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19-12)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에세이] (김수현) 본문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저, 마음의숲, 288쪽.
주옥같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마음에 콕콕 들어온다.
그냥 흘리기에 아까워서 옮겨 적어본다.
물론 노력이 경시될 수는 없으나, 운과 환경과 같은 비능력적인 요소가 많은 것을 좌우하고,
노력만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가 있다 해도, 소수의 예외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노력=능력=성공]이라는 등식은 [게으름=무능=가난]이라는 등식으로 자동 연산되어서
가난의 이유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차별과 계급을 정당화한다.
과정은 스킵한 채 편법을 저지르고 약자를 착취해도 돈이 많은 부자는 당당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어도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부끄럽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닐까.
가난하다 해도 삶에 최선을 다했고 떳떳하게 살아왔다면 그 삶에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pp.22-24)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우월한 존재가 아닌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삶에서 숫자를 지워야 할 것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담을 수 없는 것들에 있다. (p.31)
가치는 타인의 눈치를 보며 주눅 드는 것이 아닌 타인에 대한 존중에 있을 뿐이고,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못한다면 그 무엇도 미덕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지칠 만큼 눈치를 볼 필요도, 주눅 들 만큼 겸손할 필요도 없다. (p.57)
차별과 멸시에 대한 공포로 얻은 성취에는 '오만'이 뒤따른다.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있는 것임에도 차별과 멸시가 내면화된 이들에게
하향이란 처절하고 비극적인 추락인 거다.
그렇게 차별은 손가락질 받는 이들은 수치스럽고 손가락질 하는 이들은 불안하게 만들었다.
열심히 사는 것도, 열심히 배우는 것도 마음껏 하시라. 하지만 누구의 삶도 모욕할 수 없다. (pp.64-66)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은 건강한 자존감을 위한 두 기둥을 자아 효능감과 자기 존중감이라 이야기했다.
자아 효능감이란 자신을 돌보며 현실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이자 자신감이고
자기 존중감은 스스로를 존중하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자존감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자리를 굳건히 하기 위해 두 축이 필요하다.
하나는, 사회적 존중이라는 자존감의 토양을 다지는 것이다. 존중을 공공재로 만들자. 서로에게 존중의 연료가 되어주자.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조건 없는 공정한 존중을 보내는 것이다.
둘째로, 개인 스스로가 자존감에 대해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자존감의 본질은 자신에 대한 신뢰이자 행복을 누릴 만한 사람이라 여기는 자기 존중감이다. 이건 정신승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데 자신을 신뢰하긴 어렵고,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을 존중하기도 어렵다. 자존감은 스스로가 믿고 존중할 내면 세계를 세우고 그 신념을 바탕으로 삶을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지는 삶의 일련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내면의 힘이다.
자존감의 재료인 자신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성공 경험이 축적될 때 생겨난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주체가 자기자신이 되는 일이다. (pp.71-75)
많은 부모는 아이의 나약함과 열등함을 이유로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으며,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빼앗았다.
[과정] 없이 어른이라는 [결과]만 남은 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나이를 먹어서도 멘토를 찾아다닌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경험과 탐색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삶을 일구는 것이 나다운 삶이다. (pp.79-80)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들에 매몰되어 자신의 욕구를 억눌러온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된다. (p.83)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결과까지 책임질 때 얻어진다.
삶에 완벽한 답안지는 없으나 어떤 답을 내리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당신의 모든 선택은 정당하다. (pp.106-107)
카를 구스타프 융은 개인이 숨기고 싶어하는 성격의 총합을 '그림자'라 이야기하며, 누구나 그림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림자는 완전히 제거될 수 없으며 건강한 내면을 갖기 위해서는 그림자와 화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내면의 그림자가 보기 싫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 개념은 뒤죽박죽이 되어 진짜 자신을 인식할 수 없게 되고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보다 건강한 내면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까지 자각하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자신의 싫은 면들도 인정하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날 때 감춰둔 욕망의 허용치를 둘 수 있고 그 허용치만큼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도 관대해질 수 있다. (p.113)
정상이란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상처, 약간의 결핍, 약간의 부족함을 의미할 테다.
(사실) 당신이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건, (사실) 당신이 어떤 문제와 결핍을 가졌건
그 무엇이건, 다 정상이다. (p.130)
불안하다고 무작정 열심히 하지 말 것.
시간은 무한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전문적인 영역이 있어야 부수적인 경험도 빛을 보는거다.
어디에서도 쓸 수 없는 어설픈 중국어 실력과 어떤 자격도 증명하지 못하는 허술한 자격증과
뭘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활동들로는 삶의 무엇도 보장되지 않으며, 그 안도감은 쉽게 증발한다.
당신의 삶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목적을 세우고 방법을 찾자.
당신의 목적을 충빈히 의식하고 실천하는 것. 안도감이란 그곳에 있다. (pp.149-150)
내 인생이 누군가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싫다면 타인의 삶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타인의 삶은 지켜주지 않은 채, 나의 삶만 배타적 보호 구역으로 지정할 수 없는 것이고,
나에 대해서는 잊힐 권리를 주장하며, 타인에 대해서는 알 권리를 주장할 순 없다.
타인의 사생활에 호기심을 접어두는 것.
그건 내 삶을 지킬 수 있는 전제이자 우리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p.156)
지금 우리에겐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하나는 타인의 삶을 지나치게 관심 두고 참견하지 않는 것인데 이건 일종의 감수성을 키우는 문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예민해지지 않는 것이다.
각자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 (p.165)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조심성과 신중함이지, 불신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다수의 선의를 믿는다.
다른 누군가에게 세상이 선의를 베풀 만한 곳이라는 확신을 주고 싶고,
내가 어려운 순간, 누군가가 손 내밀어 줄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살고 싶다. (p.224)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행복에 필요한 3가지 요건을 우정, 사색, 자유라고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절감하는 건 자유의 일정 부분은 돈을 통해 실현된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는 사회적 입지를 다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내며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돈은 생존의 수단이기에 결코 간과될 수 없다.
하지만 돈의 중요성이 아무리 크다 해도, 돈을 생활수단의 가치를 넘어, 사람의 척도로 삼아서는 안된다.
돈으로 사람의 높낮이를 측정할 수 없으며, 삶의 성패를 결정할 수도 없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하는 질문 이전에,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무엇을 소유했는가로 증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자. 진짜 섹시함은 내면에서 나오는 당당함에 있을 것이다. (pp.226-227)
삶에 우울함과 슬픔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삶의 목적은 언제나 삶, 그 자체일 뿐이다. (p.242)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손에 있는 생명선을 팔목까지 연장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는 일이다. (p.249)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나는 무엇으로 회복하는가, 나는 어느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이것들은 자신의 행복을 다루는 노하우다.
행복하고 싶다면 당신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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