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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본문

Report of Book

[Book]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재도담 2015. 4. 25. 12:48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저자
틱낫한 지음
출판사
솔바람 | 2013-04-3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붓다와 그리스도의 삶, 그들이 남긴 가르침의 진정한 핵심은 무엇...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2015 - 17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한데 아울러 설명한 틱낫한 스님의 책. 

개신교의 목사들보다도 오히려 예수의 가르침을 더 잘 전하고 있는 책이라 느껴진다. 

피상적이고 왜곡된 복음은 이제 물러나야 한다.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그 안에 들어있는 참된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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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책의 내용을 참고하여 나의 생각을 보태어 요약한 것이다) 

못을 박다가 왼손을 찧으면 오른손이 즉시 다친 손을 감싼다. 오른손이 왼손을 보며 "내가 너를 위해 착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법이 없다. 이것이 '보시'이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무아無我의 정신이다. 

참된 가르침, 산 가르침은 석가의 생애와 업적을 본받고 예수가 살아있는 것 같이 그렇게 실천하는데서 가능한 것이다. 

우리 내면을 깊이 관찰하면 각자의 행동이 우리 모두의 집단 의식의 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특정 행동을 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으며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그의 그 됨은 오롯이 그의 몫이 아니라 여러가지 인과율에 의한 결과이다. 이것이 곧 원죄의 개념이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한다면 그는 더 이상 원수일 수 없다. 원수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고통으로 아파하는 사람, 그리하여 나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개념만 남을 뿐이다. 

◆ 불교의 오계 : ① 생명 경외, ② 너그러움, ③ 책임지는 성생활, ④ 깊이 말하고 듣는 것, ⑤ 건강한 물질만의 섭취 

나는 생명을 파괴함으로써 야기되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고, 자비심을 크게 일으켜 사람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길을 배우기로 서약한다. 나는 내 스스로도 죽이는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죽이는 것도 허용하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내 생각에서, 또 내 실생활에서 어떤 형태의 죽임도 방관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는 착취와 사회적 불의와 부정과 억압으로 야기되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고, 자애심을 배양하며 사람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의 안녕을 위해 일하는 길을 배우기로 서약한다. 나는 나의 시간과 정력과 물질을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너그러움을 실천하기로 서원한다. 나는 스스로 훔치는 일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에게 속해야 할 것을 소유하지도 않기로 결심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존중한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의 고통이나 지상에 있는 동식물들의 고통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성적 비행으로 야기되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고, 책임감을 배양하여 개인과부부와가족과사회의 안전과 순결성을 보호하는 길을 배우기로 서약한다. 나는 사랑과 장기적인 약속 없이 성관계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는 내가 한 약속과 다른 사람들이 한 약속을 존중하기로 한다. 나는 어린이들을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하고 부부와 가족이 성적 비행 때문에 파탄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나는 생각 없이 하는 말과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모름으로써 야기되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그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랑스런 말을 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힘을 배양하기로 서약한다. 나는 말로써 행복을 증진시킬 수도 있고 고통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자신감과 기쁨과 희망을 고취시킬 말들을 가지고 성실하게 말하기로 서약한다. 나는 내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소문을 퍼뜨리지 않고,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일을 비평하거나 정죄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는 분열이나 불화를 조장할 수 있는 말, 가족이나 공동체의 유대를 깨뜨릴 말을 삼간다. 아무리 조그만 말이라도 모든 갈등을 화해시키고 해결하는 데 나의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나는 우리가 무심코 행하는 소비로 야기되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고, 마음을 다해 생각하면서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일을 실천함으로써 나 자신이나 나의 가족이나 내가 속한 사회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증진시키기로 서약한다. 나는 내 몸과 의식에, 그리고 내 가정과 사회의 집단적인 몸과 의식에 평화와 안녕과 기쁨을 증진시킬 물질만을 섭취하기로 서원한다. 나는 알코올이나 기타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어떤 물질도 사용하지 않고, 독성이 든 음식뿐만 아니라, 특정한 텔레지변이나 잡지나 책이나 영화 등 유해한 요소가 포함된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나는 나의 몸이나 의식을 이런 독성으로 손상시키는 것이 나의 조상들, 나의 부모님, 내가 속한 사회, 그리고 후대들에 대한 반역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나는 나와 이 사회를 위해 적절한 식생활을 이끌어 감으로써 내 속에 그리고 이 사회 속에 있는 폭력과 두려움과 분노와 혼돈을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적절한 식생활이 이 사회의 변혁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한 잔의 물을 마시면서 한 잔의 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실감하고 의식하는 것, 이것이 마음 다함이라는 것이다. 앉거나 서거나 숨 쉬면서 우리가 앉아 있고, 서 있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바로 우리 속에 있는 마음 다함의 씨앗과 맞닿는 것이고, 이렇게 하면 우리 속의 마음 다함은 힘차게 자라날 것이다. 

