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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 두 도시 이야기 [문학-소설] (찰스 디킨스) ★ 본문

Report of Book/문학

(2021-10) 두 도시 이야기 [문학-소설] (찰스 디킨스) ★

재도담 2021. 2. 13. 23:56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저, 정태륭 역, 동서문화사, 440쪽. 

처음에 읽기가 다소 힘들었지만, 출판사를 바꿔서 읽고부터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인터넷상에서는 창비사의 번역이 좋다고 극찬한 글들이 많았지만, 

나에게는 창비의 번역이 정말 극악이었다. 

책의 1/3 정도를 창비로 읽었었는데, 한 페이지를 읽어도 도저히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지지 않고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들어오지도 않고, 책의 진도도 안나가서 너무너무 답답해서 다른 버젼을 구해서 읽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창비를 칭찬한 글들은 대체로 펭귄클래식과 더클래식의 버젼과 비교한 것이어서, 

저 두 출판사의 버젼을 제껴두고, 비꽃과 동서문화사 버젼을 구해서 읽어보았는데, 

나에게는 동서문화사의 번역이 머릿속에 더 잘 들어왔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는데, 디킨스 특유의 유머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시공사와 허밍버드의 번역본도 최근에 나왔던데 이 버전도 궁금하긴 하다. 

 

이제 간단하게(?) 내용 요약. 스포일러가 강하게 들어있으니,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은 절대 읽지 마시길. 

 

자비스 로리는 영국 텔슨 은행의 직원으로,  프랑스 의사인 알렉상드르 마네뜨와 친구 관계였다. 

18년전 마네뜨는 갑작스레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고 그로부터 2년후 그의 아내도 사망한다. 

마네뜨에게는 루시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제껏 본인이 고아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로리로부터 그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둘은 프랑스로 가서 드파르주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알렉상드르를 데려온다. 

(드파르주는 알렉상드르의 하인이었는데, 바스티유 감옥에서 그를 데려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5년후 찰스 다네이라는 청년이 프랑스 간첩으로 기소되어 판결을 받게 되는 자리에 

알렉상드르 마네뜨와 루시가 증인으로 출석하게 된다. 

그들이 5년전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건너올 때 같은 배를 타고 보았다는 이유로 증인 출석 요구를 받았다. 

찰스 다네이는 스트라이버라는 변호사를 고용했는데, 시드니 카튼이라는 또 다른 변호사가 스트라이버를 도와 

그 재판에서 찰스를 무죄로 이끈다. 

그 자리에서 찰스와 스트라이버, 시드니는 모두 루시를 사랑하게 되는데, 

시드니는 자신의 삶이 방탕하다고 생각하여 구애조차 못하고, 루시는 성실하고 올바른 청년 찰스와 결혼하게 된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에브르몽드 후작이 마차를 급하게 몰고 가다가 한 아이를 치어 죽게 만든다. 

프랑스의 귀족들은 평민들을 인간 취급하지도 않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귀족들은 평민들의 삶을 수탈하고 탈취하기만 하면서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치어죽은 아이의 아버지는 후작을 암살하고, 프랑스 전역에서는 귀족들에 대한 반란과 처형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에브르몽도의 집안일을 봐주던 가벨이라는 자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자신을 살려달라며 샤를 에브르몽드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샤를 에브르몽드는 영국의 찰스 다네이였다. 

샤를 에브르몽드는 후작의 조카였는데, 후작의 악행에 분노하고 시민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에서 

프랑스에서의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영국으로 온 것이었다. 

찰스는 죄없는 가벨이 사형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프랑스행을 결심하고 파리로 향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망명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법이 생겨 꼼짝없이 사형에 처할 위기에 놓인다. 

찰스를 걱정하던 루시와 알렉상드르는 찰스를 찾아 파리로 오게 되는데, 

알렉상드르는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과 의료봉사활동으로 인해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그리하여 알렉상드르의 변호로 찰스는 재판일 사형을 면하고 풀려나게 되는데, 

풀려난지 하루만에 다시 누군가의 고발에 의해 투옥된다. 

다시 재판을 받게 된 찰스에 대해 검사는 알렉상드르가 바스티유 감옥에 써놓은 글을 통해 기소를 하는데 

18년전 에브르몽드 후작이 한 여자를 겁탈하려고 그의 남편과 남동생 모두를 살해하고 

그 여자마저 위독해지자 의사인 알렉상드르를 불러 치료를 시켰으나 결국 사망하게 되고, 

이 사건의 전모를 세상에 알리려 했던 알렉상드르는 후작에 의해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고, 

이 사실이 감옥의 글에 의해 세상에 공개된다. 

찰스를 기소할 계획을 세웠던 이는 드파르주의 아내였는데, 그녀는 사실 겁탈당한 여자의 유일한 유족인 여동생이었다. 

찰스는 꼼짝없이 사형을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는데, 

이를 지켜본 시드니는 찰스와의 닮은 꼴을 이용하여 자기가 찰스 대신 감옥에 들어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소설이 제법 길어서 언제 다 읽나 했는데, 

이야기의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얽히고설켜 재미있었다. 

