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Book]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본문
2015 - 37
(스포가 있으므로 책을 안읽은 분은 읽지마세요)
3년전에 한 번 읽었지만 전혀 내용이 기억 나지 않는데,
책에 대한 화려한 서평과 찬사가 간간히 눈에 띄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기로 결심.
그러나.
역시 예전에 왜 그렇게 책을 읽고 아무 느낌이 없었는지 이번에 확실히 기억하기로 했다.
일단, 주제 자체는 마음에 든다. 그리고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는 언제나 기억을 왜곡한다.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왜곡되어 있는지는,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대체로 우리는 자신을 괜찮은 놈으로 기억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내가 남에게 준 상처와 나의 짖궂은 행동들은 대체로 기억에서 지워지기 마련이다.
이런 기억의 왜곡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 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더 바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내적 열망이 이런 왜곡된 기억을 생산해 내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기억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나도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극찬해 마지 않는 반전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토니가 자신은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잘 먹고 잘 살아라'고 편지를 썼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저주 중의 저주가 가득한 경멸의 편지를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책의 주제는 드러났고
소소한 반전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난 이 책의 여기까지가 딱 좋았다!
이 이후의 책의 줄거리는 너무나 억지스럽다.
글의 최후에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 사이의 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베로니카의 모친인 포드부인과 에이드리언 사이의 아이로 드러나면서
독자로 하여금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고, 거기에서 독자들은 탄성을 내지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이해력 떨어지는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좋겠는데,
내가 생각할 때 말이 안되는 장면들은 이러한 것이다.
① 토니가 보낸 저주의 편지로 인해 에이드리언은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보러간다. 아니, 독자들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시나?
내 친구의 옛여친을 내가 사귀게 되었는데, 내 친구가 빡쳐서 내게 저주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면 머리가 비상하지 않아도
이성을 잃고 분노와 적개심을 담은 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런 경우에 편지를 쓴 친구에게 조금 마음이 상할수는 있겠지만
그 편지의 내용을 좇아서 내 여자친구가 이상할지도 모르니 그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내 여자친구에게 온갖 험담과 악담을 늘어놓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그녀의 사이코패스 기질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를 추궁하러 간다는 설정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② 여차저차해서 베로니카의 어머니를 만났다 치자. 사실 토니의 편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이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여친의 부모님이다. 그런데 여친의 어머니가 에이드리언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는다. 그리고 에이드리언은 덥죽 그 유혹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게 토니의 탓이다?
정말 말 같지도 않다. 그게 왜 토니의 잘못인가? 그리고 에이드리언은 소설의 시종일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게다가 약간은 (이것은 내 마음대로의 추측이긴 하지만) 타인에 비해 높은 초자아를 갖고 있을 법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 캐릭터의 사람이 여친의 엄마가 유혹한다고 넙죽 잠자리를 함께 한다? 후... 이건 무슨 개소리인가?
③ 포드 부인이 에이드리언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난 후,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포드가족, 즉 베로니카의 가족들은 모두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넋 놓고 그녀가 출산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나?
④ 포드 부인은 도대체 왜 토니에게 유산, 그것도 500파운드라는 애매모호한 돈을 남겼나?
⑤ 내가 베로니카라고 상상을 한 번 해보자. 내가 새롭게 사귀게 된 내 남친이 어느 날 나의 엄마를 만나러 나 몰래
우리 집을 찾았다. 그리고 엄마는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내 남친은 자살을 했다. 굉장한 충격이다.
아마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은 모두 엉망진창인 삶을 살게 된다. 아버지도, 오빠도.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낳은 25살 이상 터울의 내 동생을 키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나의 옛 남친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편지에는 온갖 악랄한 저주가 씌어있다. 물론, 그 편지를 에이드리언이
처음 받은 시점에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가 함께 읽었을 수도 있고, 한참 후에 발견되었을 수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나, 베로니카가 이 모든 사단이 토니의 잘못이야, 라고 생각하며 토니를 원망한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내가 베로니카라면 가장 먼저 에이드리언에 대한 배신감이 가장 클 것이다. 아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의 엄마와
잠자리를 할 수 있단 말야. 그리고 그 다음 분노할 대상은 엄마다. 아마, 그런 배경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베로니카의 엄마는
원래 정신적인 질환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어느 날 문득 딸의 남친을 유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혹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내 남친을 유혹하고 임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출산을 강행했다.
이런 엄마를 용서하는 것 또한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어떻게든 이 분노를 투사할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 대상이 토니가 될 순 있다. 감정적으로, 상황적으로 거기에 이해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베로니카도 매우 철학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게 토니의 편지
때문이라고?
⑥ 포드 부인은 도대체 왜 아이를 출산했나?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갖게 된 아이였고, 나아서 키울 수 있는 형편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 모든 설정이, 내가 느끼기엔, 작가가 극적인 연출을 만들어내기 위해 억지설정으로 만들어 놓은 아주 조악한 구조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흡사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사랑하는 이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이고, 어쩌고 저쩌고를 보는 기분이다.
책의 1부에서 나오는 에이드리언과 교수들의 대화, 그리고 간간히 등장하는 몇 구절들은 형이상학적이고 메타포적인
성격을 갖는 구절들이라 무언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글쎄... 이 책이 정말 그렇게 뛰어나고 위대한
소설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궁금한 것은, 굳이 이렇게 억지 상황을 연출하며 포드 부인과 에이드리언 사이의 자녀를 만들어야 했었나? 하는 점이다.
이미 토니의 편지가,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쿨하지 않았다는 점 만으로도 소설의 주제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텐데 말이다.
포드 부인과 에이드리언이 아기를 갖지 않았다면 이 소설이 주는 매력이 떨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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