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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8)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에세이] 본문

Report of Book/에세이

(2018-28)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에세이]

재도담 2018. 5. 27. 21:37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저, 더숲, 280쪽. 

책을 읽는 내내, 감동받는 글귀가 너무 많았다. 

책의 첫머리에 있는 글귀 전체를 옮겨 놓는다. 

젊었을 때 나는 삶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었다. 진리와 깨달음에 대해, 행복에 대해, 인생의 의미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그 질문들에 삶이 평생 동안 답을 해 주고 있다. 그때는 몰랐었다. 삶에 대한 해답은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스승을 찾아 나라들을 여행하고 책들을 읽었으나, 내게 깨달음을 선물한 것은 삶 그 자체였다. 이것은 '우리는 자신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여행이 우리를 만든다.'는 명제와 일치한다. 


시인은 다른 시인을 대변할 수 없고, 작가도 다른 작가를 대신할 수 없다. 모든 시는 존재하지 않는 시였으며, 모든 책은 존재하지 않는 책이었다. 작가든 독자든,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일이다. 타인의 기대나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답을. 어느 날 삶이 말을 걸어올 때, 당신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어떤 상실을 겪고 아픔의 불을 통과했다 해도 삶에게 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계속 거부당해도 삶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가? 

여기 모은 산문들은 내가 묻고 삶이 답해 준 것들이다. 인도의 시인 갈리브는 "내 시와 함께 나를 준다."라고 썼지만, 어떤 글도 본연의 나를 다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내가 쓰는 글들이 본연의 나를 능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불확실한 시대에 내 글이 위로나 힘이 되진 않겠지만, 나는 다만 길 위에서 당신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들을 갈무리 해 본다.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영성은 내가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일이며, 나 자신 못지않게 다른 존재들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일이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플 수 밖에 없다. 

마음의 거리와 목소리의 크기는 비례한다. 마음의 거리를 좁히라. 가슴이 더 멀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소리치지 않기,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이 그 사람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자신도 목표 지점과 원하는 결과를 향해 가느라 삶이 여정에서 선물하는 것들을 지나치기 일쑤이다. 삶은 그 여정들로 이루어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사실 전 세계의 산과 정글 속에서 행해지는 트레킹의 진정한 의미는 목표 지점에 서둘러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정의 매 순간을 즐기고 감동했는가'에 있다. 모든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여행의 내용이다. 어느 지점에 도달했는가보다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가, 얼마나 많이 그 순간에 존재했는가가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여행 그 자체이다. 

나는 타인이 말하는 '누구여야 하는' 나가 아니며 '어디에 있어야만 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살아 있는 존재이므로 매 순간 다른 나이고, 어디에 있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나이다.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첫 번째 기준은 나의 외모와 겉모습이며, 두 번째 기준은 과거이다. 우리는 자주 오해받는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봄마다 껍질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나무와 같다.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젊어지고,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꿈을 포기하고 한곳에 안주하는 사람은 비루하다. 집을 떠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성장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 어떤 길도 수많은 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너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걷다가 그것을 따를 수 없다고 느끼면 어떤 상황이든 그 길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 자신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무의미한 길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 너는 그 길과 하나가 될 것이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너로 하여금 삶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한 길은 너를 강하게 만들고, 다른 한 길은 너를 약하게 만든다. 죽는 날까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삶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걸으려면 편견의 반대편에 설 수 있어야 한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든 사람이 당신의 여행을 이해하리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길이지 그 사람들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답이 아니라 자신의 잡을 찾는 것이 호모 비아토르이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날, 그날이 바로 길일이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인간 역시 한계에 갇힌 존재이다. 그 둘을 보완하고 연결해 주는 것이 바로 예찬이다. 여행이 내게 준 선물은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그것이다. 부자는 누구인가? 많이 감동하는 사람이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한 존재를 아는 것은 한 세계를 끌어안는 일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그 무한한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름과 성별과 직업으로 분류하고 규정짓는 순간, 나는 그 무한한 세계를 사랑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냥 '그대'라고 불렀다. 그 자체로 존중이고 사랑이다. 

