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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5)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문학-소설] 본문

Report of Book/문학

(2018-25)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문학-소설]

재도담 2018. 5. 7. 14:2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저, 이재룡 역, 민음사, 496쪽. 

너무 읽기 힘들고 난해한 책이었다. 

꿈과 현실, 3인칭 시점을 오가면서 서술해 놓아서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독서단 책으로 정해져 인내심을 갖고 읽었다. 


1960년대의 체코슬로바키아, 동유럽과 서유럽이 만나는 지점.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는 곳. 

토마시의 사랑은 가볍고, 테레자의 사랑은 무겁다. 

사비나는 키치를 혐오하고 거부하며, 프란츠는 이데올로기의 꿈을 좇는다. 

하지만 영원한 무거움과 가벼움은 없다. 

이들은 무거움에서 출발해 가벼움으로, 가벼움에서 출발해 무거움으로 

자신의 사랑과 함께 조금씩 이동한다. 

무거움 

가벼움 

영원회귀
사랑과 일치된 性
책임
동정심
필연 
그래야만 한다! 
키치 
테레자·프란츠 

순간·찰나 
성적 자유
자유
자기애, 자기만족 
우연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반-키치 
토마시·사비나 

소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살펴보면 나는 프란츠에서 토마스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과거의 나는 사랑이 없는 섹스를 혐오했고, 그래야만 한다!를 좇았었다. 

사명과 필연을 믿었으며 가벼움을 혐오했다. 

인류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책과 사람 사이를 헤매었고 

불의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자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이데올로기의 자유를 좇기 시작했고, 

권위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성적 억압과 도덕적 강박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네 명의 인물의 사랑을 통해 많은 철학적 사유거리를 던져준 쿤데라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번역문학의 한계인지, 쿤데라 자신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손이 가는대로 써내려간 것 같은 느낌의 글은 다소 거부감이 드는 측면도 있다. 

어쨌든 세계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작품을 이렇게 완독할 수 있어서 기쁘고, 

영화를 통해서나 재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그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싶다. 


※ 책에서 밑줄 긋기. 

1.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심각한 도덕적 변태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pp.10-11)

2.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p.12)

3. 삶은 항상 초벌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초벌그림>이란 용어도 정확지 않은 것이, 초벌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밑그림,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이다. 토마스는 독일 속담을 되뇌였다.  번은 중요치 않다.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p.15)

4.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된다)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p.22)

5.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여졌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 기다려왔던 ,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p.59)

6.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무엇이다. 그것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p.71)

7.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토마스와 사비나가 중절모의 모티프를 서로 나눠가졌듯),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료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게 마련이다. (p.104)

8. 사비나에게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게 되며, 우리가 하는 것의  무엇도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 프란츠는 모든 거짓의 원천은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의 분리에 있다고 확신했다. 프란츠에게 있어서 <진리 속에서 살기> 사적인 것과 공개적인  사이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뜻했다. (p.133)

9. 여자는 분노에  영혼을 부르는 목소리에 저항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기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영혼의 여자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p.185)

10.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며  길을 용감하게 지켜왔다. 훗날  천국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광신자들은 살인자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밝혀졌다. (p.202)

11. 「 몰랐어! 그렇다고 믿었어라는 그의  속에 용서받을  없는 그의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토마스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상기했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와 동침하는  몰랐었지만 사태의 진상을 알자 자신이 결백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의 참상을 견딜  없어 그는 눈을 뽑고,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났던 것이다. 토마스는 영혼의 순수함을 변호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악쓰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당신의 무지 탓에  나라는 향후  세기 동안 자유를 상실했는데 자신이 결백하다고 소리칠  있나요? , 당신 주위를 돌아보셨나요? 참담함을 느끼지 않았나요? 당신에겐 그것을 돌아볼 눈이 없는지도 모르죠!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뽑아버리고 테베를 떠나시오! (p.203)

12. 토마스는  가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미소를 짓고, 모든 사람이 그가 철회서를 쓰기를 바라며, 자기가 의견을 철회한다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굴함의 인플레이션이 그들 자신의 행동도 평범한 것으로 만들며  실추된 명예를 돌려주기 때문에 즐거워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은 결코 포기하려 들지 않았던 명예스런 특권이 유지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p.209)

13. 이러한 모든 유럽인들의 믿음 이면에는 그것이 종교적이드 정치적이든 간에 창세기의  번째 장이 존재하며, 그로부터  세계는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식으로 창조되었고, 존재는 선한 것이며 따라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근본적 믿음을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라고 부르도록 하자. (p.284)

14.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란,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 (p.285)

15. 키치는 백발백중  방울의 감동적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첫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 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은 뛰어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다워지는 것은 오로지  두번째 눈물에 의해서이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키치 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p.288)

16. 창세기 첫머리에 신은 인간을 창조하여 새와 물고기와 짐승을 다스리게 했다고 씌어있다. 물론 창세기는 말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신이 정말로 인간이 다른 피조물 위에 군림하길 바랐는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인간이 암소와 말로부터 탈취한 권력을 신성화하기 위해 신을 발명했다라는 것이  개연성이 있다.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