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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본문

Scribble

재도담 2015. 10. 31. 11:00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죄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는 죄, 허물, 지은 죄. 

허물은 내가 지은 죄가 아니지만, 내가 회개해야 할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의 나치당이 지은 죄에 대해 그 후손들은 '자신이 직접 지은'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국에 사죄를 하고 무릎을 꿇는다. 

이러한 모습은 옳다. 

자신의 죄가 아니라도 그러한 죄는 회개되어져야 한다. 

내가 직접 지은 죄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속한 집단이나 시스템에서 악이 드러난다면 

그런 것은 허물이 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부패나, 우리나라 권력자들의 비리, 비양심적인 의료행위 등은 

꼭 내가 지은 죄가 아니라 하더라도 회개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잡힐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이런 허물은 내가 '하나님'께 회개하면 된다. 

이에 반해, '지은 죄'는 그 회개의 방법이 다르다. 

내가 지은 죄는 그 대상이 있을테고, 하나님께 그 죄를 고백하기에 앞서 

반드시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가서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고 죄값을 치러야 한다. 

그 이후에야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내가 친구의 물건을 훔치거나 지나가는 행인을 폭행하거나 세금을 탈루했거나, 

이런 류의 죄를 저지른 다음에는 반드시 그 죄의 당사자에게 고백을 하고 죄값을 치러야 한다. 

친구에게 물건을 돌려주고(또는 그 이상의 변상을 하고), 폭행에 대한 처벌을 받고 치료를 온전히 해주고, 

국가에 대한 세금을 온전히 신고하고 그에 대한 벌금을 다 물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할 수 있다. (마5:23-25)

피해 당사자에 대한 사죄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는 것은, 

피의자가 피해당사자에 대한 합의를 보지않고 판사에게 가서 선처를 호소하는 것과 같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심판자로 묘사된다. 

공의를 행해야 하는 심판자가 피해자에 대한 합의서도 들고 오지 않은 가해자에게 선처를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한 회개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아니, 받으실 수가 없다. 

본인이 죄를 지은 자에게 가서 잘못을 빌지 않고 하나님께만 회개하면 죄가 온전히 씻긴다고 가르치는 것은,  

또는 성도들이 그렇게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교정하지 않는 것은 

복음을 싸구려로 전락시키고 성경을 왜곡, 변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이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가서 사죄하지 않고도 너무나 떳떳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에게 자범죄에 대한 죄책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에 반해, 굉장히 이상한 형태의 죄책감을 기독교인들에게서 너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권위에 의한 죄책감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 성가대 봉사를 하지 않는 것,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것, 새벽기도에 나가지 않는 것, 

성경암송을 하지 못하는 것, 술을 마시는 것, 전도회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 등 등에 대한 죄책감이다. 

이런 것들이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교인들이 느끼는 죄책감의 대부분은 교회내의 활동이나 교회를 경제적으로 부흥시키는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은 율법(성경)을 딱 두 문장으로 요약하셨다. 

1. 하나님을 사랑하고, 2.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의 전부이다. (마22:37-40, 요13:34-35) 

두 가지로 요약하셨지만 저것은 사실 하나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정작 눈에 보이는 이웃은 사랑하지도 않고, 도리어 그들에게 피해를 주고 무례함의 극치를 보이면서 

아무런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이, 

교회에게 하는 충성/봉사에만 죄책감을 느끼는 이 기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고, 

누가 만들어놓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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