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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사회과학] 본문

Report of Book/사회

(2017-02)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사회과학]

재도담 2017. 1. 8. 22:07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다니엘 튜더 저, 송정화 역, 문학동네, 232쪽. 


부제는 <서양좌파가 말하는 한국정치>.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던 저자가 한국에 대해 느끼고 고민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읽으며 많은 부분 공감하고, 내가 미처 인정하지 못했던 진보진영의 잘못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무척 유익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자유로운 언론, 비정치적 공공기관, 정치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민, 신뢰할 수 있는 공정 선거, 막강한 이익집단의 과도한 개입에 휘둘리지 않는 의사 결정 구조 등 다양한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시민의 의식 수준에 걸맞는 정치인을 갖게 마련이다. 정치인들이 선거유세에 쇼를 보여주는 행위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민주 시민이 나서서 "이제 그만!"이라고 선언하고 후보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한국 우파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종북'과 '좌파'를 한데 묶어 '종북좌파'로 매도하고, 일반 대중의 감성이나 필요에 영합해 표를 얻는 '포퓰리즘'을 제멋대로 정의하여 특권층의 희생으로 다수의 국민을 이롭게 하는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진보 언론은 정부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의 성향을 강화시킬 뿐이다. 이대로는 KBS 뉴스처럼 미묘하게 편향된 주류 언론에 영향을 받는 중도 유권자층을 설득할 수 없다. 정말 효과적인 정부 비판 언론이 되려면 진보적이되 합리적인 관점에서 때로는 정부를 칭찬할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건강, 생활, 음식 같은 주제처럼 비정치적인 '소프트'한 내용도 보강해야 한다. 지적이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미디어를 지향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대기업 우선주의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시장이 존재한 적이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앞으로도 그것이 영영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겨도 금세 대기업 차지가 되며, 대기업의 독주에 방해되는 존재들은 금세 박살나고 만다. 전경련은 자유시장이란 미명 아래 자유방임정책을 끊임없이 옹호하지만, 실제로는 수년에 걸쳐 합법적 또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경쟁을 제한해왔다. 한국의 사이비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정부가 허가해주는 독과점 혜택을 누려왔고, 막대한 규모의 정부 계약을 따내고 국민의 혈세로 제공되는 전기 사용료 등의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사회에 기여하라는 요구에는 사회주의 운운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국민을 위해 복무하지 않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국회의원을 비판하는 것도 좋지만 잘하는 정치인을 칭찬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정치인을 모두 싸잡아 단일 집단으로 간주하고 성급하게 판단할 것이 아니라 개별 인간으로 따로따로 평가해야 한다. 

야당의 문제점. 네거티브는 난무하지만 정책과 전략이 없다. 빈곤층에 대한 자비로움을 강조해봤자 효과가 없고, 빈부격차로 인한 계급 갈등 이야기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성공 지향적인 한국 사회에서 진보 진영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부자를 벌하는 정책이 아니라 진보적이되 유권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포지티브 선거가 가능하려면 더 나은 나라를 위한 비젼을 제시하는 정책 기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새정치연합은 차기 정부라기보다는 만년 야당처럼 행동한다. 만년 야당처럼 행동하면 야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새정치연합의 비극이다. 

많은 한국인이 외신 보도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진보는 새누리당과 대기업에 못지 않을 만큼 외신과의 소통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많은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새정치연합 의원의 70퍼센트는 대규모 예산이나 인력을 관리해본 경험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경험이 있다 해도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을 정도의 경험일 뿐이다. 대부분은 예산이나 인력을 관리할 필요가 전혀 없거나,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시장의 힘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관리할 뿐이다. 

햇볕정책은 여당과의 차별성을 갖는 유일한 정책이고 괜찮은 정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자국민에게 저지르는 북한 정부의 만행을 규탄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북한 정부 입장에 서서 변명을 늘어놓는 것도 용인하면 안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들이다. 새정치연합은 햇볕정책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필요할 때 더욱 강력하게 북한 정부를 비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유린 문제를 직시하고 탈북자를 배려해야 한다. 

