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Book] 노자 본문
2015 - 51
노자.
노자 저. 김원중 역. 글항아리
노자를 읽으면서 여러 사상가들과 철학이 오버랩 되었다. 비트겐슈타인, 루소, 예수, 소크라테스, 아나키스트, 최인훈 등...
김원중의 노자는 독자가 읽으면서 스스로 해석할 여지를 많이 준다.
시와 같은 경구 구석구석에는 저 인물들의 여러 사상이 녹아있다.
노자의 말처럼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노자의 가르침을 한두마디로 요약하는 것은
노자를 욕되게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망각하는 것이 인간인지라,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부분만을 추려본다.
노자의 핵심 사상을 딱 3가지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귀유상약 貴柔尙弱 부드러움을 귀하게 여기고 약함을 숭상한다.
겸하부쟁 謙下不爭 겸손하고 다투지 않는다.
도법자연 道法自然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1. 道可道도가도, 非常道비상도. 名可名명가명, 非常名비상명. 도라고 불리는 도는 도가 아니요, 이름 불리우는 이름은 이름이 아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연상된다. 우리 언어는 삼라만상을 묘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언어로 발화되는 순간 어떤 현상이나 사건, 진리는 축소되고 왜곡되고 한정지어진다. 언어의 한계를 알고 있어야 그로 인한 오해와 다툼이 없어진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해서는 안된다고 한 석가모니의 가르침과도 오버랩된다. 12장에 나오는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가 사람의 눈, 귀, 입을 상하게 한다는 말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근대철학사조에서 이성중심주의, 이분법적 사고, 계몽주의를 배격하는 포스터모더니즘의 현대철학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가르침은 이후의 경구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18,19,20...).
2. 聖人處無爲之事성인처무위지사, 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 성인은 무위에 머무르면서 말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노자는 세상의 퇴폐와 혼란의 원인이 지식이나 도덕이라는 인위에 있다고 보고 그것들의 집적인 인간의 문화로부터 벗어나 태고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춘추전국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위정자가 인위적인 이데올로기로 피지배층을 누르려 하거나 억압하게 되면 결국 저항에 부딪히게 되고 고집을 내려놓지 않으면 결국 폭력사태를 부르게 된다. 냉전시대에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했던 상황에도 꼭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문화와 도덕을 배쳑해야 할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노자의 생각을 곡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과연 어디까지를 인위人爲와 무위無爲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노자를 읽은 사람의 영원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8. 上善若水상선약수.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이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악, 故幾於道고기어도.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아주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고,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노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며 반복적으로 나오는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물이다. 물은 모든 곳에 필요한 중요한 것이고 부드럽게 흘러가고 항상 아래를 향한다. 물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볼만하다.
11. 故有之以爲利고유지이위이, 無之以爲用무지이위용. 있음이 이로운 것은, 없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노자가 강조하고 있는 또 하나는 무無다. "있음有"보다 "없음無"의 역할과 그 효용성을 강조는데, 이 둘을 긴밀한 두 축으로 해서 세계가 굴러간다고 본다. 그릇도 비어있기 떄문에 그릇으로 쓰이는 것이고, 집도 비어있기 때문에 사람이 그 안에 살 수 있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은 형식에 불과할 뿐 진정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 공간, 즉 텅비어 있는 "무"의 차원이라고 노자는 이야기한다.
22. 不自見故明부자견고명, 不自是故彰부자시고창, 不自伐故有功부자벌고유공, 不自矜故長부자긍고장. 夫唯不爭부유부쟁, 故天下莫能與之爭고천하막능여지쟁.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아지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드러나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을 소유하고,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오래간다.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천하에서 아무도 그와 다툴 수 없다.
노자에서 특히 마음이 가는 구절이다. 나같이 떠벌이기를 좋아하고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
28. 爲天下谿위천하계, 常德不離상덕불이, 復歸於嬰兒복귀어영아.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늘 덕이 떠나지 않으며 갓난아이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노자는 이분법으로 구분짓는 것들을 함께 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군주가 이런 안목을 지녀야 천하의 인심이 그에게 모여들어 골짜기가 되는데 영원한 덕으로 옮긴 상덕은 어린아이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 예수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29. 是以聖人去甚시이성인거심, 去奢거사, 去泰거태. 성인은 극단적인 것을 없애고 사치스러운 것을 없애며 지나친 것을 없앤다.
거심去甚, 거사去奢, 거태去泰는 "극단", "사치", "지나친 것"에 대한 노자의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 세 가지야말로 '자연'을 거스른 가장 대표적인 표식이다.
