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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사회과학] (강지나) 본문

Report of Book/사회

(2024-03)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사회과학] (강지나)

재도담 2024. 4. 26. 17:24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저, 돌베개, 280쪽. 

사람이 힘을 내고 노력을 하는 데는 혼자만의 결심과 성취 욕구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인식, 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하는 사회적 욕구가 인간의 발전과 성숙에는 필수적이다. 
빈곤은 단순히 낮은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로 규정해야 한다. 여기서 역량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이다. 

나는 지현이 긍정적으로 살아오며 빈곤을 극복한 진짜 힘이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가난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일 뿐이지, 내 잘못도 죄도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지현은 간파하고 있었다. 

A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은 센터를 공부방이자 가족이자 놀이터로 생각했다. 학교 친구들이 하교 후에 학원이나 집으로 갈 때, 센터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공부도 하고, 여러 생태·문화 체험도 하고, 밥도 먹고, 친구들과 공도 차면서 시간을 보냈다. 방학에는 멀리 바닷가로 캠핑도 가고, 센터에서 하룻밤 자는 파자마 파티도 했다. 졸업생들은 하나같이 이 센터에서 경험한 기억들을 좋은 추억으로 생각했다. 졸업생 중 한 명은 고등학교 때에도 센터에 다녔다면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한국사회의 공공영역 지출은 매우 적다.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도와주는 대부분의 인프라는 종교시설, 개인 독지가에 의한 사회복지시설, 사회단체 등이 담당하고 있다.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이 많다 보니 '사회복지'는 보편적이고 제도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시혜적' 시선을 담아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구조는 빈곤층이 직접 '가난을 증명'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회 풍토를 만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한 존재이다.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신과 자존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정체감)이 삶에 필수적인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이를 훼손하면서까지 경제적 도움을 얻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난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도움 요청'은 자칫 위신과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장하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이러한 행위가 교우관계나 자아정체감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찰하는 힘은 인간이 사회적·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외적인 지식(예를 들어, 학력)과 외형적 모습(예를 들어, 재산, 직장)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평가하면서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도, 즉 성찰하는 힘에 대해서는 참 소홀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우리의 교육체계는 청소년에게 이 성찰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교육과정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러한 힘은 짧은 기간 안에 만들어질 수 없고, 단순하고 안전한 삶의 궤적 안에서도 형성되기 어렵다. 다양한 경험과 시도, 좌절, 고통, 성취 등의 단계를 거쳐야 서서히 쌓여가는 내면의 힘이 된다.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일수록 진로 선택의 중요한 장면에서 부모나 교사로부터 특별한 조언이나 지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청소년기에 획득해야 할 과업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자아정체감'이다.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자아실현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 혹은 사고이다.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데에 학습 능력이나 지능, 지위 고하, 재산 유무, 신체적 능력 등이 영향을 주긴 하지만 이것들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하면서 겪은 경험의 질, 직면하고 대처해본 어려움, 접해본 사람들의 다양성,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주는 자극 등이 더 깊게 연관된다. 나는 학교나 공공도서관 같은 공공영역에서 빈부 차이에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주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학원에, 게임에, 스마트폰에 들이는 시간도 있어야겠지만, 목적 없이 허송세월을 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쓸모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이러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과 세상과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는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더라도 자기 머리로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으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 자신의 본모습을 찾기 어려워진다. 

툭하면 산업재해를 당하고,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임금에 반영되지 않으며, 미래를 위한 공부나 여가가 보장되지 않는 삶은 21세기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참혹하다. 청년 세대의 가난은 과도기적이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현재의 가난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직업훈련 지원, 주거 안정 자금, 일-학교 병행이나 일-가정 병행 제도 등이 더 절실해 보인다. 이런 제도들은 가난한 청년들에게 평생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안전망이 될 것이다. 

현석이 좋지 않은 옛날 관계를 끊어낼 수 있었던 것이나 지금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의지에서 나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지렛대는 인간관계이다. 사람들의 기대에 호응하고 거기에 맞춰서 살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사회의 기본을 지켜주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든다. 

