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17-23) 사피엔스 [역사/인문학] 본문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저, 조현욱 역, 김영사, 636쪽.
이 책을 읽는 기간동안 슬럼프에 빠진 탓에, 책을 읽는데 2달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저자인 유발 하라리와 나의 생각이 일치하는 지점들이 너무 많아서 신기하기도 했고
또 저자의 새로운 관점들을 배울 수도 있어서 좋았다.
올해의 책으로 꼽힐 책이다.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전 세계 모든 지역 사람들은 놀라운 신기술에 접근할 수단을 가지려 고군분투하지만 이 기술은 우리에게 그것으로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 역사연대표 >
6백만년전 인간과 침팬지의 마지막 공통 조상
→ 250만년전 호모 속屬 진화
→ 20만년전 호모 사피엔스 진화
→ 7만년전 인지혁명
→ 1만2천년전 농업혁명
→ 5백년전 과학혁명
→ 2백년전 산업혁명
<서론>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種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가장 오래 지속된 인간종), 호모 솔로엔시스(인도네시아 자바), 호모 데니소바(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르가르터, 호모 사피엔스. 이 중 지금 남아있는 인간 종은 호모 사피엔스 밖에 없다.
인간의 특징.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예외적으로 크다. 두뇌의 발달이 흔히 생존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큰 두뇌는 무겁고 갖고 다니기 힘들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또 다른 인간의 특징은 직립보행이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두 손을 쓸 수 있게 된 장점이 있지만, 대신 골반이 좁아지고 산도가 좁아지면서 타 동물에 비해 지나치게 덜 성숙한 개체를 출산하는 이른 출산을 선택해야 했다.
먹이사슬에서 호모 속이 차지하는 위치는 극히 최근까지도 확고하게 중간이었고,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대부분의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동물들은 수십만년에 걸쳐 천천히 그 지위에 오르므로 생태계는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나, 인간은 너무 빨리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 생태계 뿐 아니라 인간 스스로도 거기에 적응하기가 어려웠고,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타 동물에 비해 훨씬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먹이사슬의 최정점으로 올라서는 핵심단계는 불을 길들인 것이다. 불을 사용하면서 맹수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일도 했지만, 더 큰 역할은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창자가 짧아지고 음식을 소화시키는 시간이 현격히 줄어들고 뇌가 커지게 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
호모 사피엔스는 나머지 인간종들을 멸망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사피엔스의 출현으로 타 종들이 급속히 사라졌다. 호모 솔로엔시스는 5만년전, 호모 데니소바는 그 직후, 네안데르탈인은 3만년전, 플로렌스 제도의 난쟁이 비슷한 인류는 약 12,000년 전 증발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인류를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나? 그것은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체계 덕분이었다.
<인지혁명>
인간의 언어는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고 비물질적 사고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추상적인 사고는 인구 150명 이상의 사회집단을 구성하는 원동력이고 유전자의 변화 없이도 인간 사회를 유동적이고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핵심요인이 된다.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인지혁명과 농경혁명 사이의 인간들은 수렵채집을 하며 살았다. 현재 인류가 갖고 있는 많은 특성들은 대체로 이 수렵채집 기간의 진화 산물이다. 수렵채집을 했던 인류는 현재의 인류보다 공동체 전체의 지식의 양은 훨씬 작았지만, 개인이 갖춘 지식의 양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정보(계절/기후의 변화, 식용작물과 독성을 가진 식물의 분류, 의학, 지리학, 등등)를 모두 다 알고 있어야 했다. 그들은 농경사회 이후의 인류처럼 편식을 하지 않았으며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건강하게 살았다. 1세까지의 영아사망율은 매우 높았지만 그 시기만 지나고 나면 대체로 60-80세까지 생존했다.
고대수렵채집인에게서는 애니미즘 신앙이 일반적이었다. 그들은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자연현상이 의식과 감정을 지니고 인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인류는 다른 종의 인간들과 함께 수많은 지구상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다른 종(특히 대형포유류)을 멸종시켰다.
