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특별한 저녁식사와 지진 본문
어제 있었던 우리집 풍경.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포초는 손톱 다듬으러 고고씽하고 집에는 아이 둘만.
일단 가방을 방에 놔두고 옷을 벗고 손을 씻고 배가 고파서 부엌으로 가니,
유경이가 나 먹으라고 된장을 떠준다.
엄마가 아빠 먹으라고 정성 들여 끓였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가 떠주는 된장국을 먹는데 '아, 유경이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무척 특별하고 소중한 저녁시간으로 기억되고 싶은 순간이었다.
밥을 먹는데, 옆에서
"다 먹고 나면 나랑 놀자~. 유은이는 등가(인형이름) 할껀데, 아빠는 뭐할꺼야?"
하고 묻는다.
나는 포코를 하겠다고 하고, 밥을 다 먹고 나면 같이 놀기로 약속했다.
유경이는 옆에서 내가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밥을 다 먹고 대충 부엌을 정리하고, 아이들 방에서 딩가, 등가, 푸코, 포코 네 인형을 가지고 같이 놀았다.
조금 있다가 포초가 집에 오고, 포초와 이런저런 이야기.
아내와의 이야기 중에, 가족 모두 다같이 일기 쓰기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일기 쓰러 거실로 나갔다.
양측에 한 책상씩, 아이들을 앉히고 일기 쓰기 지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엌에서 책을 읽고 있던 포초가 "악, 이게 뭐야?"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순간, 집이 휘청휘청.
지진이다.
유경이는 놀래서 눈을 똥그랗게 떴다가,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혀 운다.
괜찮다고 달래보는데, 많이 무서운지 계속 운다.
대략 15분을 울고, 울음을 그쳤다.
지진이 왜 일어나는지 묻는다.
나는 판구조론과 해령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설명이 다 끝나자 다시 묻는다.
지진이 왜 일어나냐고.
아, 이건 과학적인 발생원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질문이구나,
왜 지구에 지진이라는 것이 일어나야만 하나,
지진, 기근, 해일,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현문에 우답을 했음을 깨달았다.
어쨌든 실컷 울고 난 아이들을 달래고,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들과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아이들 머리를 감긴다고 샴푸잉(?)을 하고 있는데,
또 한번 집에 휘청인다. 아까보다 더 강도가 심하다.
좁은 욕실에서 집이 휘청이니까 나도 벽에 몸이 닿는다.
유경이는 또 운다.
또 달랜다.
다행히 이번엔 오래 울지는 않고 금방 울음을 그쳤다.
오늘 아침 눈을 뜨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어제 가족이 함께 있는데 지진이 나서 너무 다행이다.
낮에 학교에 가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누구에게 안겨서 울지도 못할텐데.
혹시나, 만약에 혹시나 재난 영화에 나올법한 대참사가 벌어진다면,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각에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참 뜬금없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