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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8) 여행의 이유 [에세이] (김영하) 본문

Report of Book/에세이

(2021-38) 여행의 이유 [에세이] (김영하)

재도담 2021. 7. 10. 12:48

여행의 이유 

김영하 저, 문학동네, 216쪽. 

담백하고 편안하게 잘 읽힌다. 
김영하 작가가 이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는 분인줄 몰랐다. 
아무래도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자유롭게 어디서든 자기 본업을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더욱 그렇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아, 나도 떠나고 싶다. 
크게 세 가지 단어로 요약해본다. 여행이란, ①일상으로부터의 탈출, ②변화, ③자기주도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가?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p.19) 
작가는 대체로 다른 직업보다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p.26) 

미국의 시나리오 작법 책들을 보면 작가는 인물의 성장과정, 가족 관계, 사고방식, 질병, 정치적 성향, 성적 취향, 친구 관계, 반려동물의 유무 등 온갖 요소들을, 비록 작품에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p.57)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p.57)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함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p.61) 

만약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즉, 그림자(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나오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신경쓰지 않는 것들, 그러나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지는 것들. 그 그림자를 소중히 여겨라. 하지만 만약 그것을 잃었다면, 그리고 회복하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야 한다면, 남은 운명은 방랑자가 되는 것 뿐이다. (p.129)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로부터 받은 여러 모양의 친절과 도움은 어떻게 갚아야 할까?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p.147)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p.148)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p.155)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드러내려 할 때 위기를 겪고, 자신을 숨김으로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허영과 자만은 여행자의 적이다. 달라진 정체성(nobody)에 적응하라, 자기를 낮추고 아무도 아닌 자가 될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p.183) 

인간은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과 대면한다. (…) 모든 인간에게는 삶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구조, 핵심 플롯이 있다. 어린 날의 나에게 그것은 모험소설이었고 여행기였다. (pp.197-198) 
[(강제)이주와 여행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같아도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다르다. 이주는 남에 의해, 여행은 자신의 계획에 의해 통제되어진다. 여행을 통해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어지러운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멀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pp.202-203)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의 일상의 부재다. (p.203)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pp.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