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edGen's story

의사들의 투덜거림 본문

Scribble

의사들의 투덜거림

재도담 2026. 6. 15. 12:04

페이스북을 보면 네티즌이나 환자들을 욕하며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의사들이 제법 있다. 온 국민이 의사만 못 잡아먹어서 난리다, 의사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네티즌들은 의사를 공공의 적으로 여긴다, 조금만 실수해도 의료사고로 나락에 떨어진다, 의사의 과실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결과에도 의사가 잘못한 것처럼 매도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다.

틀린 말은 아니고 이 고충들 중 일부는 나도 심각하게 여긴다. 의료사고를 곧장 형사 문제로 끌고 가는 분위기, 최선을 다한 결과에도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일 등은 의료현장의 문제를 오히려 더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 

다만 이런 토로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체를 보는 시야가 자주 빠져 있다. 

지금은 의대 커트라인이 훨씬 높아져서 상황이 좀 달라졌지만, 내가 의대에 입학할 무렵만 해도 서울대·카이스트나 연·고대 상위권 학과는 의대와 커트라인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았다. 나보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 중에 의대에 가지 않은 사람이 많다. (지금 억울함을 토로하는 의사들도 대부분 이 시절 사람들이다. 자기보다 성적이 좋은 공대생이 수두룩했다는 얘기) 그 친구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고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의대 시절의 공부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힘들다. (솔직히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가 재미있었고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의대에서는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의 트레이닝도 살인적인 체력을 요한다. 그걸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의료계 바깥의 세상도 만만찮게, 또는 더 치열하다는 얘기다.

서울대·포항공대·카이스트에 들어갈 만큼 비상한 머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인 곳에서, 그들은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취업한 뒤에도 상사에게 온갖 모욕을 견디며 자리를 지킨다. 새벽마다 전화영어로 회화를 익히고, 출근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걸핏하면 야근에 시달린다. 노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천문학적 급여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직도 쉽지 않고, 어떤 이유로든 경력이 끊기면 다시 취업하기도 어렵다.

의사는 의대 6년, 인턴·레지던트 5년이 고되긴 해도, 그 이후에는 그래도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돈도 꽤 번다. 인터넷에서야 욕을 태반으로 먹지만, 실제 삶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의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직업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보인다.

직장 생활이 힘들면 창업하면 되지 않느냐고? 의사가 의료사고로 위태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창업의 길도 벼랑 위를 걷기는 마찬가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시작해도 돈이 될 것 같으면 대기업의 특허 분쟁에 휘말리거나 자본의 갑질 앞에 사업이 휘청인다. 우리나라는 법이 특이해서, 발만 조금 헛디뎌도 바로 범죄자가 된다. 

왜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똑똑한 인텔리들이 자기 자녀를 의대에 보내려 할까? 자기와 비슷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의사 친구들의 삶을 보면서, 부럽기 때문이 아닐까? 까놓고 말해보자. 의사가 정말 그렇게 형편없는 직업이고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면, 정작 의사들이 자기 자녀는 의대에 안 보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녀가 의대에 갈 성적이 되는데도 굳이 말려서 공대로 보내는 의사를 본 적이 없다.

억울함은 토로할 수 있다. 토로해도 된다. 다만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른 이들은 또 얼마나 힘겹게 버티고 어떤 고통 속에 있는지를 함께 헤아리면서 말한다면, 의사들이 인터넷에서 지금처럼까지 욕먹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은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일부 불친절한 의사를 만난 사람들이 인터넷에 화풀이 좀 한다고 그것조차 견디지 못해 발끈하는 모습은 — 솔직히, 좀 민망하지 않나? 

https://youtu.be/VcNAc8_9nRE?si=PPvnPzybrhwueyqu

'Scribb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재명에 대한 비판  (0) 2026.06.20
인정  (0) 2026.06.12
세대별 가치  (0) 2026.06.12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  (0) 2026.06.12
중국인 혐오  (0) 2026.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