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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4)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 [인문학] (야마나 테츠시)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22-44)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 [인문학] (야마나 테츠시)

재도담 2022. 10. 17. 21:18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

야마나 테츠시 저, 최성현 역, 불광출판사, 176쪽.


반야심경=“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준말
반야=프라즈냐prajna=지혜
바라밀다=파라미타paramita=완성
심=중심
반야바라밀다심경=지혜의 완성, 그 핵심을 설한 경전

세상의 거의 모든 문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진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해결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적의, 불만, 부정적인 감정, 곧 모든 불행한 상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데서 일어 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익인 것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것이 이타적인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흔히 '나'라고 부르며 사랑하고 있는 것이 실은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길 바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것을 알면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타인이 행복해지는 것과 별개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좇아 성취하면 행복하리라’는 잘못된 믿음, 무명(=무지=무자각)이 불행의 근원이다.

괴로움에 관한 네 가지 이론 (4제)
1.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알아차려 주십시오)
- 나는 괴로움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단계
2. 이렇게 괴로움이 일어난다(라고 알아차려 주십시오)
- 괴로움이 일어나는 얼개를 아는 단계
3. 이것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이다(라고 알아차려 주십시오)
-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고, 나도 거기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단계
4. 이것은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라고 알아차려 주십시오)
- 훈련법을 실천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해 가는 단계 고苦=괴로움=Dukkha=차축과 차륜 사이에 틈이 생겨 잘 돌아가지 않는 상태=not Well-being

‘내 욕망’은 내가 그것을 바랄 수도 있지만 바라지 않을 수도 있을 때 그것을 ‘나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바라기만 할 수 있을 때, 곧 바라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때는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닌,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탐욕’이라고 하며, 내가 어딘가에 구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한 욕망 뿐만 아니라, 화나 분노 같은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공空=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실제가 아니다=다른 것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독립된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나날의 삶에서 변화가 일어난 사람은 불교의 경전이나 책 따위 한 줄도 읽은 적이 없다고 해도 ‘공’을 잡은, 이해한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는 공을 ‘체득한’ 사람, 혹은 불교의 전통적인 문맥에서 말하면 공을 ‘깨달은’ 사람이라 해야 합니다. 어찌 됐든 핵심은 깊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깊게 이해하면 반드시 삶의 방식이 바뀝니다. 그것이 ‘공’이자, ‘공의 힘’ 입니다. 반야심경의 세 가지 열쇠 말, “괴로움, 공, 반야”
‘공’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할 때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붓다의 자세다. 괴로움의 문제와 떨어진 ‘공’은 헛소리이거나 허언에 불과하다.

觀白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바라밀다시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반야의 지혜를 완성하기 위해 깊이 수행하고 있을 때 오온, 곧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하다는 걸 깨닫고 (통찰하고) 그에 따라 모든 괴로움을 극복했다. 불교의 주제는 괴로움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에 대한 깨달음(통찰)이 필요하다. 반야의 지혜를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실은 ‘반야의 지혜’는 완성할 수 없다. 완성을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이 영원히 이어질 뿐이다. 알아차리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알아차림, 곧 자각은 그 대상과 하나가 돼 있을 때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신이 화 자체가 되어있을 때는 ‘나는 화가 나 있다는 걸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알기 위해사는 반드시 화로부터 몸을 빼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물질 현상 일체를 불교에서는 ‘색’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정보들, 현실에서의 자극 뿐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것,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거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제대로 된 판단이나 오해 또는 오판도, 바깥에서 주어진 것이든 안으로부터 온 것이든, 모든 것이 다 ‘색’이며 우리는 여기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며 산다.

그런데 실상 수많은 자극(정보)이 있어도 우리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만 반응한다. 곧, 우리가 반응하는 것이 ‘현실’을 만든다. 그러면 현실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우리는 우리가 틀림없이 실재하는 것에 반응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신체에 나타나는 방응이 그 대상의 현실성을 만들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이 바깥 세계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을 만드는 것은 바깥 세계로부터의 정보에 반응하는 나 자신이다.

‘나’에게 변화가 일어나면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나의 반응이 바뀐다. ‘바깥을 향한 나의 반응’이 바뀐다는 것은 결국 ‘바깥 세계’ 자체가 바뀐다는 뜻이다.

탐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바라는 것을 얻으려는 욕망’이다. 탐욕과 화는 앞뒤 관계에 있는 감정이다. 탐욕은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그런 요구를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아차리기 힘들고 그래서 스스로 멈추기 힘들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큰 번뇌 : 탐욕, 화, 어리석음.

‘반야의 지혜’란 자신의 의존돼 있는 존재이며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 ‘공’하다는 것, 바깥 세계의 정보에 대해 자동적으로 반응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다. ‘알아차림’, 곧 ‘자각’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동적인 반응을 멈출 수 있다.

8가지 바른 길 (8정도, 위에 있는 4제와 합하여 ‘4제8정도’라고 부름)
- 정견 : 바르게 보기
- 정사 : 바른 생각
- 정어 : 바른 말
- 정업 : 바른 행동
- 정명 : 바른 생활
- 정정진 : 바른 노력
- 정념 : 바른 알아차림
- 정정 : 바른 마음의 통일
이 모든 것의 목표는 '반야의 지혜를 완성'하는 것, 곧 '반야바라밀다'다.

‘인과’와 ‘연기’
꽃이 꽃을 피울 때, 꽃=인, 온도/습도/양분=연, 꽃피움=과.
마음을 맑힌다(비운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분노의 ‘인’을 없애가는 것을 말한다. 인이 없는 곳에는 과도 없다.
마음과 인과 관계가 가장 깊은 것은 몸이다. 몸에 화라는 반응이 나타나면 흔히 정신에도 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자신을 관찰하는 훈련이 깊어지면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알아차리면 반응이 마음으로 올라오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나 말은 ‘과’를 낳는 ‘연’이 된다. 모든 것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이어져 있어 무엇 하나 독립돼 있지 않은 이 ‘공’의 세계에서는 ‘과’를 낳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연동된다.

