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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Book]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재도담 2015. 12. 7. 13:28

2015 - 49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에덤 스미스 원저, 러셀 로버츠 지음. 세계사. 


에덤 스미스의 저작, 「도덕감정론」의 해설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시키고 사심 없이 행동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공정한 관찰자' 덕분이다. '공정한 관찰자'란, 우리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행동이 도덕적인지 확인해주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상상 속 인물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공정한 관찰자가 있다. 나의 행동이 옳은지 공정하게 알려주는 가상의 인물이다. 공정한 관찰자 덕분에 우리는 한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신성한 미덕을 실행하는 것은 이웃과 인류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인류애보다 더 큰 사랑, 더 강력한 애정 때문이다. 그것은 명예롭고 고상한 것에 대한 사랑, 존엄과 위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탁월한 자신의 인격에 대한 사랑이다. 

에덤 스미스는 인간의 도덕성이 타고난다고 보았다. 인간에게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인간의 도덕의식은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반감을 경험하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타인의 반응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게 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여기서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겉으로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 척하고 스스로 볼 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괴로움에 직면하게 된다. 에덤 스미스의 이상은 내면의 자아가 외면의 자아를 그대로 비출 때, 즉, 사람의 겉과 속이 일치할 때 실현된다. 내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혹은 실행하지 않은 나의 동기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은 나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칭찬으로부터 어떤 만족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믿고 싶은 거짓된 칭찬 역시 언제나 존재한다. 보통 아첨이라고 부르는 이 거짓 칭찬 때문에 잘못된 자신의 이미지를 바로잡기란 쉽지 않다. 전략적 아첨에 속지 말라. 자신을 솔직하게 대면하라.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건 매우 불쾌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려 한다. 자기기만은 솔직한 자기인식보다 훨씬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기를 좋아한다. 

사람은 타인의 결점은 보기 쉽지만 자기기만으로 인해 본인의 결점은 놓치기 쉽다. 하지만, 타인의 결점은 자신의 결점을 고치도록 돕는 이상적인 거울이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며넛 무엇이 적절하고, 적절하지 않은지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주시한다. 타인들에게 사랑, 감사, 존경을 받을 만한 행동을 우리는 자연스레 모방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만족시킬 도구들을 이미 모두 갖고 있다.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게 하는 악덕을 탐욕, 허영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격렬하게 바라는 상황들 중 비교적 바람직한 상황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신중의 원칙, 정의의 원칙을 위반하면서까지 격정적인 욕망을 가질 만한 상황은 없다. 

정의란 타인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지 않는 미덕이다. 신중이란 행동의 결과를 가늠케 하는 선견지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오늘의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는 자제심,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돌보는 미덕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가장 유용한 자질은 뛰어난 '이성'과 '지적 사고력'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모든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로 인한 이익과 손해가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제력'이다. 자제력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참을 수 있으며, 미래의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오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다. 그리고 이성과 지적 사고력, 자제력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미덕이 바로 '신중'이다. 신중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유용한 자질이다.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온 사람이 거의 없는 곳, 야심의 소굴로 들어가면 안된다. 그리고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지배자들과 자신을 절대 비교해서도 안된다.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고 존중하는 일을 하고, 그렇게 일해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다면, 그것에 만족하라. 돈과 명예 말고도 우리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존재한다. 재산이나 명예, 권력을 통해 세인의 관심을 추구하는 대신, 지혜롭고 선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도 타인에게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 

적절성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교향곡에서 자신의 파트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에덤 스미스의 적절성은, 인간의 본성 그리고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반응에 집중한다. 즉, 주위 사람들의 감정과 경험에 공감되거나 공감되지 않는 기준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다. 때로는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하도록 설득하기도 한다. 상대가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내 상황에 공감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내 슬픔의 일부가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두 감정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만, 화합은 이룰 수 있다. 사회를 조화롭게 하는 데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격렬한 슬픔 안에서 평정심과 냉정함을 찾을 수 있도록 친구가 곁에 있어준다면,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 앞에 친구가 나타나는 순간, 마음이 어느 정도 차분해지고 침착해진다. 우리는 친구의 시선으로 자신을 본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슬픔이 줄어든다. 그게 친구다. 그 다음에는 지인이 있고, 마지막으로 모르는 사람이 있다. 

슬픔과 기쁨에는 차이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쁨은 작을수록, 슬픔은 클수록 쉽게 공감하는 경향이 있다. 

친한 친구들, 그냥 아는 사람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을 구분하여 이에 맞는 적절한 감정적 교류를 하라.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더 훌륭한 방법으로, 미덕을 갖춘 삶을 권했는데, 그 중 특별히 강조한 세 가지는 신중, 정의, 선행이다. '신중'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으로, 신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적게 말하고 많이 행동해야 한다. 신중한 사람의 대화는 간결하고 겸손하다. '정의'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정의롭게 살기 위해 상식의 원칙에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이익을 빼앗아선 안된다. '선행'은 다른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천박하지 않은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의 조용한 행동과 결합하면 신뢰와 친절, 존중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조용하지만 위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존경하자.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주위에 훌륭한 친구들을 두자. 남의 험담을 퍼뜨리지 말고 남의 감정을 해칠 수 있는 교묘한 농담은 단호하게 거부하자. 우리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매우 작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나 같은 풋내기가 애덤 스미스 같은 위인을 평가하는 것이 웃긴 일일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경제학자가 쓴 도덕책이라 그런지 그 깊이가 얕고 그렇게 심오한 내용이 있진 않은 듯 하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이기심과 본능이 어디에서 기인했으며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우리의 도덕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기대하며 읽은 나로서는, 애덤 스미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딱히 와닿지 않는다. 두루뭉실하게 얘기하자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양심에 가책이 느껴질 만한 일을 하지 말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부터 아끼고 사랑하며 살라. 이 정도가 애덤 스미스의 주장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메세지도 지키며 사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