청소년 범죄에 대해 연구한 논문들을 보면 대충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결핍된 가정환경에서 돌봄과 관여가 부족했고, 부모나 사회적 통제가 미치지 않는 여가 시간이 많기 때문에 빈집에서 또래끼리 모여 어른들의 간섭 없이 지냈고,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몰려다니다가 범죄에 가담하게 됐으며,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가볍고 비행을 함께 저지른 친구 관계가 지속되면서 재범, 삼범까지 쉽게 이뤄진다.' 표면적으로는 다 맞는 이야기지만, 빠진 조각이 있다. 가난한 부모가 자녀들을 봐줄 여력이 없을 때 아이들을 도와줄 만한 사회시설은 있었는지, 아이들에 대해 부모만 통제를 해야 하는지, 학교 당국은 아이들이 범죄에 빠질 때까지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아이들이 범죄에 쉽게 접근할 만한 사회환경은 아니었는지, 초범을 저지른 후에 교정 당국은 아이들의 교정과 사회 복귀를 위해 충분한 역할을 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너무 받은 것이 없고 자기 통제를 훈련받지도 못한 청소년들이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다가 사회 부적응자가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기에 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난한 가정을 대신해서 돌봐주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관계에 의존하거나 종속되는 패턴은 낮은 자아존중감과 연결된다.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사람들을 선별할 줄 아는 힘이 부족하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과 애착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배울 점이 있는 건강한 관계보다는 자신을 착취하는 관계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내가 만난 탈학교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삶의 궤도를 걷는 친구들에 비해 인간관계가 좁고 특정 부류에 국한되어 있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상황은 사회적 자본의 형성을 제한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기회 자체를 차단한다. 실제로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 혹은 탈학교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고 사회로 나아갈 때 이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지지체계는 매우 빈약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학교를 중도 하차한 청소년들은 청년기에 독립 과정에서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 이들은 가족 내에서 충분한 돌봄과 관여를 제공받지 못했고, 교육 제도 안에서 성공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존감이 매우 낮다. 내가 직접 만난 청소년들의 경우에, 또는 청소년복지 관계자들도 입을 모으는 이들의 공통점을 보면, 이들은 나중에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에 연루되거나 그런 또래들과 계속 어울린다. 청소년기에 또래 관계는 중요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경우에 또래 관계는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자신에 대한 확실한 정체감이 형성되지 않았고 자신을 보호할 내면의 힘이 부족한 청소년들은 또래 관계에 쉽게 휩쓸리고 이는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아이들은 서로 싸우고 욕을 하면서도 그 무리에서 계속 놀거나 비슷한 무리를 전전하면서 어울린다. 낯선 사람들, 보통의 궤도를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에게서 오는 괴리감과 낙인감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깊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기네 힘들어한다. 낮은 자존감은 이전의 실패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가려는 시도에도 큰 질곡이 된다. 새로운 일에는 자신이 없고, 끈기가 없으며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학업에 다시 도전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일에서 종종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이것은 다시 자존감을 낮추는 악순환을 만든다. 

외모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요소이지만 여자 청소년들에게는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탈학교 후 또래들과 놀이를 즐길 때 외모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여성이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상대에게 호소해야 이롭다는 것은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중요하게 통용되는 원칙이다. 사회의 지배적인 구조와 인식이 아직 어린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은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을 '창녀'로 규정하고 혐오하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가출한 여자 청소년들은 학교로 돌아가면 이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자 청소년들이 가출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빈곤은, 특히 세대를 이어 빈곤이 대물림되는 문제는 사회 전반에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노동 가치보다 자산 가치가 훨씬 높은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기반으로, 50퍼센트에 육박하는 나쁜 일자리가 임금 불평등을 형성하면, 경쟁과 선별 위주의 교육 제도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부실하고 편협한 복지 제도가 안전망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데서 빈곤 대물림은 구조화되고 있다. 빈곤 대물림의 불평등한 과정 안에서 청소년이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 미래 세대를 고갈시키고 피폐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빈곤 대물림은 생태계 재앙과 전염병의 팬데믹을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문제로서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 

교육체계가 빈부의 차이에 관계없이, 대학이냐 취업이냐와 관계없이, 학생의 자아실현과 진로 희망을 구현하는 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우리는 엄중히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