특히, 소설 초반부에 나왔던 삽화와 인물들이 소설의 뒷부분에서 퍼즐의 조각처럼 이어지는 부분에서 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초반부에 등장한 검사측 증인이 마네뜨 家 도우미의 남동생으로 프랑스 첩자로 활약한 것과, 
텔슨 은행 앞에서 잡역부로 일하는 제리가 도굴꾼으로서 빈무덤을 헛탕친 것이 나중에 첩자의 거짓말을 밝히게 되는 부분, 
드파르주의 아내가 겁탈당한 여자의 여동생으로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 핵심인물이었다는 사실, 등) 

디킨스는 영국에서 이웃나라인 프랑스 혁명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무슨 마음에서 이런 소설을 쓰게 된 것일까?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프랑스 혁명을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사건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혁명의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디킨스는 소설의 제목을 왜 <두 도시 이야기>라고 했을까? 파리와 런던은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는 곳일까? 

프랑스혁명은, 시민들이 힘을 합쳐 자신들의 등골을 빼먹던 왕족들과 귀족들을 무너뜨리고 저항함으로써 세계사적으로 민주주의를 가져오고, 정치체제의 전복을 가져오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판단도 횡행했었던 것 같다. 

시민들은 아무나 데려다가 감옥에 가두고 단두대에서 '재채기를 하도록' 만들었다. 

시민들의 분노가 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은 것은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광기에 휩싸이지 않도록 늘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집단이 옳다고 떠드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항상 역지사지가 필요하고, 복수에도 감정을 싹 뺀, 건조한 평가와 행동이 필요하다. 

내 자신이 미즈 드파르주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 문리버 감상문 >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디킨스 특유의 위트있는 문장들과, 사건 전개에 대한 궁금증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나, 소설의 전반부에 사소한 사건으로 보였던 것들이 소설의 뒤에서 퍼즐조각처럼 맞춰지는 부분에서 작가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고전소설같은 이런 우연적이 요소가, 현대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작품성을 저해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작품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주는 요인이라 묘한 쾌감을 느꼈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평소 프랑스 혁명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자세히 알아보고 공부를 한적은 없어, 단순히 민중이 중앙권력을 무찌른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이면에 있는 부작용과 문제점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선과 악의 구도에 익숙해져 있다. 태권브이, 독수리오형제, 흥부놀부, 등등 항상 선과 악이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고 악은 우리가 제거해야 할 영원한 적으로 간주하는 문화가 부지불식간에 뿌리 깊이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 짧지않은 역사 속에 선과 악을 빨리 파악해서 자리매김하지 않으면 적에게 공격당하거나 약육강식의 자연환경속에서 소멸되어져 온 것을 바라봐 온 진화의 과정이 그런 식의 문화를 만들어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영향탓인지 현대의 우리들조차, 누군가를 악惡이나 우리편(?!)의 경쟁자로 자리매김하는 순간, 덮어두고 비난하고 무찌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 그런가? 그렇지 않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설사 천하의 나쁜 놈이라 하더라도, 왕정을 뒷받침하던 모든 귀족들이 다 악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찰스 다네이도 그 희생자 중의 하나가 될 뻔 했다. 반면, 민중들이라고 해서 모두 착하고 선한 사람들만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드파르주의 부인처럼 개인의 복수심으로 사회 전체를 심판하려 드는 것도 거악巨惡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어떤 의도에서 이 소설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겐 이 부분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 명확하게 선악을 나누는 것이 늘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 정반합의 과정에서 반을 추구할 때에도 그 이면의 부작용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 세상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나는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프랑스 동화를 좋아한다. 

소설을 읽으며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150년전의 문화와 지금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몇몇 고전이 된 소설들에서 보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나 일렉트라 컴플렉스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마네뜨 부녀에게서 그런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이 둘의 관계가 매우 낯설고 어색한데 당시에는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스트라이버가 루시를 향해 청혼하기 전의 모습을 보면, 남자의 일방적인 구혼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매우 흔했던 것 같은데,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도 이런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매우 변해버린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시대상을 반영한(문화가 묘사된) 소설을 읽으며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것도 지난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닌가 싶다. 

 

< 문리버 발제문 > 
1. 이 작품에서 파리와 런던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2. 이 작품은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혁명은 각 등장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 책은 프랑스혁명의 어떤 점에 주목하는가? 여러분은 프랑스혁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3. 마네뜨박사와 찰스다네이는 부당한 권력과 특혜를 포기하고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을 제공했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큰 고통을 제공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행동과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무엇이 이런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4. 드파르주 부인의 분노와 복수에 대해 공감하는가? 복수의 속성과 가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5. 시드니카튼은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카튼을 이해할 수 있나? 루시, 스트라이버, 카튼의 삼각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바람직한 이성교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보자. 
6. 마네뜨박사는 오랜기간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지낸 것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있었지만 이후 점차 회복된다. 마네뜨 박사를 회복시킨 것은 무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