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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7)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사회] 본문

Report of Book/사회

(2016-27)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사회]

재도담 2016. 9. 16. 10:45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다나카 유│가시다 히데키│마에키타 미야코 저, 이상술 역, 알마. 


어디 한 군데 뺄 게 없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픈 책이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은, 이 책이 일본인들에 의해 씌어진 일본책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자기 반성적이고, 자국의 국제적 피해사례를 지적하는 글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흔히 먹는 초코렛은 카카오를 가공하여 만든다. 카카오 농장에서는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에서 팔려온 5세 이상의 아동들이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해서 초코렛을 만든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선 가난으로 인해 자식을 을 단돈 몇 만원에 팔고, 그렇게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농장에서 열심히 일 하지 않으면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기를 40분씩 하는 벌을 받기도 한다. 학교 교육을 못받는 것은 물론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아이들을 구해 줄 수 있을까? 간단하게 한가지만 말하자면, '공정 거래 무역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주고, 아동착취를 하지 않는 농장에서 만들어진 초코렛을 사먹는 것이다. 일반 초코렛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싸긴 하겠지만, 이렇게 공정 거래 무역 제품의 이용이 늘어나면 공정 거래를 하려고 하는 농장들을 늘릴 수 있고, 그것이 아동들을 착취와 가혹한 노동으로부터 구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 

팜유를 이용하여 만든 여러 소비재들은 '친환경적'이라고 광고된다. 생활폐수로 방류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환경을 덜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친환경적이라는 말은 물건을 소비하는 측에서만 바라 본 관점이다. 생산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다.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는 기름야자 플랜테이션을 개발하고 있는데, 팜유를 개발하는 기업들은 마을과 자연림을 전부 밀어버리고 오로지 기름야자 나무 한 가지만을 심는다. 숲이 짓밟히고 사람들이 마을에서 쫓겨나는 과정에서, 개발 반대를 부르짖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공권력이 투입되고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말레이반도는 기름야자 플렌테이션의 역사가 오래된 곳인데, 여기서는 기름야자에 농약을 살포하기 위해 아무런 보호장구나 주의사항도 듣지 못한 주민들이 농약으로 인해 몸에 각종 질병과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 손톱 변형, 코피, 기관지염, 유산 뿐 아니라 실명하거나 사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플렌테이션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는 기존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플렌테이션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온 가족이 모두 매달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수입만 보존받는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가능하면 수입하지 않고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기름, 즉 쌀기름이나 유채기름, 참기름 등의 사용을 늘리고, 세제보다는 비누를 사용하고, 환경과 인권을 생각하는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된 팜유만을 쓰는 기업을 찾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 

플랜테이션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상품작물이라 불린다. 이것은 수출하기 위해 기르는 것으로, 현지에서는 전혀 유통되지 않는다. 이익은 모두 선진국의 본사로 보내지며, 지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한편 기름진 땅이 플랜테이션에 파격적인 값에 팔려 지역의 농민은 땅을 잃고, 끼니마다 먹는 작물을 기를 수 없게 되어 해외에서 농산물을 수입해야 한다. 
파키스탄의 농촌 마을에서는 플랜테이션 때문에 토질이 건조해지고, 중앙아메리카의 에콰도르에서는 새우 양식 때문에 맹그로브 숲이 벌채된다. 아마존에서는 콩 재배 때문에 숲이 파괴되며, 인도네시아에서는 팜유 때문에 열대림이 대규모로 불태워지고 있다. 상품작물은 그 나라의 농업 뿐 아니라 환경까지 파괴하는 것이다. 
상품작물로 인해 현지 농민의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주장이 있지만, 현실에서 상품작물은 항상 공급과잉이라 국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대규모 플랜테이션만이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고, 작고 힘 없는 농민은 무너지고 있다. 농민들은 땅을 팔고 도시로 들어가거나, 가진 땅 없이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상품작물의 예에서 보듯, 현재의 세계경제는 선진국은 점점 잘 살고 개발도상국은 점점 가난해지게 되어 있다.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의 석유, 광물, 토지 등 여러 자원을 엄청나게 싼 가격에 사들이고 현지 사람들을 싼값에 부려 먹음으로써 값싼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한다. 그렇게 생산한 것을 세계 곳곳에 뻗어 있는 판매망을 통해 팔아 많은 이윤을 남긴다. 그 결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빈부 차이는 해마다 커져서, 1960년에 30대 1이었던 것이 2002년에는 114대 1까지 벌어졌다(<인간개발보고서2002>, 국제연합개발계획). 

