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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Gen's story

(2022-17) 소년을 읽다 [에세이] (서현숙) ★ 본문

Report of Book/에세이

(2022-17) 소년을 읽다 [에세이] (서현숙) ★

재도담 2022. 2. 28. 09:31

소년을 읽다 

서현숙 저, 사계절, 224쪽. 

의도를 지닌 이야기였다. 그렇게 짐작되었다. 소년의 마음에 ‘하고 싶은 일’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 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무작정 방치하지 않는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돈을 모으든 공부를 하든, 어떤 노력이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길 안의 삶’을 살게 된다. (p.54)

소년원 아이들이 독서동아리는 해서 뭐 하냐고?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할 수준이 되냐고?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15년 이상 아이들과 책을 읽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되고 믿게 된 것이 있다. 아이에게 “책으로 말을 거는” 일이 쉬우면서도 위대한 힘을 지녔다는 것, 심하게는 사람의 영혼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은 감정을 나누고 서로 마음을 연다. 서로를 향해 무장해제한다. 주변의 일들에 함께 물음표를 꽂아본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장애인이 그런 대우 받는 게 정당한 거야? 여자와 남자에 대한 차별 괜찮은 거야? 나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야?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야? 삶과 세상에 대해 점점 더 나은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p. 66)

강준이는 설렘 그 감정 자체가 그립다. 동주(서현의 남자친구) 때문에 가슴 설레는 서현의 마음이 그냥 좋아 보였다고 한다. 미래에 생기게 될 여자친구와 이 소설을 함께 읽고 싶단다. 여자친구와 함께하고 싶은 것이 ‘책읽기’가 된 강준이. 그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그때 너의 마음은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에 그늘도 없고, 따뜻하고 환했으면 좋겠다. (p. 67) 

도운이는 헤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수업으로 옮겼는데 국어수업이 너무 그립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잠깐 인사하러 들르면, 선생님이 환하게 웃어주셔서 기분이 좋아요. 선생님은 왠지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다른 반 학생인데도, 간식을 챙겨놓았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늘 환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잠깐 만나서 인사만 나누는 나를 위해 도운이는 방에서 펜을 들고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p. 68)

선물(?)을 받은 찬현이가 웃으면서 “선생님, 돈 많아요? 우리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한다. 
“아냐, 나 돈 없어. 원래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짜장면도 사주고 선물도 주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월급 받잖아. 그래야 학생들이 나중에 어른 돼서 선생님 찾아와 밥 사주지!” 
“저도 나중에 성공하면 선생님 밥 사주러 갈게요!” 
찬현이가 호기롭게 장담한다. 그 순간 기도했다. 그 약속이 부디 지켜지기를. 나중에 찬현이가 나에게 자랑할 생활의 이 야기가 아주 많기를. 이 녀석 자랑에 내가 질리기를.
우리는 만나서 짜장면을 한 그릇 먹었을 뿐인데, 마음을 나눈 느낌이다. 형식이나 체면치레 없는 짜장면 만남. 아이들과 나의 마음이 서로를 향해 다가서게 된 것 같다. 그런 기분이다. 내가 사만 원을 들여서 이렇게 기쁜 마음을 선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래서 조금도 아깝지 않은 사만 원. 얘들아, 토요일 오후에 나랑 짜장면 만남 해줘서 고마워. (p. 73)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에 남궁증이라는 선배 교사가 있었다. 그 선생님과 나는, 네 명이 근무하는 작은 교무실에서 함께 근무했다. 당시 나이가 50대 중반 정도셨는데, 아이들이 이 선생님 앞에만 오면 그렇게 까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남궁증 선생님이 나를 가장 예뻐한다’고 믿는 것처럼, 까불고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비단 몇 명의 아이가 아니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믿고 까불었다. 선배 교사의 내공이 대단하셨다. 아, 그때 알았다. 당신이 나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있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도 마음도 자유로이 노닌다. (p. 90)

“일 년 동안의 작가와의 만남을 생각하니, 아이들이 유난히 좋아했던 책의 공통점이 있어요. 박찬일 주방장님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도, 이종철 작가님의 <까대기>도, 다 일하는 이야기였어. <회색 인간>을 쓴 김동식 작가님이 들려준 이야기도 일하는 이야기였고.”
“맞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잖아요. 음식, 택배.” 
맞다. 음식도 택배도 일상의 지척에 있다. 더구나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의 뒤편으로 슬쩍 돌아가보았다. 거기에는 일하는 이의 땀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다. 일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부서지는 몸이 있고, 산처럼 쌓인 택배상자가 무너지는 바람에 얼굴이 찢어져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다. 무거운 택배 박스를 옮기다가 허리가 나가서 쓰러진 사람, 그러고도 돈 때문에 다음 날 허리를 붙잡고 또 출근해서 택배로 부쳐진 쌀가마니를 옮기는 사람이 있다. (p. 196)

우리나라에 열 개의 소년원이 있고, 소년원에 갇힌 청소년이 1000명이라고 한다. 우리가 1000명의 청소년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소년원 본연의 목적처럼 우리 사회는 그들이 행동을 교정하고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더 이상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의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실현하지 않아도 좋으니, 좋은 삶을 살지 못해도 좋으니, 사회의 저 아래에서 우리에게 무해한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혹시 아닐까. 
그가 지은 죄는 누군가를 괴롭히고,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가해자인 소년을 영원히 가둘 수 있다면 그저 가 두면 된다. 가두는 것만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곧 우리의 이웃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엇보다 영혼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 우리 곁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죗값을 치르는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아이들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받는 것 자체가 이미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소년들은 죗값을 치르면서,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 교육에 ‘좋은 삶’을 직접 경험하는 것을 포함시키면 어떨까. 내가 겪은 바로는 소년원의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삶’을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들이 좋은 삶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자극이 되지 않을까. 좋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맛있는 음식에 대해 배우는데 먹어보지 않고 가능한가. 맛 좋은 음식을 먹어보는 경험이 중요한 배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삶을 배우려면 좋은 삶을 맛봐야 한다. (p. 215)

 

소년원에서 1년간 했던 국어 수업일기. 
이 책을 읽으면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도 순수하고 좋은 마음씨를 지닌 '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또 <촉법소년>이라는 넷플릭스의 드라마를 보면 이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년원에서의 삶이, 그 아이의 삶을 바꿔줄 수 있을까? 
1년이든, 2년이든 소년원에서 아무리 긴 시간을 지낸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나온 이후의 삶이 똑같이 비참하고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폭력과 방임, 학대, 편견, 편애로 가득하다면 그 아이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면, 사실 아이가 소년원에 있는 동안 그 가정과 환경을 개선시키려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참 어렵고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다. 

 

소년원에서 1년간 했던 국어 수업일기. 
누가 책을 읽어준 기억이 한 번도 없는 아이, 
먹고사는 일의 급급함을 너무나 잘 아는 아이, 
범죄이력으로 선입견 가득한 시선을 겪는 아이. 
그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남의 처지를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떤 일에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안타까워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들이 소년원을 거쳐간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기질과 성격 탓일까? 
아니면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들의 환경 때문일까? 
부모의 폭력과 방임, 교육의 부재, 
가난으로 인해 일찍 시작되는 노동, 
범죄를 가르치는 이웃형과 친구들. 
누군가에게 따뜻한 대우를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경험, 
이용당하기만 하고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이들이 
소년원에서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낸다 한들 
그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어쨌든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배웠다. 
부디, 그들이 언젠가 또 다시 삶의 행복을 맛볼 수 있기를, 
세상이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언가를 꿈꿀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