영국이 현재 겪고 있는 소득과 기회의 불균형, 빈곤, 복지 의존 등의 문제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방에 있던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임시직과 단순 서비스직이 그 자리를 메운 결과다. 산업기지를 신흥 국가에 내준 영국과 미국에는 대규모 실업, 범죄, 사회 분열, 잠재력 있는 인재의 낭비 등 암울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스위스나 독일 같은 나라를 본받아 고급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의 동반 발전을 추구하지 않으면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대처주의의 영향으로 부자와 빈곤층의 사회·경제적 간극, 엘리트 계층과 보통 사람의 격차가 벌어졌으며 런던과 나머지 지역의 불균형적인 성장이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다. 
서비스 부문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고용 효과가 크다. 하지만 연장자들은 보통 조기 퇴직 제도로 '멀쩡한' 일자리에서 밀려난다. 게다가 애처로울 정도로 비생산적이다. 서비스업은 부가가치 창출이 제조업의 56퍼센트 수준이다. 
독일에서는 직원 수는 유지하되 양질의, 하이테크 제품을 예전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있다. 독일의 생산직 근로자들은 로봇으로 대체되는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로봇을 활용하며 작업하는 고숙련 인력이다. 독일이나 스위스는 제조업, 서비스 산업 중 하나만을 고집하고 이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업과 제조업 부문 모두에서 고부가가치를 추구한다. 
미국·영국식 모델에서 스위스·독일식 모델로 선회하려면 문화, 교육, 경제 방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하지만 목표의 절반만 달성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헤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고용 안정과 상당한 수입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신까지 세워줄 수 있을 때 생산직 일자리 기피 현상이 완화될 수 있다. 기술적 역량과 브랭딩에서 한국 산업이 스위스나 독일에 도전장을 내고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만 가능하다. '메이드 인 코리아'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중앙 정부는 미래 성장이 주목되는 특정 산업을 선정하는 일뿐 아니라 창원과 같이 위험에 처한 도시의 상황을 파악하고 R&D 보조금 지급과 세제 감면 혜택 등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정부 지원금은 대기업이 아닌 한국식 '미텔슈탄트' 양성에 집중되어야 한다. 미텔슈탄트는 독일의 중소기업을 뜻하는 말이다. 독일, 일본, 대만에는 주요 기업에 첨단 필수 부품을 납품하는 하이테크 중소기업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정부는 잠재력 있는 기업에 투자하고, 나중에 그 기업들이 성공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지분을 받아야 한다. 
뛰어난 공학박사들의 두뇌 유출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투자금을 지급해 이들의 창업을 지원해야 한다. 제품 사양뿐 아니라 디자인도 성패를 좌우하므로 벤터기업이 재능 있는 산업 디자이너를 고용할 수 있도록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합리적인 가격 수준의 디자인 컨설팅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한국의 두뇌를 십분 활용해 원천기술 부문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제조업 일자리의 미래를 고려할 때, 한국의 노조 또한 스스로의 역할을 반성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대규모 임금 인상을 요구해 공장 폐쇄로 이어지고, 그 결과 노조 가입원이 아닌 다른 빈곤한 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모습을 보면 매번 실망스럽다. 독일에서는 노사정 당사자가 합리적인 타결안을 마련하기 위해 서로 협조한다. 한국에도 이런 자세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한국이 살아가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복지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좌우 모두 똑같이 복지를 '공짜로 주는 시혜'로 제시하고 있다. 복지를 시혜로 제시하는 것은 우파에게 딱 들어맞는 프레임이지만, 좌파는 잘못된 복지 프레임으로 또한번 제 발등을 찍고 선거에서도 패한다. 정치권이 적절한 경쟁구도를 회복하고 복지를 대대적으로 확충하면 한국에 많은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다. 한국은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에 대한 열망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분배를 논하는 복지 담론은 통하기 어렵다. 
한국은 출세 못한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성공 지향적 사회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실업수당은 영원한 공짜 수입원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복지에 대한 메세지는 '복지는 정부가 여러분에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투자를 통해 여러분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나중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해서 돌려주십시오.'라고 전달되어야 한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책도 기본적으로 모든 신생아는 미래의 납세자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같은 맥락에서 공공보건 서비스를 확대하고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 그들이 조속히 일에 복귀하고 세금을 납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실직한 사람들이 절망적인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실업수당을 제공해 실직 가정 자녀들의 삶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모습을 지켜보자. 복지는 투자라고 불러야 한다. 북유럽 국가의 노동 참여율이 높은 것은 육아 및 노인 인구 부양에 대한 정부 지원금, 관대한 병가제도,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대중교통 등이 뒷받침되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복지는 고수익 투자다. 
은퇴 이후에도 몇십 년은 더 일할 수 있는 경륜을 갖춘 인재를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노인에게도 합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면 국내 관광, 보건, 레저 등 연관 산업도 함께 성장할 것이다. 50-60대가 세운 협동조합이나 기업에도 정부가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 대신 기업가에게 관련 프로그램 운영을 맡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성인력 낭비 문제 또한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한다. 안보 뿐 아니라 안전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대기업 개혁은 어설프게 감성에 기댈 것이 아니라, 냉철한 경제 용어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