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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3)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 [육아] (고든 뉴펠드) 본문

Report of Book/육아

(2022-33)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 [육아] (고든 뉴펠드)

재도담 2022. 5. 11. 17:25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
고든 뉴펠드│가보 마테 저, 김현아 역, 북라인, 400쪽.

육아 기술이나 아이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것 없이는 육아의 확고한 토대가 흔들리는 필수불가결한 특별한 관계, 발달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애착attachment' 관계라고 부른다. 한 아이가 한 어른의 부모 역할을 받아들이려면, 아이가 그 어른에게 강한 집착을 가지고 그와 접촉하며 가까이 지내고 싶어해야 한다. 인생 초반에는 이런 욕구가 상당히 신체적이어서, 아기는 말 그대로 부모에게 찰싹 달라붙어있어야 한다. 모든게 순리대로라면, 이런 애착은 정서적 친밀감으로 진화하다, 마침내 심리적 친밀감으로 발전한다. 책임감 있는 어른과 이런 관계가 부족한 아이는 키우기도 매우 힘들지만, 가르치는 일조차 어려워진다. 애착 관계만이 양육의 적절한 맥락을 제공한다.

육아의 비결은,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부모가 '어떤 존재인가'에 있다. 아이가 부모와의 접촉과 친밀감을 원하면 부모는 양육자로서, 위안자로서, 인도자로서, 모범으로서, 멘토로서, 혹은 코치로서의 권한을 갖게 된다. 부모와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된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홈베이스이고, 실패했을 때 돌아갈 수 있는 피난처이며,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세상의 어떤 육아 기술도 이 애착 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

부모의 사랑과 권위를 훼손하는 가장 주요하고 치명적인 경쟁 애착은 점점 더 확대되는 또래들과의 결합이다.

부모 역할을 하는 어른이 없는 경우, 사람의 아이도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를 따르게 된다. 지난 50~60년 동안 당연히 아이에게 영향력을 발휘했던 부모를 대신해 지금은 또래 집단이 그 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칼 융Carl Jung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이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관계에서 “결핍된 것”이 아이의 인성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두려운 것은, 또래들이 가장 중요한 사람인 어른들을 대신할 경우 또래들과의 관계에서 결핍되는 부분이 아이에게 가장 막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이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수용, 양육의 욕구, 상대를 위해 분발하는 능력, 상대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은 또래들이 결코 채워 줄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부분의 결핍은 많은 아이에게 재앙을 불러온다.

또래지향성의 영향은 10대에 가장 뚜렷하지만, 초기 징후는 초등학교 2, 3학년 때 나타난다. 그 발단은 유치원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전에 문제를 방지하거나 초기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특히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은 누구나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알에서 나온 오리가 처음 본 생명체를 어미로 여기고 좇아가듯이, 모든 포유류는 특정 대상에 대해 "애착관계"를 형성하려는 본능이 있다. 애착은 처음에 신체적인 것에서부터 발달해서, 정서적, 심리적인 것으로 발달해나가는데, 애착을 느끼는 대상에 대해 붙어있으려 하고, 닮아가려 하고, 가치관을 배우려 하고, 비밀을 공유하려 한다. 애착관계에서 결핍이 발생하면 인성에 큰 상처를 남기는데, 또래로부터 애착관계를 형성하는(또래지향적인) 아이들은 부모지향적인 관계에 비해 결핍이 발생하기 쉽다(부모보다 더 꾸준히 사랑과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친구는 없고, 아동/청소년기에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도 없다). 애착은 신체적 접촉, 동질성(모방), 소유권과 충성심,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사랑, 비밀공유를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표현되기도 한다.
건강한 애착관계인 부모지향성이 사라지고 부적절한 애착관계인 또래지향성이 이 시대의 큰 조류가 된 것은, 문화적/경제적 구조의 변화로 기인한 측면이 크다. 부모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아이들은 또래 집단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통제되지 않은 소셜미디어 문화는 또래지향성을 한층 강화한다. 현대사회는 거대한 애착 결핍을 만들어냈다.
육아에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부모에게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권위가 있다. 부모의 힘은 어떤 노력이나 말이나 행동이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나오게 되어 있다. 힘이 부족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태도가 거칠어지며, 위협을 하게 되고, 부모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찾게 된다. 부모의 힘은 아이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바람직한 태도를 이끌어 내며, 부모에 대한 존경을 불러일으키고, 아이의 협력을 보장한다. 부모의 힘은 아이의 의존성에 달려 있다.
부모지향에서 또래지향으로 바뀌게 되면 부모로부터 아이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빠져나갈 뿐 아니라, 무고하고 무능한 친구들에 의해 휘둘리게 된다. 또래의존성의 씨앗은 대개 초등학교 때 뿌리를 내리지만, 또래와 부모에 대한 애착의 양립이 점점 불가능해지면서 부모의 힘이 파괴되는 것은 중고등학교 떄다. 애착 대상이 바뀌면, 의존 대상도 바뀐다. 부모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해야 한다. 즉 자연의 순리대로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정서적으로도 의존해야 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의존한다고 해서 독립적으로 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으면(부모와 애착형성에 실패하면),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또래집단과 애착을 형성하고 그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애착은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 순수한 본능으로 아이와 훌륭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은 형식적인 육아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성공적으로 유능한 부모가 될 수 있다. 애착은 위계를 잡아준다. 뇌에는 태생적으로 지배하는 쪽과 의존하는 쪽, 보살피는 쪽과 보살핌을 받는 쪽, 베푸는 쪽과 베품을 받는 쪽으로 나뉘는 원형적인 지위들이 새겨져 있다. 애착의 위계에 자리를 잘 잡은 아이는 보살핌을 받거나 지시를 받는 일을 잘 받아들인다. 애착을 잃으면 부성애/모성애도 함께 잃게 되고, 아이가 부모에게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애착이 있으면 아이는 부모 곁에 붙어있으려 하고 부모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따르려고 하며,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여 '애착양심'을 발달시킨다. 애착은 자연적으로 내부에서 우러나는 것이지만, 지렛대(보상이나 처벌)는 인위적이고 외부적이다.
또래지향성은 아이의 자연적인 애착을 대신함으로써 엄청난 저항(대항의지)을 만든다. 부모와의 결합 욕구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아이에게 강요할 때마다 우리는 이 대항의지를 부추기는 셈이다. 진정한 독립성이 발달하고 성숙함이 이루어지는 순간 대항의지는 사라진다. 또래지향적인 10대는 또래들과의 접촉 욕구가 좌절될 때 강항 불만을 느낀다. 이런 아이는 또래들의 기대에 맞서서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는 반면, 부모의 요구에는 분개하거나 반항한다. 이런 거칠고 왜곡된 형태의 대항의지를 건강한 10대의 자기주장을 착각하는 어른들은 너무 일찍 부모 역할에서 손을 뗀다. 청소년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내주고, 자신의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현명한 일이지만, 많은 부모가 그저 포기해 버린다.
상호 존중과 호기심, 공통된 인간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또래지향성에 의해 세계화된 문화가 아닌 심리적인 성숙이 필요하며, 이런 성숙은 오직 건강한 발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렇게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은 어른들뿐이다. 아이들은 성인 멘토들과의 건강한 관계 안에서만 자신의 타고난 권리인, 인류의 보편적이고 유구한 문화유산을 이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