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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0) 최소한의 선의 [인문학] (문유석) 본문

Report of Book/인문학

(2022-40) 최소한의 선의 [인문학] (문유석)

재도담 2022. 10. 7. 01:07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저, 문학동네, 256쪽.

아, 읽으면서 여러모로 많이 행복해진 책이다.
문유석 작가님의 책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읽으면서 많이 배웠고, 더 많은 부분 공감했다.
좋은 글을 써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많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을 그리워할수록, 그걸 지탱해왔던 기둥둘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우리는 약속, 규칙, 양보, 거래, 상호이해, 자제, 존중의 힘으로 배낭을 메고 낯선 도시로 떠날 수 있었고, 한밤중에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었다. 그 힘이 제도화된 거싱 법이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한다. 이것이 문명세계를 떠받들어온 기둥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가 발전시켜 온 공통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법은 문명 세계의 기둥이다. (pp.8-9)

법 체계는 엄격한 위계질서의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다. 오래된 법보다는 개정된 새로운 법이 우선하고(신법 우선의 원칙), 주택임대차보호법같이 특수한 상황을 규율하기 위해 만든 법이 일반적인 민법에 우선하며(특별법 우선의 원칙), 법의 체계상 상위법이 하위법에 우선한다(상위법 우선의 원칙). 그리고 이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최상위법이 헌법이다. (pp. 31-32)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기구에 관한 수많은 조항들 중에도 제일 꼭대기에 있는 규정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조항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최고의 헌법적 가치이자 헌법과 국가의 존재 이유다. 인간의 존엄성을 다른 권리나 법 원칙과 충돌할 때 우선순위를 비교해서 제한하거나 후순위로 돌릴 수 없다. (...)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양보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적인 목적이며, 헌법을 정점으로 한 법질서는 모두 이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자유도, 평등도, 시장경제도, 계약자유의 원칙도, 소유권도, 국회도, 대통령도, 대한민국 자체도,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문명국가의 법 체계 자체가 이렇게 형성되어 있다. (pp. 32-33)

인간은 왜 존엄한 것일까? (...) 칸트는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도덕적 자율성에 두고 있다. (...) 인류는 오랜 역사 끝에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모든 인간을 존엄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회계약을 이루어냈고, 이것이 문명국가의 헌법이다. 신이 어떤 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어떠한 본성적인 특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들이 오랜 역사속에서 서로의 존엄함을 인정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를 기초로 하는 사회가 성립되었고, 이러한 약속은 비록 현실에서 완전히 실천되고 있지는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소중하다. 인간 존엄성의 보장은 자유에서 출발한다.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존재, 객체가 아닌 주체인 존재, 인간을 그런 존재로 인정하면서 비로소 근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타고난 계급에 의해, 성별에 의해, 믿는 종교에 의해 차별받는다면, 불합리한 이유로 남들과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면 사실상 손발이 묶인 채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존엄한 존재는 동등하다. 그래서 평등이 필요하다. 자유와 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탱하는 기둥이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역시 자유권적 기본권, 평등권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자유와 평등이 있어도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 헌법은 많은 권리의 리스트를 적어놓고 있다. 교육받을 권리(제31조), 근로의 권리(제32조),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제33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환경권, 제35조), 그리고 가장 포괄적인 권리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서양의 법치주의는 동양의 법가 사상과 완전히 반대의 역사적 맥락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영국의 전제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오랜 투쟁 과정에서, 왕의 변덕과 횡포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왕의 지배가 아닌 국민의 대표가 제정한 ‘법의 지배’가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고 관철해낸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로 대중의 여론을 바로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된 정보화 사회에서는 대중 자체가 독재자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성급한 여론몰이로 마녀사냥을 하고, 진영 논리에 따른 편가르기로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들의 근거 없는 혐오 감정을 다수의 뜻으로 정당화하며 소수자들을 억압할 수 있다. 여기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이 다수의 뜻이라며 소수자를 억압하는 법률을 양산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법률만능주의, 법 포퓰리즘, 법률에 의한 독재가 횡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p.81)
법치주의는 법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누구든 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말고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가 진정한 법치주의 사회다.

