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18-22) 사람의 아들 [문학-소설] 본문
사람의 아들
이문열 저, 민음사, 386쪽.
독서단 재근님에게 추천받아 읽게 된 소설.
이문열 작가의 매우 초기 작품(1979)인데, 나는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민요섭이라는 청년이 기도원 근처에서 살해된다.
살인사건을 맡은 남경사는 범인을 찾기 위해 민요섭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민요섭이 쓴 소설을 발견한다.
민요섭의 소설 속에는 아하스 페르츠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와 같은 시기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여러 종교를 섭렵하고 종교의 근원을 탐구한다.
그리고 예수의 공생애 기간,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주장과 구원방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남경사는 또한 민요섭을 추종하는 인물 조동팔의 존재를 알게 된다.
조동팔은 민요섭을 스승으로 섬기며 그를 좇는데, 남경사는 이들의 관계 기이한 행적에 묘한 호기심과 매력을 느낀다.
아하스 페르츠의 전반부 여정을 살펴보면 예전에 SBS에서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이란 다큐멘타리가 생각난다.
기독교는 여호와가 유일신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독창적인 내용이 아니다.
중동 지방의 다른 종교들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성서가 쓰이기 전에 다른 종교의 경전에서도 유사한 이야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성경이 여러 경전이나 구전설화들을 차용하여 썼을 가능성이 높다.
성경도 신이 인간에게 전해준 유일무이한 메세지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문화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신론이나 유물론을 믿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소설의 뒷부분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기도 어렵다.
아하스 페르츠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민요섭과 조동팔은 예수의 나약한 기독교를 비판한다.
이 장면에서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가 생각난다.
선한 의지만으로 세상은 바뀔 수 없으며 고통받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빵과 옷과 약이 필요하다는 것.
시스템과 이데올로기로 모든 인간을 교화시키기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그것은 요원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당장 눈앞에 신음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자유의지의 문제다.
신은 인간을 창조한 이후,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러나 신은 전지하므로 인간이 받은 자유의지로 선악과를 먹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은 애시당초 원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신은 인간을 죄의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방치한 것인가.
기독교는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받는 것은 신의 은혜와 예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이 죄를 짓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신의 예정과 섭리가 아닌, 인간의 자유의지 탓이라고 한다.
좋은 열매는 신의 섭리이고, 지옥 불구덩이 속에 떨어지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 탓이라면
이 무슨 해괴망측한 궤변이란 말인가.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신은 인간의 구원을 완성한다.
하지만 인간이 자유의지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 그를 왕으로 추대했다면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일조한 조력자인가,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인 악마의 자식들인가?
내가 지금 기독교 신자였다면 아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이 힘들거나 또는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유물론자가 되어버린 내게는 이 소설속의 절규조차도 약간은 공허하다.
그리고 저자는 안타깝게도 한국안에만 국한된, 너무 좁은 영역의 기독교만을 알고 있다.
내가 기독교를 떠나기 전, 알게 된 그 방대한 기독교는, 이기적으로 폐쇄적인 기독교만은 아니었다.
그나마 그것이 내가 종교를 버리기 전 알게 된 매우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아하스 페르츠의 주장처럼, 이 세상의 부정, 고통, 신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
당장 눈 앞의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 굶주린 이들을 돕지 않고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천국은, 어떤 추상적인 믿음을 통해서 갈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때 이 땅에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13장의 말씀처럼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율법이나 도덕율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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