. 

서양의 자본주의자와 제국주의자들은 18세와 19세기의 착취가, 권력가, 제국 건설자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민중들을 상대로 자행한 공격과 정복, 약탈과 강탈, 방화와 대량 살상을 은폐하는 눈속임 도구로 '평화와 번영 그리고 진보'라는 슬로건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이러한 행위들은 서양 제국주의의 쇠발굽 아래 전 인류를 복종시키는 결과를 낳거나 약탈물 분배를 둘러싼 도둑들간의 싸움을 야기했다. 서양의 '개화주의자들'은 권력 장악과 착취, 부패, 타락이라는 바람의 씨를 뿌렸다. 그 결과, 그들이 거둬들이는 수확물은 전쟁과 혁명, 파괴와 붕괴라는 회오리바람일 수 밖에 없다. 

나는 대공황을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도박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과 경마장과 여타의 빠르고 손쉬운 수입원에서 광적인 형태로 발현된 바 있는 사기업 경제의 논리적 귀결로 보았다. 대공황은 전쟁으로 인한 번영과 전쟁 모험주의에 대한 반작용의 일부이자, 군수경기가 진정되고 군수경제가 시민경제로 전환되면서 흔히 나타나는 불안정한 현상이었다. 

오늘날의 전쟁은 전지구적인 것이거나 총체적인 것이어서, 인류 전체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또한 오늘날의 전쟁은 인류와 인류가 그 동안 쌓아온 모든 시설 및 설비를 말살시킬 수 있고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했던 역사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기에, 최종적인 것이기도 하다. 

어느 시점까지는 서구 문명이 시대에 뒤떨어진 세력을 청산하는 진보적인 힘이었고, 자연을 이용하고 인간사회를 조직·관리하는 좀더 효율적인 방법을 개척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이상 장애를 극복하고 모순을 해결하고 급속히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의 요구를 충족시킬 능력이 없다. 

나는 근시안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문명의 혜택을 거부한다. 우리가 조금만 노력을 기울인다면 더 나은 삶을 향해 손을 뻗어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신분상 깨끗한 손과 말끔한 옷, 현실세계에 대한 상아탑적 무관심에 젖어 있는 교사에게서 기생생활의 때를 벗겨준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애쓰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것은 한도가 없는 게임이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애쓰는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년 1년을 그럭저럭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현금이 얼마지?" 우리는 모든 계획과 목표를 고려하여 필요한 현금액수를 정한 뒤, 그 액수를 벌어들일 수 있을 만큼만 환금작물을 생산했다. 그리고 일단 목표액이 채워지면 다음해 예산을 세울 때까지 생산을 중단했다. 

우리는 경쟁적이고 공업화된 사회양식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네 가지 해악에서 벗어나는 데 꽤 성공한 편이었다. 그 네 가지 해악이란 물질에 대한 탐욕에 물든 인간들을 괴롭히는 권력, 다른 사람보다 출세하고 싶은 충동과 관련된 조급함과 시끄러움.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 반드시 수반되는 근심과 두려움,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드는 데서 생기는 복잡함과 혼란을 말한다. 

금식, 소박한 식사, 운동, 휴식은 수명을 조절하거나 생명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경제가 자급자족에 가까워질수록 의존적 생활로 퇴보할 위험은 적어지고, 기쁨과 발전과 충족감을 맛보게 될 개연성은 커진다. 인간이 자연의 리듬에 가깝게 살면 살수록 안정감과 평온, 삶과의 일체감은 커진다. 자연의 리듬을 따를 때 인간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자연의 리듬은 발육과 성장을 자극하고, 개개인을 어머니 대지에 든든하게 결합시킨다. 

시골생활은 사회와 접촉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자연과의 접촉방법이다. 시골생활은 이 폭력적인 세상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준다. 시골생활은 기존 사회질서의 한 부분을 대신할 수 있는 바람직하고 흔치 않은 대안이며 비정상적인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이다. 또한 시골생활은 활동적인 사람들이 만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기도 하다. 

어느 시기든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내세우고 따르는 윤리적, 도덕적 기준이다. 사회조직의 일부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사회의 안녕에 더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사실이듯이, 숭고한 도덕체계가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에 의해 실행에 옮겨질 때 사회관습 전체가 그에 상응하여 숭고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 사회의 윤리·도덕적 건강은 오래 끌어온 중대한 싸움 막바지에 한 분파가 다른 분파에 대해 거두는 최종적인 승리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날그날의 싸움 그 자체에 의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