'법치주의 사고방힉'의 주요 특징들. ① 신중함. 상대방 입장도 들어보아야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극적이고 선명한 주장에 주의력을 빼앗기기 쉽다. 의식적으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② 상대주의. 명확한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면, 최선이 없으면 차선, 최악보다는 차악, 최대한까지는 힘들면 최소한은 무엇인지 포기하지 말고 논증하고, 논증한 끝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③ 절차적 정당성. 이는 분쟁 당사자 모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법은 기본적으로 혁명이 아닌 점진적 개선, 전쟁이 아닌 평화, 굴복이 아닌 타협을 추구한다. 법치주의의 핵심은 '권선징악'이 아닌 '적법 절차'다. 인간사회 분쟁의 본질은 전쟁이나 다름없는데 이 곳에서 법은 최소한의 교전 수칙을 제공한다.

법치주의와 자유주의는 이란성 쌍둥이다. 자유는 스스로 무장하여 압제자와 싸운 이들에게만 보장되었다. 남을 위해 피 흘리며 싸우는 인간은 드물다. 이후의 역사를 통해 자유의 주체가 확장된 것은 인류가 저절로 고결하고 이타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선이 확대되고 스스로 무장하여 싸우는 자들의 범위가 넓어졌기에 전리품을 향유하는 주체도 늘었다.
인간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유별나고, 비루하고, 불온할 자유가 있다. (...) 양심, 사상, 학문, 종교, 그 어떤 생각이든 개인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을 때는 국가나 사회가 이를 규제할 수 없다. 이를 '내면적무한계설'이라고 한다. 내심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이를 강제로 알아내려는 시도를 금지해야 한다. 그래서 침묵의 자유가 보장되고, 간접적인 행동을 요구함으로써 내심을 알아내려는 행위도 금지된다. 이를 양심 추지의 금지라고 한다.
자신에게 어떠한 실질적 해도 끼치지 않는데 단지 자기 선호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기 싫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은 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우리나라 특유의 현상으로서 도덕이 정치화되는 경향이 결합된다. 진영 논리가 강화되고 논쟁 대신 전쟁이 공론의 장을 지배할수록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타격하는 수단은 도덕이다. 치밀한 논리나 실질적인 정책으로 싸우는 것은 힘들고 대중의 성마른 관심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생활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권력형 비리가 개입되었는지는 공적 영역의 일이지만 그 외에는 개인이 각자 책임질 문제이기 때문이다. (...) 도덕이 무기가 되는 사회는 공멸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중세의 암흑과, 칼뱅의 엄격한 종교 윤리에 기반한 공포정치와, 중국 문화대혁명과, 캄보디아 폴 포트의 대학살을 우리는 목도했다. (...) 타인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도덕적 염결성을 요구하기보다는, 각자 최소한의 규칙은 엄수하기, 각자의 밥그릇을 존중하며 타협하기, 건전한 무관심, 그리고 최소한 사악해지지는 말자는 자기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벌이란 죄에 대한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 시민들의 상식이고, 동양의 전통적인 형벌관에 가까울텐데,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된 서구의 근대적 헌법의 시각에서 벌이란 자유에 대한 제한이고, 그렇기에 다른 국가 작용처럼 필요 최소한이어야 한다. 이 시각 차이에서 형사사법과 국민 법감정의 괴리가 근본적으로 시작된다. (p.146)

범죄로 인한 피해로부터 평균적으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고 법을 운용한다면, 실제 범죄 피해자들의 공포와 분노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 예전부터 피고인의 호소를 잘 경청하고 선처를 잘 베푸는 법관은 '생불' 소리를 듣곤 했다. 반면 법정구속을 칼같이 하고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법관은 모질다, 모났다는 소리를 듣는다. 왜일까. 법관이 접하게 되는 사람들의 입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사의 인간관계는 협소하다. 동료였던 법관도 선배였던 법관도 언젠가는 변호사가 된다. 판사 주변에는 시간이 갈수록 변호사만 가득해진다. 그리고 변호사는 피고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선처 잘하는 판사를 싫어하는 변호사는 없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때 따라야 할 요건과 한계가 '과잉금지의 원칙'이다. 과잉금지의 원칙은 네 가지의 부분 원칙으로 나뉜다.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다. 이 중 가장 유용하게 자주 사용되는 원칙은 침해의 최소성이다. 정치가 최대한을 추구한다면, 사법은 최소한을 추구한다.

