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21-14) 여행준비의 기술 [에세이] (박재영) 본문
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저, 글항아리, 240쪽.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에서 작가의 인터뷰를 듣고 갈무리 해 뒀다가
페친인 박은화 선생님의 글을 보고 바로 구매.
여행이 목적이 아닌, 여행준비가 목적이고 취미라는 시각의 전환이 신선하고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실제로, 우리는 여행보다도 여행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 더 희열을 느끼는게 아닌가 싶다.
여행은 못하더라도 여행준비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아래는 책에서 건진 문장.
여행준비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이 풍성해지는 게 아니라 추억이 풍성해지는 거다. 여행을 앞두고 그 나라 말을 조금만 공부하면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메뉴판을 읽고 원하는 걸 주문하는데 필요한 단어들을 익히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여행준비의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이유는 여행준비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선택이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다. 하지만 내가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따로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남들이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찾아야 한다. 일단 많이 찾아서 목록에 올리고, 더 좋은 곳을 찾으면 덜 좋은 곳은 버려야 한다. 많이 버릴수록 다음 여행이 즐거워진다.
여행준비라는 취미의 장점 중 하나는 화제가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여행준비를 많이 하고 떠난 여행일수록 이야깃거리가 많이지는 건 당연하지만, 준비만 하고 떠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말 중요한 점은 내가 떠들 수 있는 소재만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더 많은 말을 하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준비가 취미인 사람은 누군가가 여행 이야기를 꺼냈을 때 '장단'을 맞춰주기가 아주 쉽다.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약간의 준비라도 한 장소가 화재로 오를 때,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보충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도 거길 가고 싶어서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는 말만 해도 상대방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들도 가고 싶어 하는 '좋은' 곳에 내가 '먼저' 다녀왔구나, 하는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여행의 좋은 점으로는 100만 가지가 있는데 크게 나누면 결국 두 가지다. 하고 싶었으나 평소에 하지 못했던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피하고 싶었으니 평소엔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여행준비의 시작은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지가 결정된 이후라면,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그곳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짧은 여행 중에 그 나라의 독특한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뭔가 특이한 점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 연원을 깊이 이해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러니 여행 전후에 여행지에 관한 책을 읽거나 여행 중에 그들이 사는 방식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그런 맥락을 이애하는데, 나아가 우리 생활에 필요한 교훈이나 아이디어를 얻는데,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며 쓸데없이 우기거나 타인에게 간섭하는 행위를 줄이는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여행자는 호기심이 많고 고집은 적어야 한다.
독서와 여행준비는 좋은 짝이다. 둘 다 좋은 취미지만, 두 가지를 다 좋아하면 확실한 시너지가 생긴다. 목적지가 정해졌을 때, 조금만 검색해보면 그곳과 관련된 책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책값 몇만 원을 미리 쓰면, 여행이 최소 몇십만 원어치는 더 즐거워진다. 독서는 여행준비를 자극하고, 여행준비는 독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독서는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고, 여행은 독서를 더 즐겁게 만든다. 이런게 바로 '선순환'의 좋은 예가 아닐까.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흐르고 인생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한 번뿐이다. 느리게 움직여야 자세히 볼 수 있고, 느리게 움직여야 풍경 말고 내 마음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팁을 하나만 달라고 한다면, 처음 세운 계획에서 일정을 20%쯤 줄이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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