자세히 보기만 하면 모든 사물은 그 속을 가지고 있다. 종교에서는 그것을 '신의 파편'이라고 부른다.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심각한 장님은 없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심각한 귀머거리는 없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경이나 환경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에 대한 집중도다. 보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존재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보통 거의 언제나 다른 곳에 가 있다. 눈앞의 세상을 보지 않고 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영혼이 고통받는다. 깊이 바라보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여행을 하든 과거에 그 길을 걸었던 모든 사람, 현재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당신과 함께 한다. 당신은 그 모두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고 빋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의 고정된 생각과 관념, 제한적인 지각 작용이 만들어 내는 환상일 뿐이다. 그것이 존재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이다. 우리가 우리의 큰 의식과 접촉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개인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그 때 우리는 시공간을 넘어 동일한 파동을 지닌 존재들과 연결된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삶이 우리를 우회로로 데려가고, 그 우회로가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안겨준다. 먼길을 돌아 '곧바로' 목적지로 가는 것, 그것이 여행의 신비이고 삶의 이야기이다. 

지금 내가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삶은,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과거의 나와 작별하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 안전지대를 떠나 더 큰 비전을 얻는 일이 비전 퀘스트이다. 

백단향 나무로만 된 숲은 없다. 

여행은 얼마나 '좋은 곳'을 갔는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자주 그 장소에 가슴을 갖대 대었는가가 중요하다. 우리의 삶을 사랑하면 삶 역시 우리에게 사랑을 돌려준다. 

마지막으로 노래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춤춘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고요히 앉아 있었던 것이 언제인가? 

인류를 사랑하는 것과 눈앞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 삶의 지혜는 불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건강한 씨앗을 심는데 있다. 가장 좋은 치유자는 자신이 깊이 상처 입은 적 있는 치유자이다. 

고통의 대부분은 실제의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으로 더 심화된다. 우리가 가장 많이 맞는 화살은 스스로 자신에게 쏘는 두 번째 화살이다. 상처에 너무 상처 받지 말 것, 실망에 너무 실망하지 말 것, 아픔에 너무 아파하지 말 것─이것이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이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우리를 더 상처 입힌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문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자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쏘는 화살은 피할 길이 없다. 정신에 가장 해로운 일이 '되새김'이다. 

즐겁고,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교리들은 잘못 베낀 것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정의와 도그마를 넘어 두려움 없이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면 언제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살아있는 경전이다. 인생은 필사본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써 나가는 책이다. 우리는 예술가이며 예술 그 자체이다. 

상처는 설명을 듣는다고 낫지 않으며, 시간이 걸려야 아물고 새살이 돋는다. 의문이 깊으면 문이 열린다. 문제를 살아야만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따르지 말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따르라. 
당신이 추구의 길에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이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 그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 그 해답은 당신의 목적지가 아닌 그의 목적지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관게없이, 그 선택이 당신의 본성을 결정한다. 자신 안의 낮은 차원의 본성을 따르면 당신은 낮은 차원의 자신을 거듭 만날 것이고, 높은 차원의 본성을 따르면 높은 차원의 자신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겪는 일들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사건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어난다. 예기치 않았던 불행은 껍질을 태워 버리는 불과 같아서 껍질 속에 가려져 있던 우리 본연의 모습을 보게 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은 모두 날씨 같은 것이고, 자신의 본질은 그 날씨에 영향받지 않는 끝없이 파란 하늘이다. 
삶은 우리의 영혼이 우리 자신에 대해 읽는 책이다. 그 책의 다음 장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대가 무엇을 행하든 사랑의 마음으로 하라. 미움의 마음으로 하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 해도 부정적인 결과만 얻을 뿐이다. 만약 나의 오래된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습관, 나와 타인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번뇌의 원천인 그런 습관이 내 마음속에서 안전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면, 이 세상의 즐거움과 평화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비평과 비판보다 칭찬과 긍정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비평과 비판으로 변화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적인 깨어남이란 새로운 각도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삶을 원하고 새로운 장소를 갈구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새로운 눈이다. 
풀벌레 하나, 꽃 한 송이, 저녁노을, 사소한 기쁨과 성취에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내면의 불이 꺼진 사람이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한다. 
마음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분노를 느낄수록 현재를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 마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일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에 의해 왜곡된 인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내려놓을수록 자유롭고, 자유로울수록 더 높이 날고, 높이 날수록 더 많이 본다. 새는 날갯깃에 닿는 그 바람을 좋아한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본래의 나는 생각들이 아니라 그것들의 관찰자이다. 그 '나'의 알아차림이 없으면 생각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고, 현존이 아니라 끊임없는 중얼거림이 일상을 차지한다. 

