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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의 대가

재도담 2026. 9. 14. 09:21

미국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제조업을 포기했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국은 압축 고도성장을 위해 대기업 중심 체제를 택하며 중소기업을 포기했고, 그 대가로 의대 광풍이라는 기형적 현상을 만들어냈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달러가 전 세계에 풀려야 한다. 달러를 풀려면 미국은 꾸준히 무역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그러려면 공산품을 대량으로 수입하며 수출 경쟁력 강화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이 구조가 반세기 가까이 이어지면서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은 서서히 무너졌다. 문제는 이제 와서 제조업을 되살리려 해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숙련 노동자는 세대를 건너뛰며 사라졌고, 공급망과 제조 기술의 축적도 끊긴 지 오래다. 정책적 의지만으로 복원할 수 없는, 시간이 만들어낸 손실이다.

한국의 경로는 다르지만 구조는 닮아 있다. 압축적 고도성장을 위해서는 제한된 자원을 소수의 주체에 집중시키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정부는 대기업에 일감과 금융, 각종 특혜를 몰아주었고, 국내 기업 간 경쟁을 억제하며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위협할 만큼 성장하는 길을 음으로 양으로 막았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의 대기업들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성장의 이면에서 건실한 중견기업군을 길러낼 기회는 포기되었고, 중견기업들이 만들어냈을 대규모의 안정적 일자리 역시 함께 사라졌다.

그 공백은 지금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확인된다. 대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전체 고용 규모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마저도 임원 승진이라는 좁은 문 앞에서 대다수가 밀려난다. 조기 퇴직한 이들은 별다른 전문성 없이도 뛰어들 수 있는 요식업 등 자영업으로 흘러가고, 그 결과 자영업 과밀과 과당경쟁이라는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중소기업 역시 대기업의 압도적 자본력과 시장 지배력 앞에서 아이디어를 빼앗기거나 협상력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혁신의 유인이 구조적으로 억눌리는 셈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희소해진 사회에서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경로는 급격히 좁아졌다. 그 결과 재능과 적성을 가리지 않고 수험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어느 사회에서도 보기 드문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의학에 대한 순수한 열망의 결과라기보다, 다른 안정적 상승 경로가 소진된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에 가깝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할 때, 그 대가는 당장은 작고 가볍게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포기는 처음의 선택보다 훨씬 크고 되돌리기 힘든 힘으로 사회를 되짚어온다. 미국의 탈제조업화와 한국의 의대 쏠림은, 얼핏 무관해 보이지만 같은 교훈을 가리키고 있다.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결국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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