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18-09)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인문학] 본문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위베르 망시옹│스테파니 벨랑제 저, 권지현 역, 흐름출판, 207쪽.
융은 말했다. "나는 문명화된 사회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위대한 성과를 부정말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러나 그 정복은 엄청난 상실을 대가로 이뤄진 것이다. 이제 막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를 엿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동물들에게 감정이 없고, 돌은 생각할 줄 모르며, 세상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기계처럼 되뇌며 산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기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믿음이라고 치부해버린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사실 과학과는 정반대되는, 과학으로 가장한 주지주의主知主義와 비슷한 것이다. 주지주의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느끼는 것을 우리와 분리시켜 우리보다 위대한 존재와의 관계 맺는 것을 가로막는다.
세상은 정복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세상을 소유하려고만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실수다.
소유는 머무는 것이다. 유목민의 삶을 살때 우리는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된다.
지구의 모든 사물들은(생물과 무생물들을 포함해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 원인이 되어 눈에 보이는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사이에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서구인들은 시간을 직선적으로 인식하지만, 인디언은 원(순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인디언들은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관조하고 명상하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는다.
인디언들에게 사냥, 섭식, 질병, 수면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행위이다. 영적인 것에 할애된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특별한 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바로 사원이다. 고기나 곤충, 각종 도구, 나무도 그들에게는 성역이다. 크리족의 문화에 속俗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크리족의 모든 구성원은 종교적이며, 신과 맞닿아 있다. 그들에게는 인간 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과 무생물들도 그러하다.
말을 매우 가치있게 여기고 입에 담는 모든 것을 존중한다.
크리족에게는 사회계급도 없고 구성원 간 빈부 격차도 없다. 서열도, 사제도, 감옥도, 사형제도도, 권위도, 고아도, 가족의 해체도 없다. 동물을 죽였을 때에는 동물을 추모하고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는 자는 존중과 공유 속에서 살아간다. 크리족의 문화를 연구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존중'의 가치가 그 중심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문화는 인간의 삶과 개인이 동물, 식물, 광물, 영혼의 세계와 맺는 관계를 모두 아우른다. 크리족 사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바로 존중이다. 존중의 표시로 그들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대놓고 꾸짖지 않는다. 아이가 뭔가 깨뜨렸다고 치자. 크리족 사람들은 여러 사람 앞에서 아이를 나무라지 않는다. 대신 물건을 깨뜨리는 바람에 큰 대가를 치러야 했던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간적접은 훈육으로도 아이는 상황을 매우 잘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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