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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bble

성性에 대한 단상

재도담 2013. 9. 22. 23:57

며칠간 고민하면서 내린 내 나름대로의 결론. 

우리가 性을 대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 될 두가지 포지션이 있다. 

첫째는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살다보면 분노, 비참함, 우울, 짜증 등의 감정이 내 속에 생길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내 속에 생긴다하여 내가 그 감정을 다 표현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며 살지는 않는다. 우리의 이성이나 훈육으로 인해 그러한 것들을 통제하고 때로는 승화시킨다. 마찬가지로 성욕libido이 내 가운데 충만(?)할 때에도 그것을 적절히 잘 조절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나 이성친구 이외의 대상에게 성적인 손길을 뻗친다거나 육체적 쾌락을 좇으며 사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육체적 쾌락을 좇고 난 후에는 항상 후회와 공허함 만이 남을 뿐이다. 이것은 종교적으로 나 스스로를 억압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무신론자 친구들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사랑이 없는 육체적 배설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또한 우리는 무시로 매체의 공격을 받는다. 예를 들어, 영화, 드라마, 광고 등을 통해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닌, 어떤 이미지를 구매하게 된다. 매체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이 물건을 구입하게 되면 너에게 이런 행복이 주어질꺼야"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하지만 특정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영적인, 또는 내적인 평안이나 기쁨을 만끽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음란물이나 저질의 드라마 등을 통해 우리는 진리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 것들을 우리의 본성이나 본능인양 포장해서는 안된다. 지속적으로 거짓메시지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신의 오감을 잘 통제해야 한다. 

두번째는 과도한 죄의식이나 자괴감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살면서 분노, 비참함, 우울, 짜증 등의 감정을 만난다. 그런 감정을 유발하는 상황이 있다. 그런 감정이 생긴다하여 우리가 스스로를 경멸하거나 값어치 없게 여기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짜증나게 하면 속에서 짜증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짜증이 난다고 내가 죄인이라거나 영적으로 타락해 있다거나,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이성을 보고 성적 매력을 느낀다거나 몸이 흥분한다거나 성욕이 생기는 것으로 자존감이 낮아질 필요는 없다. 물론 하나님께. 그런 감정이 더 잘 조절되고, 건강하거나 아름답지 않은 욕구를 조절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또는 내 속에 있는 짜증을 하나님께서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듯이, 내 속에 있는 건강하지 않은 성욕을 하나님께서 해결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비참하게 내몰 필요는 없다. 아마도 그런 공격은-자존감이 낮아지게 만드는 여러 생각들은- 마귀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숙하고 성장한 사람일수록, 일차원적인 생각이나 감정, 욕구들을 잘 조절한다. 일차원적인 욕구나 생각, 감정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가공하고 컨트롤하느냐의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좀 더 내 속에 있는 본능이나 감정, 기질을 잘 다스리는, 성숙한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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