생산지에서 직접 가져온 농산물만으로 가정의 식탁을 꾸리기는 어렵겠지만, '쌀만은' '제철 과일만은' 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지에서 무농약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먹는 지산지소 운동은 지역의 농업과 유기농업을 도울 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과도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필요한 것만을 신중하게 사고 남기지 않도록 신경써서 음식물 쓰레기를 없애면 식량 자급률이 8% 높아지고 가계 부담도 줄어든다. 나아가 아주 많은 양의 곡물을 들여 생산하는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 중심의 식생활로 바꾸면 자급률을 20%나 늘릴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빚을 갚을 수 없는 나라들에게 절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지 말라고 부탁하면서 우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구제금융) 국제통화기금이 정한 경제정책을 펴게 했다. 이때 빌려준 돈은 거의가 공적 자금, 즉 주로 세금으로 만든 자금이었다. 채무국은 그 돈으로 민간은행에 빌린 빚을 갚았다. 실상은 가난한 나라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세금으로 민간은행을 도와준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이 편 이 경제정책을 '구조 조정 정책'이라 하는데, 역사도 문화도, 정치도 경제규모도 서로 다른 개발도상국에 이상하게도 똑같은 내용이 적용되었다. 
▶ 상품작물(커피, 코코아, 사탕 등)의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를 만든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한다. 예를 들어 일본이 엔화를 평가절하하면 '엔저'가 되어 수입품은 비싸서 사기 어려워지는 반면, 수출품은 값이 떨어져 많이 팔리기 때문에 무역 흑자가 생겨난다. 그 돈으로 빚을 갚게 한다. 
▶ 정부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교육, 의료·보건 예산을 줄인다. 식량보조금이나 농업보조금을 없애고 공공기업을 민간에 판다. 그 돈으로 빚을 갚게 한다. 
▶ 해외 투자를 통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해외 기업으로부터 자본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하고, 그 기업이 이익을 본국으로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게 한다. 동시에 금리를 높여 해외 투자가들에게 매력적인 환경을 만든다. 
이런 정책의 목적은 채무국이 외화(달러나 엔 등 해외의 힘센 돈)를 벌어 빚을 문제없이 갚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빵과 기름 값, 교통비가 폭등하고, 학교와 병원이 유료화되었다. 소규모 농가들은 보조금이 끊기고 높은 이자 때문에 돈을 빌릴 수도 없어 도시의 빈민촌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식량을 자급하던 나라의 대다수가 수입국으로 전락해 가난한 사람들은 식료품조차 살 수 없게 되었다. 목재나 광물자원이 마구잡이로 개발되어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파괴되었다. 수많은 공무원이 해고되어 실업이 늘어났다. 수도 사업이 다국적기업에 팔려 수도 요금이 폭등하는 한편 깨끗한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났다. 
한편으로 원료의 종류는 많이 않은데 몇 십 개나 되는 나라가 같은 품목을 수출하기 때문에 수출 가격이 폭락하고 말았다. 생산량을 줄여서 가격을 올리면 되지만, 빚을 갚기 위해 생산을 늘려서 적자를 메우려 했기 때문에 가격은 계속 내려가게 되었다. 구조 조정 정책 때문에 빚을 갚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이다. 그 모자라는 만큼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부담으로 메워지게 되었다. 
1980년에는 전 세계에 5억 명(9명에 1명꼴)이었던 절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은 12억명(5명에 1명꼴)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평균수명이 늘어났지만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채무국 18개 나라에서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 가운데 평균수명이 40세도 채 되지 않는 나라마저 있다. 유니세포의 추산으로는 5세 이하의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3초에 1명꼴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또 각 나라 안에서도 빈부 차이가 커지고 있다. 빈곤은 '채무에 의한 대량 학살(제노사이드)'이라 일컬어진다. 채무는 지뢰나 천재지변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문명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인식과 감각을 '현실'에 가깝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분명 현지에 가서 그 사람들과 같은 체험을 하는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커밍아웃하고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온 만델라 씨의 이야기가 끝나자 젊은 여성이 손을 들고 물었다. 
"당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또 세계에서 가장 바꾸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반대로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배를 주린 채로 잠드는 어린아이가 한 명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바꾸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이 신념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다양성입니다. 모두 있어야 할 까닭이 있어서 있는 것이고, 모두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손가락과 같죠. 다섯 손가락은 모두 다르지만, 합치면 하나의 손을 이루어 큰 힘을 냅니다." 

현장을 아는 것은 현실에 기초한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데 꼭 필요하다. 더구나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현장을 아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번 스터디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에이즈 문제는 만델라 씨와 그 동료들이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관심과 겹치는 문제가 되었다. 단 며칠만이라도 하루 2천원 아래로 생활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망설임, 우월감 또는 죄책감, 또는 감동. 솟아오르는 그런 감정에 마주해 보면 어떨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 그 관계가 만들어질 때, 다른 사람과, 세계와 어떻게 마주할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자라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 자신도, 세계도 함께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지에 친구가 있으면 대중매체가 주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친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직접 현지를 찾아가 보고 나서, '남쪽'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선진국의 일방적인 원조가 아니라 공정한 교류와 자립을 위한 지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계를 뒤덮고 있는 가난과, 남반구와 북반구의 격차 문제는 너무나 심각해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하고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분쟁과 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공부하다 벽에 부딪히게 된다면, 현지에 친구를 만드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 살고 싶은 세계를 만들어 갈 때,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좋은 원동력이다. 