<농업혁명>
농업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생겨났다. 특정 지역에서는 농업혁명이 있었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농업과 목축업에 맞는 후보가 많지 않고 그들 종이 특정 장소에 살았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개수로 결정된다.
농업혁명 이후 인간의 삶은 훨씬 비참해졌는데 왜 농업혁명이 발생했는가? 그것은 농업혁명이 인간의 인구수를 늘리는데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을 통해 인간은 인구폭발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개개인의 삶은 노동시간의 증대, 각종 질병의 출현, 삶의 질의 하락을 초래했고 그것은 인간이 키우는 가축들에게도 똑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인간이 키우는 닭, 소, 돼지, 양은 엄청나게 개체수가 증가해서 진화적으로 성공했을지 모르나 각 개체의 삶은 극도로 비참해졌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농경사회 이전의 인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미래를 걱정해봐야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를 즐기며 살았다. 농경사회로 접어든 후 인류는 미래를 걱정하며 살게 되었다. 다양한 변화를 예상하고 준비한 자들은 다양한 기후와 환경의 변화에도 잘 대처할 수 있었고 고로 생존율을 높일 수 있었다.
농경사회는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였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고 농부들은 자기들이 연명할 정도의 식량만을 차지했고 그들의 잉여 생산물은 소수의 엘리트들을 먹여 살렸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진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협력망은 '상상 속의 질서'였다. 이들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규범은 타고난 본능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공통의 신화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함무라비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두 평등이나 위계질서 같은 보편적이고 변치않는 정의의 원리가 지배하는 현실을 상상했지만, 그런 보편적 원리가 존재하는 장소는 오직 한 곳, 사피엔스의 풍부한 상상력과 그들이 지어내어 서로 들려주는 신화 속뿐이다. 이런 원리들에 객관적 타당성은 없다.
상상의 질서란 사악한 음모도 무의미한 환상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현존하는 가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그 대안이 되는 가상의 질서를 먼저 믿어야 한다.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일 뿐이다.
모든 상상의 질서는 스스로가 허구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불행하게도 복잡한 인간사회에는 상상의 위계질서와 불공정한 차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위계질서의 도덕성이 같은 것은 아니고, 일부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 더욱 심한 차별로 고통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학자들이 알기로 대규모 사회치고 차별을 전부 없앤 곳은 이제까지 없었다.
역사의 특권을 누린 계층은 또다시 특권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단지 사람들이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양자를 구분하기 좋은 경험법칙이 있는데,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이다. 생물학은 매우 폭넓은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강제하고 다른 가능성을 금지하는 장본인은 바로 문화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없다.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말로 부자연스러운 행동,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은 아예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금지할 필요가 없다.
< 인류의 통합 >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거의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게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오늘날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인지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인류를 통합할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이 있는 후보 세 가지가 출현했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 과학혁명 >
과학혁명의 발단은 무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면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지를 인정한 현대 과학은 새로운 지식의 획득을 목표로 삼는다. 그 수단은 관찰을 수집한 뒤, 수학적 도구로 그 관찰들을 연결해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론을 사용해서 새 힘을 획득하고자 하며, 특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과학은 미래에 무엇이 존재해야 마땅한지를 안다고 허세를 부릴 수 없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와 이데올로기 뿐이다. 과학은 자신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할 수 없다. 잣니이 발견한 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할 능력도 없다.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이 불러온 커다란 변혁 중 하나는 인간을 시간에 가두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과 지역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그 자리에 국가와 시장을 채워넣은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매우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현대 이데올로기와 정치 프로그램 대부분은 무엇이 진정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Report of Book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35) 여행하는 인간 [인문학] (0) | 2017.10.05 |
---|---|
(2017-29) 다시, 책은 도끼다 [인문학-책읽기] (0) | 2017.09.09 |
(2017-21) 국화와 칼 [인문학] (0) | 2017.04.27 |
(2017-11) 공산당 선언 [인문학] (0) | 2017.03.04 |
(2016-47) 이슬람문명 [인문학] (0) | 2016.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