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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3) 소설가의 일 [에세이] (김연수) 본문

Report of Book/에세이

(2019-73) 소설가의 일 [에세이] (김연수)

재도담 2019. 12. 22. 18:00

소설가의 일 

김연수 저, 문학동네, 268쪽. 

동헌이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김연수라는 작가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이 책을 읽고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에세이지만,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실용서적과 같은 느낌도 있다. 

아래는,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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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원하는 걸 얻는지 얻지 않는지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 인생 역시 이야기라면 마찬가지리라.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p.41) 

마침내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다. (p.45) 

백스토리와 디테일을 갖추면, 그 어떤 인물도 악한이 될 수 없다. (p.60) 

다른 사람이 되려면 제일 먼저 내가 바뀌어야만 한다는 것. 다시 태어나려면 일단 내가 죽어야만 한다는 것. 모든 건 내 쪽의 문제였다. 그런데 나는 가만히 놔두고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니까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셈이었다. (p.73) 

우리가 욕망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에 그 욕망을 가리기 위해 짐짓 하는 말들이 바로 문학의 말들이다. (p.115) 

나이가 많든 적든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로 그의 세계관이다. 다시 말해서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뀌면 그의 세계관도 바뀐다. (p.121) 

새드엔딩. 그런데도 이 소설(노인과 바다)은 전혀 비관적이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여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생의 묘미를 이끄는 근본적인 힘은 바로 성격의 형성이다. 굴복하지 않는 모든 시련은 우리를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 성격의 형성이란 바로 그런 뜻이다. (p.122) 

문학적 표현이란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표현하는 걸 뜻한다. 결국 문학이란 남들과 다른, 더 나아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문장을 구성하는 걸 뜻하니까. 욕망의 말들은 꽤 진부한 편에 속한다. (p.131)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이 지금까지도 따뜻하게 읽히는 것은, 인성은 태어나는 계급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던 19세기 영국에 사회의 보살핌 속에서 스스로 노력할 때 한 인간은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던졌기 때문이다. (p.138)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 달라진 사람은 말, 표정 및 몸짓, 행동으로 자신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다는 것. 소설을 쓰겠다면 이것들을 기억하기를. (p.141) 

좌절과 절망이 소설에서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 감정은 이렇게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P.150) 

이유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악행은 정신적 수준이 저열하고 천박한 사람들도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선행을 행하려면 수준이 좀 높아야만 한다. 세 살배기도 악행은 저지를 수 있지만, 선행을 행하려면 좀더 배워야만 한다. (...) 나와 타인이 서로 다르며,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없다는 전제가 없다면 선을 행하는 게 어려워진다. 윤리적 행위는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시작된다. 나와 남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몰라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없을 때 사이코패스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벌어진다. (pp.156-157) 

소설을 쓰는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주인공에 더 깊이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만 한다. 다른 등장인물보다 더 구체적인 정보를 더 많이 알려줘서 주인공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든다. 주인공을 거듭해서 좌절시켜 그를 걱정하게 만든다. (pp.162-163)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거기에 무슨 새로운 내용을 더 보탤 수 있을까?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다. (p.192)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에요. 이상 강의 끝. (pp.217-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