'자선보다는 공정무역을

가능하면 자국내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사용하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제철 채소와 과일을 먹는다. 이것도 개발도상국을 해치지 않는 좋은 방법이다.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히말라야의 라다크에는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도로가 생기고 늘 가지지 못하는 물건이 있는 소비생활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느끼게 된다. 세계적인 소비생활이 아닌, 지역에 뿌리 내린 생산과 생활을 지원해야 한다. '오래된 미래'를 향해서. 
이 거친 자연환경에서도 사람들은 넉넉하게 살아간다.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은 사막처럼 건조한 이 지역에서 여름 도비교적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준다. 형제가 1명의 아내를 공유하는 일처다부제는 상속으로 인한 농지의 분할을 막을 수 있었다. 한 집에서 1명은 승려가 되어 독신으로 살아가는 관습은 인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이바지했다. 오랜 농한기에는 정신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종교 행사가 치러진다. 빈부 차이도 거의 없고, 누구나 자신이 지은 흰 집에서 살 수 있었다. 이웃이나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힘을 모아 해결했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사람들은 서로 돕고 자연을 해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 라다크에도 1975년부터 '근대화'와 '발전'의 물결이 빠르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때 라다크의 개발을 담당한 사람이 우선적으로 중점을 둔 것은 라다크 사람들이 욕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라다크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 즐거움과 여가를 희생하는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발 정책과 외국인 관광객, 광고, 영화의 영향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 갔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고 가난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빈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점점 돈이 필요해졌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전통과 관습은 학교 교육에서 무시되고 부정당했다. 서양 의학을 배운 의사들이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노숙자가 생기고, 환경오염도 생겨났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 사이에 점점 사고방식의 차이가 커지고, 사람들은 안정을 잃고 열등감과 비참함을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사실 이것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서양에 의한 식민화와 노예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잘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가지기 위한 구조다. 

"문제는 빈곤이 아니라 사회의 불공정, 인간의 착취, 재력을 과시하기 위한 소비, 그리고 자연에 대한 약탈이다. 부유함이야말로 문제이며, 빈곤은 그 해결책인 것이다."(사티시 쿠마르) 

피상적인 개발을 다른 나라에 강제하는 것도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는 일이다. 현지 주민들과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뜻으로 이루어 가는 개발, 그곳에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을 키우며 밖에서 강제하는 개발이 아니라, 그곳에 이미 있는 것을 살려 나가는 개발이 필요하다. 

경제의 지구화가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주고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그것을 넘어서는 길은 지역화에 있다. 지역화란 생활과 생산을 가능한 한 지역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며, 가까운 지역과 그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환경적, 문화적 특질을 지닌 지역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또한 지역화는 경제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 작은 경제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경제와 사회의 자율성을 되찾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비와 지혜를 일깨우는 것이다. 

흔히들 미개한 시대의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그 때문에 이주를 하거나 문명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내가 본 한에서, 이른바 '미개'한 사람들의 생활은 충분히 풍족하며, 숲이나 강이 파괴되지 않는 한 굶주림은 생각할 수 없다. 숲에는 언제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고, 바다와 강은 그들이 찾는 것을 준다. 친구인 어부는 "바다는 우리에게 은행이지. 바다에 가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으니 말이야."하고 이야기한다. 
보르네오 섬의 원주민은 기름야자 플랜테이션 때문에 숲이 파괴되어 가난해지고 말았다. 더는 숲에서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통계의 수수께끼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가난해졌는데도 국민총생산은 늘어났다. 먹기 위해 일하면 그것이 국민총생산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자연에서 채집한 산물로 살아갈 때는 0이었던 국민총생산이 먹을 것을 돈으로 사게 되면 늘어나는 것이다. 생계가 자급적으로 이루어질수록 생활은 안정되지만 국민총생산은 늘어난다. 반대로 생활이 불안정할수록 국민총생산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원조의 기준은 '1인당 국민총생산이 적은 나라'에 '국민총생산을 높이기 위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땅과 이어져 있던 삶은 뿌리가 뽑히게 되고, 빈곤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원조가 아니라 '덫'이다. 

필리핀의 모내기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굉장한 빠르기로 진행되는 율동적인 노래였다. 그 노래는 모내기 때밖에 부를 수 없다. 모내기를 하지 않으면 그 음악을 즐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생활을 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놀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일과 놀이가 서로 섞이고 녹아 있다. 그렇게 일하기 때문에 피로감도 거의 없다. 피곤하다는 것은 누군가가 시켜서 한다고 생각할 때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의 이면을 이루는 빈곤의 존재는 우리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가해자가 되지 않는 길은 피해자가 되는 것도, 피해자인 척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생활을 지역화하고 생활의 많은 부분을 지역 속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자립적인 생활은 남의 지시 때문이 아닌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일이다. 고통으로 얼굴을 찌뿌리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 자신이 발 디딘 곳을 단단하게 다짐으로써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 된다면, 살아가는 일 자체가 즐거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운동은 즐거워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빈곤은 부유한 나라가 만든 세계 구조의 문제다. 그러므로 현실의 '빈곤'에 대해 알리는 것 이상으로 '빈곤을 낳는 구조'를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