빛이 비추면 어둠이 사라진다. 우리는 이것이 빛이 어둠과 싸워 어둠을 쫓아내는 일종의 싸움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것은 빛이 어둠을 감싸 안는 일이다. 우리는 악을 쫓아낼 필요가 없다. 그것을 비폭력적으로, 비이분법적으로 감싸 안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몰입하기를 원한다면 예수께서 보여 주신 삶의 기술, 삶의 예술을 배워야만 한다. 우리가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예수와 접하는 것은 우리 속에 이미 있는 깨침의 특성에 물을 주고 마음을 한데 모으는 일을 실천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예수의 참된 몸은 그의 가르침이다. 그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그의 살아계신 몸이요, 그리스도의 산 몸은 그의 가르침이 실행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라도 나타난다. 

일상생활에서 순간순간 마음을 다해 생각하는 삶을 살라. 그러면 그런 일이 하나의 습관이 된다. 그러다가 어려운 때가 닥치면 자연스러우면서도 편하게 그 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마음을 다하여 생각하며 걸어가는 것, 숨 쉬는 것, 앉는 것, 먹는 것, 차 마시는 것, 이 모든 것이 귀의하여 의지처에 머무르는 것의 실천이다. 

기도와 명상이 우리의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의 몸, 세상에서 하는 우리의 행동으로도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행동은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예수의 행동을 모범으로 따라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 평화스런 세계를 창조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우리의 언어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떤 개념이나 존재를 정확히 우리의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신학자 틸리히는 하나님이 인격체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사과주스를 맛보지 못한 사람에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가 없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그 사람은 사과주스에 대해 진정한 체험을 할 수가 없다. 유일한 길은 그것을 마셔보게 하는 것이다. 사물은 개념이나 말로 묘사될 수 없다. 오직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금강경」에서는 우리가 여래를 소리나 이미지를 통해서 만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은 하나님이 불가시적이고 불가해하고 모든 지각적 표상에서 넘어선 분이라고 한다. 단순하고 원초적인 이미지가 초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 가면 하나님은 어떤 이미지라든지, 다른 어떤 지적 표상물을 매개체로 하지 않고 직접 우리에게 임하신다. 

우리가 부처를 세상의 다른 사물들과 떨어진 별개의 개체로 알고 있는 한, 비록 부처를 길에서 만나더라도 결코 알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선사는 그의 제자에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다. '참부처'를 체험하기 위해서 '개념으로서의 부처'를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과 혜안으로 체험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파도밖에 보지 못할 때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 속에서 물을 체험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큰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니르바나를, 하나님의 나라를 이 순간 체험하는 것은 우리를 많은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다. 우리가 사물의 무자성無自性을 체득하면 우리는 동시에 존재의 궁극 차원인 니르바나를 체득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두려움, 집착, 허상, 욕망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진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날마다 하는 체험의 대상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 니르바나는 우리 존재의 바탕인데, 욕심이나 분노나 의심이나 두려움이나 망각 같은 장애물들이 그 빛을 차단한다. 수행은 이런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인데, 그런 수행에서도 장애물들이 있다. 
- 공경에 처할 경우만 하다가 그것이 지나가면 곧 잊어버리고 수행을 중단하는 것 
- 수행이 표층적이 되는 것 
- 마음을 다하여 깊이 있게 의식하면서 하거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는 것 
- 얼마 지나면 그것이 건조하게 되풀이하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 교회나 교단의 위치를 강화하기 위해 정치세력과 야합하기를 주저않는 것 
- 자아를 버리는 대신 자아를 세우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 
- 자기 자아를 절대적인 진리를 생각하고, 다른 모든 영적 전통들을 오류로 치부해 버리는 것 

일주일중 하루는 필수적으로 이 마음을 한데 모으는 수행에 바쳐야 한다. 이것은 안식일 정신과 잘 부합한다. 

참된 체험이 없으면 관용과 이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종교들은 참된 실천과 참된 체험이 꽃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옮긴이의 논문 : 깨침과 메타노이아 -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A. 함께 일한다 - 불교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자비와 사랑을 실천에 옮겨 천대받고, 소외되고, 주변으로 밀려나고, 비인간화된 계층의 사람들을 따뜻이 보살피는데 협력한다는 뜻이다. '남을 위한 조내'의 이상을 실천에 옮겨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산업화·상업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에 함께 대처한다. 개인주의, 물질 제일주의, 치열한 경쟁, 성공 제일주의 등의 문제를 함께 붙들고 씨름한다. 

B. 함께 생각한다 -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우선 서로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철학 및 신학적 영역에서의 근본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고 토의한다. 

C. 함께 수행한다 - 궁극변화, 성불成佛, 메타노이아. 이것은 '인간의 사고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 변화를 받는 것, 모든 형태의 이기주의에서 하나님과 이웃으로 향하는 것'으로서, '변화된 의식, 변화된 사고방식, 변화된 가치 체계'를 의미한다. '전 인격으로 철저한 의식적 재구성이 일어나는 것, 되돌아옴, 삶에 대하여 완전히 새로운 태도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궁극적 의식 변화를 하나의 공통의 목표로 삼고 여러 가지 구체적 방법들을 함께 생각하고 토의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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