33. 知人者智지인자지, 自知者明자지자명.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
노자는 타인을 아는 것보다 나 자신의 내면을 아는 것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떠오른다.
36. 柔弱勝剛强유약승강강.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43. 天下之至柔천하지지유, 馳騁天下之至堅치빙천하지지견.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린다.
다시 반복되지만, 노자는 부드러움을 숭상한다.
46. 禍莫大於不知足화막대어부지족, 咎莫大於欲得구막대어욕득. 故知足之足고지족지족, 常足矣상족의. 화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허물은 얻으려고 욕심내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만족함을 아는 데서 얻는 만족이야말로 늘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자족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다.
48. 爲學日益위학일익, 爲道日損위도일손. 損之又損손지우손, 以至於無爲이지어무위,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 학문을 하면 날로 더해지고, 도를 행하면 날로 덜어진다. 덜어지고 또 덜어져 무위에 이르니, 무위하면 못하는 것이 없어라.
노자는 모든 사고와 개념을 텅 비우고 오랫동안 그 직관적 태도를 견지하라고 말한다. 그런 뒤에야 비상한 깨달음이 온다. 노자에게 학문은 인위적 조작을 체계화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인간을 자신의 본성에서 거듭 멀어지게 한다. 노자는 도에 접근하는 길로, 내적 자아의 원초적 의식의 심층으로 파고 들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54. 故以身觀身고이신관신, 以家觀家이가관가, 以鄕觀鄕이향관향, 以國觀國이국관국, 以天下觀天下이천하관천하. 그러므로 자신을 통해서 자신을 보고, 집안을 통해서 집안을 보며, 고을을 통해서 고을을 보고, 나라를 통해서 나라를 보며, 천하를 통해서 촌하를 본다.
노자는 국가의 기본이 개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덕을 통해 천하를 다스리는 문제는 개인의 덕을 천하의 덕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신身" "가價" "향鄕" "국國" "천하天下"가 저마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위로 향하는 단게에서 아래의 것이 강제되고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단위로부터 큰 단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그 자체의 시스템 속에서 의미가 구현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개인은 바로 천하와 동격으로 간주된다.
66. 是以聖人欲上民시이성인욕상민, 必以言下之필이언하지, 欲先民욕선민, 必以身後之필이신후지. 성인이 백성보다 위에 오르고자 하면 반드시 (스스로를) 낮추는 말을 해야 하고, 백성보다 앞서고자 하면 반드시 자신을 그들보다 뒤에 두어야 한다.
통치자가 백성을 위협하거나 백성에게 부담을 주면 오히려 그들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으며 백성에게 투쟁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스스로 낮추는 자를 높이신다고 하는 성경의 말씀도 떠오른다.
68. 善爲士者不武선이사자불무, 善戰者不怒선전자불노, 善勝敵者不與선승적자불여, 善用人者爲之下선용인자위지하. 是謂不爭之德시위부쟁지덕, 是謂用人之力시위용인지력, 是謂配天古之極시위배천고지극. 장수 노릇을 잘하는 자는 무용을 뽐내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노여워하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자는 다투지 않고, 사람을 잘 부리는 자는 그보다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사람을 부리는 능력이라고 하며, 이것을 하늘과 짝한다 하니 옛날의 지극한 도이다.
70. 知我者希지아자희, 則我者貴즉아자귀, 是以聖人被裼懷玉시이성인피체회옥.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는 것은 곧 내가 귀한 것이니, 이 때문에 성인은 베옷을 걸치고도 옥을 품고 있는 것이다.
71. 知不知上지부지상, 不知知病부지지병. 夫唯病病부유병병, 是以不病시이불병. 聖人不病성인불병, 以其病病이기병병, 是以不病시이불병.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최상이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이 병이다. 오직 병을 병으로 여기기 때문에 병이 아니다. 성인은 병이 없으니 병을 병으로 여기기 때문에 병이 없다.
성인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지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앎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어떤 체계나 권위에 기대어 스스로 안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 서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많이 일어난다. 노자는 바로 이것이 병이라고 했다.
80. 小國寡民소국과민.
노자가 내세운 이상적인 세계는 결국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소박한 세계로서 거기에는 어떠한 문화 현상도 없고 서로 다른 다양성속에서 장애라든지 소외적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 조화의 세계이며, 자신은 자신으로서 일하면서 자성적으로 공유하는 세계이고, 자아는 자아대로 머물면서 타자와 동화되어 모든 사람이 하나로 융화되어 사는 세계다. 모든 이기심과 허욕, 거만함 등이 녹아버리는 세계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적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친밀감이 확장되게 만들어 문명이 거부되고 인위가 배척되며 번거로운 제반 사회적 제도가 제거된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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