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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에 대한 비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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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에 대한 비판

재도담 2026. 6. 20. 11:13

1. 요즘 내 피드에 보면 이재명 대통령을 욕하고 비난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다. 

2.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정부의 결정을 보고 ‘내가 이러려고 너 뽑았냐?, 이러고도 네가 진보냐?, 우리를 배신했다‘ 등. 그리고 퇴임 후 MB검찰에 의해 난도질 당할 때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조차도(도덕적 우월감인지, 결벽증인지 등의 이유로) 선긋기하다가… 그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범진보 진영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는 분을 못봤다. 내가 느끼기엔 변덕이 너무 죽 끓듯하는 것 같다. 

3.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 FTA협상을 하든, 이라크 파병을 하든, 그가 타락하거나 변절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최종 의사 결정권자가 되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부분을 두루 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국익과 국민들을 최우선했다는 점에선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이용한 적도 없다고 생각한다. 

4.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난 그 분의 공이 과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그것이 그의 희생과 봉사를 모두 덮을만큼 크지 않다. 권력에 1도 뜻이 없었지만 시대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불려나왔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충격과 트라우마가 우리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이 크리라 생각된다. 할 말이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한다. 

5.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크게 3가지 정도인 것 같다: 검찰개혁, 부동산문제, 용인술. 

6.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때때로 정반대 방향으로 과도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이전 글에도 썼었지만). 폭력교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들의 지도권한을 없애자 드라마 '참교육' 같은 현실이 생겨났고, 성폭력·성추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판결을 내리자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났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를 +10, 부작용 없는 이상적인 정책을 0라고 한다면, 때로 우리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는 정책은 -6으로 가버린다. 그런데 꼭 마이너스 쪽으로 가야 개혁일까? +10에서 +4로 가는건 개혁이 아닌가? -6과 +4, 어느 쪽이 더 이상적인 정책에 가깝나? 

7.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분들은 보완수사권을 주면 검찰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보완수사권을 없애면 아무런 부작용 없이 검찰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의해 희생당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보완수사권을 없애자는 것인데, 그로 인해 명백한 범죄행위에 대해 수사가 부실해서 피의자의 죄를 물을 수 없고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되는 일이 훨씬 많아진다면 그로 인한 사회혼란은 누가 책임질 수 있나? 실제 보완수사권이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 어느 쪽이 빈도가 더 많을까? 보완수사권을 없애자는 분들중에 그걸 통계적으로 계량해서 알고 계신 분이 있나? 

8. 부동산 문제도 그렇다. 나는 예전부터 헨리 조지를 존경해왔고, <진보와 빈곤>을 경전처럼 여겼다. 하지만, 헨리 조지가 살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같지 않다. 보유세를 올리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토지공개념, 토지정의를 추구한다. 그런데, 내가 추구하는 방식의 부동산 정책이 펼쳐지지 않는다고 이재명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싶지 않다고 해석하는 건, 매우 부적절한 진단이다.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더 명확한 의지를 갖고 있는데, 무언가 행동을 주저할 땐 그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게 합리적이지 않나? 

9. 용인술에 대해서 나는, 흑묘백묘론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대통령이 그 사람을 사용하려는 영역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면, 인격이나 과거 발언 같은건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행정이라는게 성직자 뽑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10.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야 자기 마음이겠지만, 내가 볼 때는 그 비난의 대부분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리에 있지 않고, 그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 확신은 자신이 가진 정보에 비례해야 한다. 더 적게 보면서 더 크게 확신하는 건 통찰이 아니라 오만일 수 있다. 검찰이든, 부동산이든, 용인술이든 마찬가지다. 비판은 필요하다. 견제도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요즘 그 비판의 수위가 좀 과하다 싶고 섣부른 감이 있다. 속단을 자제하고 조금 더 믿고 지켜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노무현에게 그러지 못했다. 살아 있을 때 난도질했고, 잃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그 순서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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