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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1)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인문학] (아툴 가완디)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24-21)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인문학] (아툴 가완디)

재도담 2024. 11. 24. 23:44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저, 김희정 역, 부키, 400쪽.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인류의 평균 수명은 늘었으나, 
그로 인해 타인에게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기간도 함께 늘어났다. 
그러나 타인에 의존해야 하는 삶은,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힘든 삶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몇 시에 일어날지, 누구를 만날지, 
이런 것들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삶은, 자유의지를 갖지 못한 삶이고, 
그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이 아닌, 로봇의 삶과 같을지 모른다. 

많은 보호자들은 (어찌 보면 자기 만족을 위해)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가족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는, '안전'보다는 '자주성'을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자주성이 상실된 삶은 누군가에겐 지옥과 같을 수 있다. 
자주성이 말살된 요양원 시설은 그래서 살아있는 노인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지 모른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삶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다르다. 
두려워하는 것도 다르고, 견딜 수 있는 것도 다르다. 
그래서 가족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식도락이, 누군가에게는 의미있는 창작활동이, 누군가에게는 사회생활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럽지 않은 삶이,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우리가 건강을 조금씩 잃어가며 만나게 될 여러 치료 옵션들 중에,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대의학은 '생명' 그 자체를 가장 우선하지만, 각 개인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죽을 사람이 어떤 치료를 받게 되어 중환자실에서의 3년의 삶이 연장된다고 가정할 때, 
누군가는 그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런 삶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있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순간에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고, 
더 이상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없는 삶은 무의미할 지 모른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남았다고 판단하는 지에 따라, 사람의 욕구는 달라진다. 
인생이 길게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꿈은 원대하고 크지만,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돌아보는 사람의 범위가 좁아지고, 활동반경도 협소해진다. 


이하는 책건문. 

(우리는 때때로) 아주 조금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뇌를 둔화시키고 육체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치료를 받으며 점점 저물어 가는 삶의 마지막 나날들을 모두 써 버리게 만든다. 많은 환자들이 요양원이나 중환자실같이 고립되고 격리된 곳에서 치료를 받는다.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채 엄격히 통제되고 몰개성화된 일상을 견대 내면서 말이다. 죽음에 이르는 경험을 정직하게 살펴보기를 꺼려하는 경향 때문에 우리는 환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더 많아졌고, 환자들은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위로와 안식을 거부당해 왔다. 23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독립이라면, 그걸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27 

뇌에서 가장 먼저 수축이 시작되는 곳은 계획과 판단 기능을 하는 전두엽과 기억에 관여하는 해마다. 그 결과 기억력과 다중작업능력은 중년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그 이후부터 점점 쇠퇴한다. 58 

노인병을 고칠 수는 없지만 관리하는 것은 가능하다. 65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라앉지 않도록 떠받쳐 주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목적의식이었다. 83 

나라가 부유해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요양원에 들어가 제대로 된 식사와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 물리치료, 빙고 게임 등을 누리는 생활을 한다. 노령에 따른 질병과 장애의 고통을 덜어주고, 적절한 간호와 안전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 일상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대의 양로원이나 요양원을 두렵고, 외롭고, 끔찍한 곳이라고 여긴다. 108 진짜 집이라고 느껴지는 곳에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109 
(요양원을 끔찍한 곳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자율성의 부재인 것 같다. 자기가 필요로 할 때에만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요양원의 공식 목적은 간호와 보살핌이다.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제공받는 사람이 원하는 보살핌은 그 간극이 너무 크다.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하는지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삶의 시야와 한계를 몇 십 년 단위로 판단할 때 우리는 매슬로의 피라미드에서 맨 위에 자리 잡은 것들, 즉 성취감, 창의성, 그리고 자아 실현에 필요한 여러 속성들을 추구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삶의 시야가 축소되어 눈앞의 미래가 불확실하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삶의 초점은 지금, 여기로 변화하게 된다. 일상의 기쁨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로 옮겨 가게 되는 것이다. 155-156 
질병과 노화의 공포는 단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그것은 고립과 소외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175 

토머스는 자신이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 가지 역병'이라고 부르게 된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을 공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183 새 생명들(강아지, 고양이, 새, 등)은 무료한 일상에 자발성을 더해 주었고, 외로움을 달래는 동반자가 되어 주었으며,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공간에서 다른 존재를 돌볼 기회를 주었다. 195 

