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21-11)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문학-소설] (올가 토카르추크) 본문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저, 최성은 역, 민음사, 396쪽.
다독다독 2월의 책.
다독이 아니었으면 감히 읽어보지 못할 책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이런 책을 읽게 해 준 다독에 참 감사하게 된다.
기묘한 스릴러(?)인데, 책을 읽는 초중반에는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서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으나,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예상했던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마음이 오히려 푸근(?)해진다.
사실, 소설 자체보다 오히려 책의 끝에 붙어있는 역자의 말에 더 많은 감동과 의미를 전달받았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옮겨본다.
사람이 가끔 분노를 실감하게 되면 모든 게 단순 명료해진다. 분노는 질서를 만들고, 세상을 간략히 요약해서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분노는 다른 감정 상태로는 얻기 힘든 '선명한 시야'를 우리에게 확보해준다.
동물을 보면 그 나라가 어떤지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동물을 대하는 태도 말입니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잔인하게 군다면 민주주의나 그 어떤 시스템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실 인간은 동물이 그들의 고유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책무를 갖고 있습니다. 가축들은 그들이 우리에게서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애정을 돌려주는 건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빚을 청산하고, 현생의 모든 업보를 명부에 기록하고 갚아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타인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잠시나마 자아를 벗어던진 채, 또 다른 '나'의 모습인 타자의 세계로 위대한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입니다.
좋은 소설이란 그 외피가 스릴러이든 로맨스이든 상관없이 세상을 향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생태계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동등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상호 의존적인 공생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초카프추크는 늘 강조한다. 그렇기에 토카프추크는 인류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다정함'을 촉구하면서 문학의 뿌리가 바로 타자에 대한 '다정함'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한다.
문학이란 우리와 다른, 모든 개별적 존재에 대한 다정한 마음에 기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기본적인 심리학적 메커니즘이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가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자신보다 더 힘없고 연약한 존재의 불행을 아파하고, 그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다독에 올린 감상문.
소설의 초중반부를 읽으면서 대충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 챘을 때 오히려 약간의 반감이 생겼다.
이렇게 억지스러운 전개가 필요한가?
이런 사건이 굳이 일어나야만 했는가?
내 예상이 맞다면 살인자를 왜 이렇게 묘사해야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예상이 맞을지, 뒤에 어떤 스토리가 전개될 지 궁금해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내 예상이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초중반에 느꼈던 반감이 대체로 사라지고 무엇인지 모를 푸근한 마음이 생겼는데, 나 스스로도 왜 그렇게 마음이 변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이 작가와 소설의 매력인걸까?
기본적으로는 작가의 생각(채식주의, 생태주의, 동물권 수호)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여전히 한편으로는 나의 이런 가치관에 대해서 스스로 가지는 의문이 남아있다.
동물권을 수호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다른 생명체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수많은 동물을 멸종시킨 주범이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해볼때, 지구를 위해서라면 인간이 사라지는 것이 건강한 지구를 남기는 길일텐데 인간이 사라진, 그래서 훨씬 건강해진 지구는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걸까?
만약 인간이 끝도 없는 범죄(?)를 저질러 이 지구가 더 이상 블루마블이 아니라 황폐하고 생명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행성이 된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화성에 어떤 생명체가 살고 있고, 그들이 서로서로를 살육하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돼지, 개, 야생동물을 살해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우리는 항생제를 먹으면서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귀하게 여겨야 하는 생명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
이런 수많은 의문들에 대해 여전히 제대로 답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존중하고 동의한다.
나도 같은 이유에서 비건이 되고 싶고, 간헐적이긴 하지만 비건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유희로서의 낚시나 기타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는 오락은 피할 것이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노력은 매우 보잘 것 없고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겠지만, 그 자체로 나의 만족을 위해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다.
연대와 다정함을 이야기 해 준 작가, 그리고 너무 좋은 역자의 말을 남겨준 역자에게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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