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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험

재도담 2021. 4. 28. 18:50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내려오는데, 환자가 한분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오후엔 진료가 없어서 그냥 지금 진료를 보자고 했다.

내게 당뇨관리를 받고 있던 67세 여자분이었는데, 

얼굴을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지고 온몸이 까맣게 변했다. 

최근 대학병원 정형외과에서 어깨 시술(?)을 받았는데, 뭔가 투여되고 나서 쇼크가 왔다고 한다.

곧바로 중환자실에 들어가 며칠을 혼수상태로 지냈고

이후에도 일반병실과 중환자실을 서너 차례 왔다갔다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3개월만에 내원하셨는데, 

보고싶었다고.., 천과장님 못보고 죽는줄 알았다고, 이렇게 살아서 얼굴 보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우신다. 

순간, 너무 당황했다. 

살아서 기쁜건 알겠는데, 내가 그분의 목숨을 살려드린것도 아니고, 

내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오신 것도 아니다. 

그냥 원래 처방받으시던 당뇨약 처방 받으러 오셨을 뿐이다. 

그런데 나를 보고 펑펑 우신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 분이 왜 나를 보고 우시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 분이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죽기전에 보고 싶은 사람으로 주치의를 떠올리진 않을텐데,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나도 내가 만나는 고객들을 늘 가족처럼 생각하고 대하지만, 

진료실을 벗어나 일상생활 가운데 그분들을 그리며 지내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분은 나를 믿고 신뢰할만한 주치의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정말로 가족으로 여기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오히려 내가 감동을 받았다. 

내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의지하고 가깝게 여기시나, 하는 마음에 감사와 송구함이 생긴다. 

너무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많은 나지만, 이렇게 나를 아껴주시는 고객분들이 계셔서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서는 의사라는 직업이 조리돌림 당하고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뵙는 고객과 환자들은 하나같이 고맙고 착한 분들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살자, 하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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