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Book]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본문
청부론, 기복신앙, 번영신학이 판치고 있는 현재의 한국 기독교계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도 하게 되고,
나 자신의 삶의 모습도 되돌아보게 된다.
낮은 자리로, 더 낮은 자리로.
우리는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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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가난해지셔서 가난을 치유하신 예수의 모범을 따라 가난에 참여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은 부자를 책망하셨고 부를 경계하셨다. 부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세상의 가난을 못보게 하고, 고아와 과부의 상황을 알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부는 불안을 가중시켜 하나님이 아닌, 재산에 대한 의존성을 증가시킨다. 우리의 부르심은 돈을 '정직하게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롭게 사는 것이다.
세상에는 세가지 종류의 가난이 있다. 첫째는 게으르고 나태한 태도로 인해 생기는 가난이다. 이러한 가난은 치유의 대상이고 부끄러운 가난이다. 그러나 이러한 첫번째 가난을 판단하는 데에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개인의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한 가난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두번째 가난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번째 가난은 사회구조적 가난이다. 다수의 가난이 여기에 속하는데, 겉모습만 보면 첫번째 가난에 해당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자기가 처한 환경으로 인해 수차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계속된 실패만 경험하다 학습된 무기력, 게으름으로 인한 가난에 처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 가난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강요한 것이다. 세번째 가난은 자발적 가난이다. 충분히 부유해 질 수 있는 환경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놓음으로 가난에 이르는 가난이다. 자기 수입에서 다른 사람의 몫을 떼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나에게 필요한 것 이외의 재화를 나누는 것이다.
욕망은 치료하고 다스릴 대상이다. 욕망 자체를 제어하지 않으면 아무리 성숙한 신앙인이라 해도 타락하게 되어있다.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번영을 이겨내는 사람은 한두 명에 불과하다."(데일 카네기)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어져 욕망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눈이 열려 '필요'와 '욕망'을 구분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이용해 나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 내 안의 탐욕을 비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을 품어야 한다.
"네가 쌓아 둔 빵은 굶주린 사람들의 것이며, 네 옷장에 보관해 둔 옷가지들은 헐벗은 자들의 것이며, 네가 땅 속에 감춰 둔 금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다."(대 바실, Basil the Great) 세금은 내 수입에 포함된 '나라의 몫'이므로 정직하게 내야 한다. 많은 신앙인들이 세금 내지 않는 것 혹은 세금을 줄여 신고 하는 것에 대해 별로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점은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직원 복지 문제는 고용주에게 매우 중요한 신앙적인 문제다.
"이 세상에는 모든 인류의 필요를 위한 충분한 자원이 있다. 하지만 그 자원으로 모든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모한다스 간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오늘에 필요한 오늘의 공급'에 주목해야 한다. 저축은 부득이한 선택이다. 우리가 쓰고 남은 것을 모두 나눈다면 내가 부족한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부족함 없이 공급받을 수 있다. 땀 흘려 일한 대가 이외의 소득은 악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하지 않고 얻은 소득은 궁극적으로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공동체는 크게 보면 하나의 운명체다. 우리는 나눔을 통해서 참행복을 느낄 수 있다.
"예수님에게 있어 하나님께 대한 섬김과 가장 작은 형제에 대한 섬김은 같은 것이었다."(디트리히 본회퍼)
노동 자체가 목적이 될 때에야 노동은 축복이 된다. "좋은 일에 몰두할 때 우리의 '태생적 이기성'은 사라지고 그 대신 우리 내면에 있는 신적 자아가 자유함을 얻는다. 자기 중심적 본능과 잠재성을 억압하고 있던 분열된 자아에 의해 더 이상 구속받지 않는 우리의 에너지는 자유롭게 그리고 창조적으로 흘러나온다."(죌레) 놀랍게도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은 성장 과정에서 경쟁에 실패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일찌감치 경쟁에서 패배한 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어냈다.
경쟁심과 시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두가지 방안. 하나는 성공의 기준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성공은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둘째는 이웃에 대해 진정한 우정을 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약함을 극복하는 것,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아지는 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개인주의는 '개인적인' 성취에 대한 근거 없는 자만심을 부추기고, 그들로서는 통제 불가능한 요인들에 의하여 그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부추기고 있다. 단지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그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교만한 일이다. 오만한 개인주의는 어떤 성취를 이루는데 기여한 주어진 기회나 제약은 고려하지 않은 채, 개인의 공로만을 인정한다.
예수님의 승리는 목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진리를 지킨 것이다. 그러한 '승리의 패배'들이 이 사회를 정화시키는 거룩한 희생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기려 하지말고, 정직하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패배하는 것이 때로는 성공하는 것이다.
힘과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들과 정반대로 작은 운동, 소수의 운동일 때 최고의 기능을 발휘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상한 일이지만 작은 운동의 범주 이상으로 확대되면 그 나라는 본질이 변하고 만다. 때로 세력을 키우고 힘을 키워야 할 때가 있을 수 있지만 좋은 업적과 성과를 내는 것이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섬기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도 힘의 유혹을 물리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겉으로는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배구조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교묘한 지배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돕는 것이 '힘을 북돋아 주는(empowering)' 것이 아니라 '노예화하는(enslaving)'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할 때 사람들이 나를 성자로 여기더니, 부조리한 제도를 개혁하려 하자 나를 공산주의자로 몰았다."(헬더 카마라)
쉐이커타운 서약(The Shakertown Pledge)
1. 나는 세계 시민임을 선언한다.
2. 나는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건전한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3. 나는 단순한 삶을 창조적으로 살고 내 개인적 부를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다짐한다.
4. 나는 사회 제도를 변혁함으로 좀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육체적, 정서적,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것을 다짐한다.
5. 나는 내 직업에 따르는 책임을 다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제품 생산을 피하도록 힘쓸 것을 다짐한다.
6. 나는 내 몸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고 적당한 영양을 공급하여 건강을 유지하도록 힘쓸 것을 다짐한다.
7.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살핌으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윤리적으로 그리고 사랑 깊은 마음으로 대할 것을 다짐한다.
8. 나는 기도와 묵상과 연구를 통해 개인적 갱신에 힘쓸 것을 다짐한다.
9. 나는 신앙 공동체에 책임적으로 참여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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