우리와 똑같이 살아 있기를 원하고 행복을 갈망하는 생명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 삶을 잘 사는 것만이 그 생명들에 값하는 길이다. 

어둠의 시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어둠을 치료할 수 없다. 상처와 고통은 단순한 지식에서 통찰력 있는 지혜로 옮겨 가는 다리이다. 

자신의 '올바른' 생각과 다르거나 정의로움에 어긋나는 행동들이 보여도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살피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인간에 대한 가장 나쁜 예의는 '너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자세이다. 자신이 가진 유일한 연장이 망치일 때는 모든 대상을 튀어나온 못으로 보게 된다.

선물은 우연한 것일 때 마음에 더 새겨진다. 특히 낯선 사람으로부터 오는 선물은 인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모든 이간의 마음 안에는 하나의 원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원이 넓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원이 더 좁아지는 사람이 있다. 그 원이 무한히 넓어질 때 신까지도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영적 대자유이다. 

'나-너'의 관계는 온 마음을 기울이는 관계이며, '너'를 나의 의도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은 '나-그것'의 관계에서 주로 일어난다. '나-너'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고, '나-그것'의 관계는 쓸모의 관계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상실은 '나-너'의 만남을 잃는 일이다. 모든 관계의 불행과 갈등은 '나-너'의 관계가 되지 못하고 '나-그것'이 됨으로써 온다. 
만남은 결코 존재의 모자람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만남이 존재를 발견하게 한다. 만남을 통해 존재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온전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하는 결말이 아니라 모험과 위기와 장애물들이 등장하는 여정이다. 그 여정을 어떻게 경험하고 극복하는가가 모든 영웅 신화의 줄거리이다. 
주저하지 말고 경험에 뛰어들라. 문제에 대한 해답을 타인에게서 빌리려 하지 말고 그 문제를 살아야 한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이다. 관념과 공식에서 벗어나 이 삶을 최대한으로 경험해야 한다. 
고난에 찬 여정이 빨리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긴 과정이 되기를 신들에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랜 과정 끝에 도달한 자기 발견이 더 진정하고 확고하기 때문이다. 
모든 여행이 자기 성찰의 길로 불리는 이유는 목적지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험한 산맥을 넘고, 태양과 눈비와 추위를 견디고, 때로는 우회하고, 때로는 공동 숙소에서도 자야 하는 전 과정이 주는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설령 이타카가 보잘것없는 곳일지라도 
    이타가는 너를 속인 적이 없다. 
    너는 길 위에서 경험으로 가득한 현자가 되었으니 
    이타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이해했으리라 
만약 당신이 집을 갖기를 원하는데 누군가가 집을 사 준다면, 당신은 진정한 집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얻기까지의 노력과 우여곡절과 경험이 생략된 집은 당신의 진정한 소유가 아니다. 그 집은 모래로 지은 집이나 다름없다. 당신은 곧 그 집을 잃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리를 발견하기 원하는데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리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진리가 아니라 모조품에 불과하다. 당신은 그 진리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