롤스 <정의론>의 핵심은 '무지의 베일'과 '최소 수혜자에 대한 배려'다. 즉, '사람들은 무지의 베일 속에서라면 최소 수혜자에게도 이득이 되는 사회계약에 합의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 현실에서 정의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더 많은 자유와 창의, 혁신을 보장하고 장려하는 것이 우리 헌법질서의 근본이다. 다만 자유와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대안이 없는 최소 수혜자들을 무작정 희생시킬 수는 없다. 혁신가들은 뒤처진 이들도 함께 살 수 있는 윈-윈 방안을 고민해야 하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 혁신이 사회 전체적으로 낳는 편익이 충분히 크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평등이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pp. 204-205)

나라가 망조 들 때 벌어지는 일들은 항상 비슷하다. 소수 대귀족의 사유토지 증가로 대농장화, 백성에게 가혹한 각종 세부담 증가, 귀족 자제 중심의 사학 증가와 고위 관리 자제를 특채하는 문음, 음서 제도 확대로 지배 계급의 세습 구조 공고화, 과거제의 붕괴로 서민 계층에서 지배 엘리트로 신분 상승하는 통로 폐쇄. 이러다가 결국 백성들이 죽창 들고 일어나 민란이 일어나는데, 그래도 특권 계급이 정신 못 차리고 백성 때려잡으며 버티고 있으면 주변의 외세가 허약해진 나라를 집어삼키러 쳐들어온다.

노력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공공성에 기반을 두고 있듯이, 능력에 대한 사회적 평가 역시 공공성과 관계 없는 자연법칙이 아니다. (...) 어떤 능력이 필요한 능력인지부터 사회를 떠나서는 규정하기 어렵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혼자 사냥하는 육식동물이라면 사회와 무관한 개인의 고유한 능력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 노력도 능력도 그 자체로 당연히 보상받아야 되는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기에 보상받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발 더 나아가볼 수 있다. 노력에 대해 사회가 보상하는 이유는 단지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노력하면 보상받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생산적이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놀이조차도 계속하려면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배려의 혜택은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간다. 판이 깨지는 것을 막고 생태계를 순환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pp.215-219)

헌법이 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핵심 가치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다. 자유도 평등도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수단이다. 공정성 역시 마찬가지다. 개개인에게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정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정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저해한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무한한 경쟁을 통해 쉴 틈 없이 낙오의 공포 속에 사는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도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인데 거꾸로 경쟁 자체가 목적이고 인간은 그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것은 노예의 삶이다.

* 타임뱅킹 : 자기 시간을 들여 여러 봉사활동을 하며 공동체 내에서 신용 포인트를 쌓은 뒤 그 포인트, 즉 시간을 교환하는 제도. 예를 들어 처지가 어려운 싱글맘이 지역 타임뱅크에 요청을 올리면 솜씨 좋은 누군가가 찾아와 벽에 난 구멍을 막아주고 부엌을 수리해준다. 수리해준 사람에게는 해당 시간 만큼의 포인트가 적립되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싱글맘은 짬이 날 때 아이를 봐주거나 요리를 해주고 아이들은 마을 가든파티에서 악기를 연주해서 포인트를 적립한다.

* 디지털 사회신용 Digital Social Credits, DSC : 타인을 돌보고 돕는 일, 환경을 개선하는 일 등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할 때마다 정해진 DSC를 획득하고, 그 포인트를 현금처럼 사용. 부동산 부자는 욕을 먹지만 DSC 부자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자기 실현 욕구, 인정 욕구를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로 유도하는 넛지 효과가 생길 수 있다. (pp.24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