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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5) 사람, 장소, 환대 [사회과학] (김현경) 본문

Report of Book/사회

(2022-45) 사람, 장소, 환대 [사회과학] (김현경)

재도담 2022. 11. 2. 11:00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저, 문학과지성사, 297쪽.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표현하고, 만연체로 글이 늘어져있어서 주제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재미도 별로 없어서 읽기가 지루했다.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나는 실용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이론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적용가능하고 실제 삶에 영향을 끼치는 책을 좋아한다. 

결국, '모든 사람을 환대함으로서 서로의 성원권을 만들어주자'는 한 문장을 279쪽으로 늘려놓은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31 ]

주인은 언제나 복수형으로, 즉 '주인들'로 나타난다. 다른 말로 하면,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2자적인 관계가 아니라 3자적인 관계이다. 주인과 노예가 일대일로 대결하는 2자적인 관계에서는 결코 권력이 생겨나지 않기 때 문이다. 권력이란 ‘우리’를 만드는 능력이자, 우리 속에서 생겨나는, 행동의 잠재적 가능성이다. “권력은 함께 행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서 사람들이 흩어지는 순간 사라진다.” 주인들은 ‘우리’를 만들 줄 알았기에, 권력이 있고 지배할 수 있다. 39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동어반복적으로 들리 겠지만 -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사회란 다름 아닌 이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57

[ 사회는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잠재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다. 우리는 이 지평 안에서 타인들과 조우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신호를 주고받는다. 타인이 내게 ‘현상한다’는 말은 그가 나의 ‘상호작용의 지평 안에 있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타인의 존재를 알아보고, 그가 나의 알아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내 쪽에서 존재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그의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하는 의미를 띤다. 따라서 상호작용의 의례는 질문이자 요구이며, 초대이자 도전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인정투쟁’의 계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사회의 경계는 이 나날의 인정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 58-59 ]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place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 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 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옷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
더글러스의 통찰은 동물이나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집 밖에서 키우는 돼지나 오리가 집 안에 들어오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흑인이 백인 전용 구역에 들어가거나, 여자가 남성을 위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더럽다고 여겨졌다. 73

상호작용 질서는 인정투쟁 속에서 불안정하게 재생산되는 역사적 구성물이며, 무시와 모욕은 이 구성물에 내재한 균열을, 그것의 현재 안에 있는 다른 시간들을 드러낸다. 투명인간 취급당하는 노숙자의 뒤에 는 걸인과 부랑자에 대한 낙인과 감금과 추방의 긴 역사가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 남자가 ‘백인 동네’를 지나갈 때 경험하는 전형적인 반응들(다급하게 멀어지는 발걸음, 찰칵하고 자동차 문을 잠그는 소리, 노골적인 경계의 시선)을 설명하려면, 흑백 분리가 존재했던 시대, 그리고 그 이전의 노예제가 지배했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09-110

개인은 (사회화를 거쳐서) 일단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남의 도움 없이 계속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사회생활의 모든 순간에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음으로써 매번 사람다운 모습을 획득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개인은 그러므로 다른 참가자들의 사람다움을 확인해주고, 사람이 되려는 그들의 노력을 지지해줄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 역으로, 그는 남들이 자신을 사람으로 대우해주기를 기대할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 116

상호작용 의례를 행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경의deference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에서의 그의 성원권을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인격이란 “집단적 마나의 할당”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의례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이 한 명의 온전한 사람임을 부인하는 일이자, 그 역시 공동체의 마나를 나누어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 다시 말해 그의 성원 자격에 대한 부정이다.
이는 사람들이 왜 때로는 물질적인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보다 사소한 의례상의 위반에 더 격렬하게 반응하는지를 설명한다. 정의justice에 대한 모든 요구는 성원권의 확인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성원권을 위협하는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116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를 갖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게 아니다. 193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207

모든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은 출생이라는 사건이 환대의 의례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인간이 어머니의 몸에서 벗어나 이 세상으로 나오는 동시에 사회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조건적인 환대는 현대 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이 원칙을 위반하는 행위 -아기를 몰래 낳아서 죽이거나, 가두어서 키우는 일 따위-는 어떤 것이든 중대한 범죄로 간주된다.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