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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use/Christian archive

사랑, 그리고 율법

재도담 2014. 1. 14. 16:10

성경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이웃을 사랑하라"로 함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문장은 서로 다른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길,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당신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는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 둘은 하나가 다른 하나에 선행되어져야 할 것이 아닌, 실제로 정말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남을 사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를 알지 못하더라도 타자를 자기 사랑하듯이 사랑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는 예수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이기심이 크고 교만하기 때문에 역할모델이 필요하다. 그가 바로 예수다. 

예수는 우리가 남을 사랑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준 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남을 사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어떤 율법이나 종교적 행위도 의미가 없다. 

나의 종교적 행위나 영성이 남을 사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순번을 매기는 데 쓰인다면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우리의 기도, 성경읽기, 묵상, 암송, 전도, 예배, 찬양과 같은 모든 행동들이,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미신적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의 열매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란, 

작게는 나 자신부터 시작하여, 나의 가족, 직장동료, 동네 이웃, 대면하는 고객들, 

넓게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회 구성원들, 같은 나라 국민, 전 인류를 포함하고, 

궁극적으로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을 포함해야 한다. 


우리가 성인聖人의 반열에 이르러 돌뿌리나 구름 한 조각까지 사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서 내 배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든, 실패하고 가난해서 내게 손만 벌릴 사람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빨갱이든, 수구꼴통이든, 

겉모습이 휘황찬란한 사람이든, 꾀죄죄하고 냄새나는 사람이든, 

내가 굽신거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든, 수족처럼 부릴 내 밑의 사람이든, 

내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든, 내게 뺨을 후려갈겨서 이를 갈게 만든 사람이든, 

내 눈 앞에 있는 그이를 사랑하지 않고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거나 예수를 따른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며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는 하등 상관없는 것, 

또는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율법이나 규율이나 죄의식이나 규범은 

예수가 3년반 공생애 기간동안 그토록 경계하고 주의하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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