불교에서는 마음의 활동을 네 단계로 나눠서 본다. 한자로 ’수상행식‘이라고 하는데, 하나의 단어처럼 묶어서 쓴다. 수 : 감각작용, 상 : 표상(이미지), 행 : 마음과 몸이 조건 지어지는 작용, 식 : 인식 작용.

붓다는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능성을 끝없이 펼쳐갈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조건 지어진 채로 무의적으로 했던 행동을 알아내고, 그 틀을 해체해 가는 작업을 해야한다. 조건 지어짐을 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바깥 세계에 의지하는 일이 사라지고 온갖 조건 지어짐이 절로 해체된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적을 낳는 열쇠라고 저는 여러 번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 이 주문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문을 외어 자신에 관한 부정적인 믿음을 지워가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그렇게 하면 조건 지어져 있던, 무자각적이던 모든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으로부터 점차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일 때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긍정하는 주문이 필요합니다. <반야심경>은 전체가 이 주문에 둘러 싸여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구원은, 최종적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반야심경

摩訶 般若波羅密多心境
마하 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관자재보살
관자재보살이
行 深 般若波羅密多 時
행 심 반야바라밀다 시
반야바라밀다를 깊이 행할 때
照見 五蘊皆空
조견 오온개공
오온(색수상행식)이 공허함을 깨닫고 (*照見조견 : 깨닫다)
度 一切苦厄
도 일체고액
일체의 고통을 극복했다

舍利子
사리자
사리자여
色不異空
색불이공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空不異色
공불이색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
色卽是空
색즉시공
색이 곧 공이고
空卽是色
공즉시색
공이 곧 색이며
受想行識
수상행식
수상행식
亦復如是
역부여시
또한 그와 같다

舍利子
사리자
사리자여
是諸法空相
지제법공상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諸法제법 : 모든것)
不生不滅
불생불멸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不垢不淨
불구부정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不增不減
부증불감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是故 空中無色
시고 공중무색
이와 같이 공 속에는 색도 없고
無受想行識
무수상행식
수상행식도 없고
無眼耳鼻舌身意
무안이비설신의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뜻도 없고
無色聲香味觸法
무색성향미촉법
색도 소리도 향도 맛도 촉각도 대상도 없고 (*法법 : 의식의 대상)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안계도 없고 ~ 의식계도 없고
(*眼界안계 : 눈과 눈으로 보는 것, *乃至내지 : 중간생략, *意識界의식계 : 생각하는 것과 생각되어지는 것)

無無明 亦無無明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무명도 없지만 무명이 다하는 일도 없고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노사도 없고 노사가 다하는 일 또한 없다

無苦集滅道
무고집멸도
괴로움에 대한 네 가지 진리도 없고
無智亦無得
무지역무득
지혜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
以無所得故
이무소득고
얻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菩提薩陀
보리살타
보리살타는 (* 보리살타菩提薩陀(보살) 보디사트바 Bodhisattva : 구도자)
依般若波羅密多 故
의반야바라밀다 고
반야바라밀다에 따라
心無罣礙
심무가애
마음에 가애가 없고 (* 罣礙가애 : 사로잡힘)
無罣碍故
무가애고
가애가 없는고로
無有空怖
무유공포
공포도 없다

遠離一切顚倒夢想
원리일체전도몽상
일체의 전도몽상을 멀리 벗어나서
究竟涅槃
구경열반
열반에 이른다

三世諸佛
삼세제불
삼세의 제불도 (* 三世삼세 : 과거, 현재, 미래)
依般若波羅密多 故
의반야바라밀다 고
반야바라밀다에 따르는 고로
得 阿縟多羅三漠三菩提
득 아뇩다라삼막삼보리
아눗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 阿縟多羅三漠三菩提 아누타라삼약삼보디 Anuttara-samyak-sambodhi : 완전한 깨달음)

故知 般若波羅密多
고지 반야바라밀다
고로 알아야하리, 반야바라밀다를
是 大神呪
시 대신주 (* 神呪신주 : 주문)
이것은 대진언이고
是 大明呪
시 대명주
이것은 대명주이고
是 無上呪
시 무상주
이것은 위 없는 진언이고
是 無等等呪
시 무등등주
이것은 무등등주로서
能除 一切苦
능제 일체고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眞實不虛
진실불허
진실하고, 허위가 아닌 것이다

故說 般若波羅密多呪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그런고로 반야바라밀다 주를 설하노니
卽說呪曰,
즉설주왈,
이와 같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아제아제 바라아제
GateGate Pāragate
가떼가떼 빠라가떼
가고, 가서, 저 언덕에 이른 자여,
波羅僧揭諦 苦提娑婆訶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빠라상가떼 보디쓰와
깨달음이여. 경사로세!

揭諦揭諦 波羅揭諦
아제아제 바라아제
GateGate Pāragate
가떼가떼 빠라가떼
가고, 가서, 저 언덕에 이른 자여,
波羅僧揭諦 苦提娑婆訶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빠라상가떼 보디쓰와
깨달음이여. 경사로세!

揭諦揭諦 波羅揭諦
아제아제 바라아제
GateGate Pāragate
가떼가떼 빠라가떼
가고, 가서, 저 언덕에 이른 자여,
波羅僧揭諦 苦提娑婆訶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빠라상가떼 보디쓰와
깨달음이여. 경사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