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24-07) 스승은 있다 [인문학] (우치다 타츠루) 본문
스승은 있다
우치다 타츠루 저, 박동섭 역, 민들레, 159쪽.
보는 시각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 는 뻔한 내용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용이 아니고
대화와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책이었다.
배움에는 송신하는 자와 수신하는 자, 두 명의 참가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수신자'이다. 제자가 선생님이 발신하는 메세지를 '가르침'이라 믿고 수신할 때 비로소 배움은 성립한다.
우리는 그것을 들어줄 용의가 있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화자도, 청자도 아닌, "화자가 추측한 청자의 욕망"이다.
기분 좋은 대화에서 말하는 측은 말할 생각이 없었지만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을 말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듣는 이는 들을 생각이 없었지만 전부터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말을 바꾸면 당사자 각자가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 경험이 대화의 본질이다. 대화라는 것은 말이 왔다갔다하고 나서야 비로소 두 사람이 '말하고 싶었던 것'과 '듣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전前미래형으로 과거를 회상한다." - 라캉
인간은 상대방으로부터 '네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불쾌해진다. 메세지를 정확하게 주고 받는 것이 소통의 진정한 목적이라면 메세지가 정확하게 전달될 때 불쾌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소통의 진정한 목적은 메세지의 정확한 전달이 아니라 메세지를 주고받는 그 자체가 아닐까? 우리가 소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오해의 폭'과 '정정訂正으로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문장을 전진시키는 힘은 말이 생각을 채워주지 못하는 데 있다."
선생이 선생으로서 기능하기 위한 조건은, 그 사람이 젊었을 때에 일종의 '채워지지 않음'을 경험하고 그 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소통하는 자'다. 소통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게 된다. 소통에서 정답을 정해버리면 대부분의 인간은 존재 이유를 잃어버려 더는 인간이 아니게 된다. 인간의 개성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오답자로서의 독창성'이다. 모든 제자는 스승을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 하지만 그 실패하는 방식의 독창성에 의해서 다른 어떤 제자로도 대체될 수 없는 둘도 없는 사제 관계로 계보를 잇게 된다. 소통의 본질은 메세지의 '잘못 들음'이고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본성을 '잘못 보는 것'이라는 것을 뼛속 깊숙이 경험한 사람이 어른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상대방이 있는 한 배움은 무한으로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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