어떤 대의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 197 

족음을 의미 없는 것으로 느끼지 않게 할 유일한 길은 자신을 가족, 공동체, 사회 등 더 큰 무언가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다. 198
사람들에게는 다른 존재가 잠재력을 성취하도록 돕고자 하는 초월적 욕구가 있다. 199 

생활하는 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자율성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 우리가 직면하는 한계와 역경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서 자율성-자유-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핵심적 가치다. "자율성의 가치는 그것이 만들어 내는 책임감 체계에 달려 있다. 자율성은 우리가 일관성 있고 분명한 각자의 개성, 확신, 관심 등에 따라 자신의 삶을 구체화할 책임을 지도록 만든다. 자율성은 우리가 남에게 이끌려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며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그러한 권리 체계가 허용하는 한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항상 변화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다. 곤심사와 욕구가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자신의 개성 및 충성심과 합치하는 방식으로 삶을 꾸려 갈 자유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217-218 

사생활을 잃는다는 것은 그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일 중 하나였다.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매우 근본적인 문제였다. 219 

노화와 질병으로 인해 심신의 능력이 쇠약해져 가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너무 깊이 개입하고 손보고, 고치고, 제어하려는 욕구를 참아야한다는 뜻이다. 232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 말고도 해야 할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기술에 의존한 의학적 처치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에 따른 대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만큼 큰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줄 의료 복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240 

일반적인 의료 행위와 호스피스 케어의 차이점은 치료하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의료 행위는 생명 연장에 목적을 두고 있다. 지금 당장은 수술, 화학용법, 중환자실 입원 등으로 삶의 질을 희생하게 되더라도 시간을 좀 더 벌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한다. 호스피스 케어는 간호사, 의사, 성직자, 사회복지사 등을 동원해서 치명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질환이 말기에 이르렀다면 불편함과 통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고, 가능한 한 오래 의식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가끔은 가족과 외출할 수 있게 돕는 것과 같은 목적에 초점을 맞춘다. 248 

ㄹ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케어를 받길 원하는지에 대해 의사들과 실질적인 대화를 나눈 환자들이 상황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더 평화롭게 임종을 맞이했고,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 준 경우가 훨씬 많았다. 271 

수전은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되기 전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꼭 물어야 할 질문 목록을 가지고 있다. 병의 예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앞으로 일어날 일 중 무엇이 염려스러운지, 기꺼이 희생할 용의가 있는 것은 무언지, 건강이 더 악화되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상황이 되면 누구에게 그걸 대신하게 할 건지 등 말이다. 279 

임상의와 환자가 맺을 수 있는 관계 : ① 가부장적 관계 (이렇게 저렇게 해라), ② 정보를 주는 관계 (이런 저런 치료 옵션이 있다), ③ 해석적 관계 (환자의 우선순위에 따른 치료는 이것이다) 306-308
→ 바람직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해석적 관계이지 않을까. 환자의 우선 순위(환자가 지키고 싶은 것)가 무엇인지 묻고, 그걸 지킬 수 있는 범위에서의 치료적 접근을 제시하고... 

완화치료 전문가들은 환자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묻고, 설명을 한 다음에, 그 설명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다시 묻는다. 316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이해하는 게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이 언제라도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는 삶에 대한 초점이 좁아지고, 욕구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는 손주들을 더 자주 찾아봤고, 특별히 시간을 내 인도로 날아가 친척들을 만났으며, 새로운 일을 벌이는 걸 줄였다. (...) 아버지는 평생 지켜 왔지만 이제는 자기에게서 멀어져 가는 정체성에 매달리는 대신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그어 둔 삶의 한게선을 다른 자리로 옮겼다. 바로 이것이 자율성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다. 삶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제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간다는 건 그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제어할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319-321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단위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전체적인 구도는 의미 있는 순간들, 즉 무슨 일인가 일어났던 순간들이 모여서 결정된다. 364 

우리가 병들고 노쇠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서 가장 잔인하게 실패한 부분은, 그들이 단지 안전한 환경에서 더 오래 사는 것 이상의 우선순위와 욕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나갈 기회를 갖는다는 건 삶의 의미를 지속시키는 데 매우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이다. 370-371 

결국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373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380 

의료계 종사자들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이상의 일을 해내야 한다. 바로 환자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 우리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의료진이 개입해 환자로 하여금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일은 더 큰 삶의 목적을 위한 것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394-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