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21-19) 사람에 대한 예의 [에세이] (권석천) 본문
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저, 어크로스, 324쪽.
좋았던 문장들, 인상깊었던 문장들 발췌.
아무도 미끼를 물지 않았다. 미끼를 물었기 때문에 불행이 시작됐다는 건 이 사회의 오래된 우화다. 성폭행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현실이 우화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들을 빈곤에 빠뜨린 것은, 그들을 가정폭력과 알코올 중독으로 밀어 넣는 것은 그들의 문화가 아니라 빈곤 그 자체다.
갈 곳을 찾지 못한 스트레스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대상은 눈앞의 불특정 다수다. 거리에서 분노를 풀 용기조차 없는 자들은? 아내와 자녀에게 푼다. 한국 사회에 가정 폭력와 아동 학대가 넘쳐나는 이유 중 하나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서 분노를 배설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폭력에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라 폭력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보자는 것이다.
'너를 위해'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 진심으로 '너를 위한 것'일지라도 자칫 너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변질되기 쉽다. 자식에 대한 관심이 집착과 학대로, 사랑이 스토킹으로 변하는 건 순간이다. 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무례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어떤 관계든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는 적정 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 남의 기억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남의 기분을 자기 것인 양 떠벌리며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삶이 되려면 누구에게도,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기억을 갖기 위해 세상과 마주 서야 합니다. 잊지 마세요. 당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고통받은 만큼만 진실입니다. 그것만이 진실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사랑도 결국은 자유의 이야기, 성장의 이야기다.
미성숙의 프레임은 10년 차가 돼도, 중견 기자가 되고 부장이 돼도, 부장검사가 되고 부장판사가 돼도 달라지지 않는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모른다. 한 사람의 주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기보다는 지시가 내려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상사 앞에서 항상 뭔가 부족한 아이가 되어 예뻐해 달라고 징징거린다. 그들이 자기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데도.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한 발, 한 발이 두렵고 떨린다. 그러나 어른이 되지 않으면 영원히 누군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남의 인생에 전세 사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어른으로 행동할 때 어른이 되는 거다.
누구든 좀비 공정 속에 집어넣으면 제시된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게 된다. 변혁을 꿈꾸지도, 반란을 시도하지도 않는다. 끊임 없이 어디론가 내달리게 만드는 것만큼 통제하기 쉬운 건 없다. 좀비 영화와 드라마가 각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좀비는 위험한 일상을 살아야 하는 현실의 우리를 은유한다.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사람들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양심적이다'라는 평가보다 '유능하다'는 평가가 더 중요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 하는' 측면도 있지만, 생각을 하면 괴로워 지기 때문에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생각을 하면 그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부 평가나 승진과 관련 없는 '쓸 데 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일을 잘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주기도문>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를 바라고 희망한다. 그 악이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위험을 인식하고 늘 깨어있지 않다면, 내부의 악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와 손을 잡고 있을 것이다. "난 내가 할 일을 했다"고 말하며,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며.
미국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을 말한다. 독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이라는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건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의 결여’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히만이 아니라고 해도 이 물음을 비켜갈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악들이 거악을 떠받치고 있는 건 아닌가. 거악은 한두 사람의 악인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의 작은 악들이 모인 결과가 아닌가.
특별히 집이나 학교에서 교육하지 않아도 그냥 그 사회에서 살다 보면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하게 되오. 그렇게 생활보수가 되면 정치보수가 될 가능성이 크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믿는 것들이 주변의 영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사무실에,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 공기처럼 떠다니는, 크고 작은 편견의 미세먼지들이 뭉치고 뭉쳐서 내 가치관이 되고, 신념이 된 것은 아닐까. 그 가치관과 신념이 얼마나 균형감각 있고, 상식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끔은 한 번씩 자기 주위에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어떤 이들을 만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당신이 거리에서 누군가와- 이를테면, 생존권의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을 움켜쥔 이들과-마주쳤을 때 서늘한 두려움이 앞선다면 뭔가 잘못 살고 있다는 뜻이다. 당신 마음속에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는 의미이고, '다른 친구'가 곁에 없다는 의미다.
당신과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 "진짜 금 안 밟았어. 내가 다 봤어"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왕따당하고 마녀사냥당하는 이를 위해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변호한 적이 있는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할 자신이 있는가.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른 이들을 향해 “금 밟았어!”를 외치고 있지는 않은지, “무슨 냄새 안나냐”며 코를 막고 있지 않은지 물어봐야 한다.
침묵의 문화는 침묵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란, 굳건한 믿음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침묵은 잠시 시간을 늦출 뿐이다. 침묵하는 자도 회생될 수밖에 없다. "악이 승리하려면 선한 자들이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영화 <갱스터 스쿼드>)는 것은한 치의 틀림도 없는 진리다. '침묵은 금(숲)'이라는 격언은 수정되어야 한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해치는 흉기다.
"남자들은 도덕률을 만들고 여자들에게 그걸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직업이 전부는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에 직업도 있는 것이다. 직업은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방편일 뿐이다. 삶을 직업에 맞추는 게 아니라 직업을 삶에 맞춰야 한다.
(...)
좋은 사람은 결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양심이 직업윤리의 심장이다.
기업에서도 '나쁜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횡령이나 뇌물, 불공정거래 같은 일들이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죄밖에 없지만 그런 억울함이 법정에서 면죄부가 돼주지 않는다. 지시에 따르느냐, 회사를 나가느냐.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
내 생각과 현실이 다르다고 해서 누구나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종의 절충 내지 타협을 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늘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받아들이다 보면 한이 없다.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이것까지 내주게 되면 이 직업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최후의 마지노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마지노선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여러분이 나아갈 사회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나쁜 일'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차라리 불편한 사람이 되십시오. 불편한 사람이 된다는 건 다시 말해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산다는 뜻입니다. 원칙이 없으면 여러분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도 편하게 느끼겠지요. 원칙을 지키다 보면 여러분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해고되진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히려 빛나는 경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편해지겠다는 각오만 있다면 여러분이 그 어려움들을 돌파해내리라 믿습니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은 말한다.
1.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
2.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
3.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4. 기자들은 그들이 취재하는 대상으로부터 반드시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현실은 순정만화가 아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말하듯"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우린 하얀 도화지 위에서 일하는 게 아니다. '복잡하게 나쁜 사람'인 내가 '복잡하게 나쁜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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