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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1)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사회/에세이] (천종호) 본문

Report of Book/사회

(2022-41)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사회/에세이] (천종호)

재도담 2022. 10. 7. 08:10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천종호 저. 우리학교, 208쪽.

읽으면서 많이 울고 웃었다.
천종호 판사님에 대해서 인터넷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청소년을 위한 고민을 많이 하는 분인줄은 몰랐다.
특히, 청소년에 대한 고민과 판결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법형 그룹홈인 청소년 회복센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청소년들을 바른 길로 선도하고 계신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2주전 설교를 통해 구제와 나눔에 대한 마음이 생겼는데 청소년 회복센터에도 고정적인 후원을 하도록 해야겠다.
천종호 판사님의 말씀과 같이, 많은 이들이 청소년 범죄자에 대해 처벌의 수위를 높이라는 목소리만 낼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벌을 받은 후에 사회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보살피고 선도해 줄 따뜻한 안식처와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청소년이 사회로 복귀했을 때 여전히 그들에게 폭력, 학대, 방임, 무관심만 주어진다면 그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아래는 책에서 건진 문장들. 

청소년 범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범죄의 반사회성에만 초점을 맞출 뿐,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묻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소년의 비행은 소년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인 경우가 많다. 누구도 겪어서는 안되는 방임과 학대의 그늘 아래 놓은 아이들이 많다. 비행이라는 거푸집을 벗기고 나면 삶의 부조리와 폭력 앞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노출되어있다. 이 아이들의 문제가 무엇에서 생겨났는지,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그 배경과 맥락을 누군가는 헤아려야 한다.
범죄 처벌 규정이 너무 약하다는 말이 많다. 물론 사안에 따라 엄벌도 필요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처벌은 하되 다시 비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와 사회에서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엄벌할 때 하더라도 응분의 처벌을 받은 뒤에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자 사회 전체의 건강과 발전을 위해서도 이로운 선택이다.

좋은 추억, 특히 어린 시절 가족 간의 아름다운 추억만큼 귀하고 강력하며, 아이의 앞날에 유익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아이들이 자꾸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감은 사람과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하루24시간 생계에 쫓기는 부모 밑에서 혼자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잘 알지 못한다. 학대를 당하며 성장한 아이들은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성품을 함양할 기회조차 없다. 학교는 가정에서 배운 사회성, 관계능력을 확장하고 적용하는 곳인데 가정에서 아무것도 배우질 못했으니 학교생활도 순탄할 리 없다. 청소년회복센터(사법형 그룹홈)

가난이 무서운 것은 무엇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삶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걱정과 두려움이 삶에 대한 의지마저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손가정이나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가슴에 상처를 안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 이러한 상처는 아이들의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고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주변의 관심이 중요하다. 따뜻한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들은 달라질 수 있다.

피해자를 진정으로 돕는 길은 무엇일까? 가해자에 대한 혐오를 내뱉으며 엄벌하라고 청원하고 기사에 댓글을 달기만 하면 가해자의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될까? 그렇지 않다. 범죄 피해자들을 진정으로 돕는 길은 봄죄 피해자 구조에 관한 제도를 세밀하게 만들어 피해자들이 제도의 불비로 보호망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게 하는 한편, 제도가 미비한 경우 공동체 구성원이 나서서 아픔을 함께 나누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동반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아동을 보호해야 할 기관은 국가다. 가정에서도 손을 놓고, 학교와 사회마저도 극도의 혐오감으로 소외시키고 있는 비행소년들을 비행에서 벗어나게 해 줄 최소한의 도움조차 외면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자신의 중차대한 임무인 ‘정의’, 특히 ‘배분적 정의’의 실현을 태만히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의 실현에 있어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는 임무를 국가에만 떠맡길 수는 없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모든 분배 요구를 정의의 요구로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사회공동체가 그 임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복지제도를 세밀하게 정비해 나가고, 미비한 복지제도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자선을 베푸는 실천 등으로 공백을 메워 나가야 한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옥에 갇힌 자와 장애인과 병자’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체다카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정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