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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망해야 나라가 산다

재도담 2026. 9. 10. 12:16

나는 의사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사라는 직업이 폭망해야 이 나라가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곱씹을수록 진심이 된다. 몇 가지 측면에서 그 이유를 풀어보려 한다.

1. 입시지옥이 만든 기형적 인간

의대에 가기 위해 N수는 이미 기본값이 되었다. 재수, 삼수를 넘어 4수, 5수까지 마다하지 않는 학생들이 흔하고, 이미 다른 대학에 합격하고도 자퇴한 뒤 다시 수능에 뛰어드는 '반수생'이 매년 늘어난다. 심지어 의대 정원이 확대된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카이스트, 포스텍 같은 최상위 이공계 대학의 자퇴생 수가 치솟았다는 통계가 반복해서 보도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청소년기가 통째로 증발한다는 데 있다. 원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은 실패하고, 방황하고, 다른 길을 기웃거리며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시기여야 한다. 그런데 의대 입시라는 단일 목표 아래에서는 그런 시행착오가 전부 '낭비'로 취급된다. 남는 것은 오직 문제풀이 기술, 등급을 깎아 먹지 않는 효율적인 공부법뿐이다. 사고력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실수하지 않는 능력이 인재의 척도가 된다.

더 심각한 건 이 모든 과정이 '정답이 하나뿐인 사회'라는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각인시킨다는 점이다. 의대는 정답이고 나머지는 오답이거나 차선책이다. 이런 이분법 속에서 학생들은 승자와 패자로 극단적으로 나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병들어간다.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건수가 매년 증가하는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 살인적인 입시 구조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삶의 리듬을 박탈당한 아이들이 정상적인 어른으로 자라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2. 다양성의 실종

조금이라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예외 없이 의대를 1지망으로 쓴다. 그 결과 의대의 커트라인은 해가 갈수록 치솟고, 정작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이 되어야 할 이공계 학과들―물리학과, 전자공학과, 화학과, 심지어 반도체·인공지능 관련 특성화 학과까지―의 합격선은 오히려 낮아지는 역설이 벌어진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쏠림은 곧 나머지 모든 분야의 인재 공동화로 이어진다.

한 사회가 건강하게 굴러가려면 물리학자도, 공학자도, 법률가도, 예술가도, 창업가도 고르게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똑똑한 학생들 대부분을 단 하나의 직업군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이건 개인의 선택 총합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라고 넘기기엔, 국가 인재 배분의 관점에서 명백한 비효율이자 왜곡이다.

3. 의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기여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분명 혹독하다. 6년의 의대 과정,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는 기나긴 수련, 전문의 시험까지 합치면 어지간한 다른 전문직보다 훨씬 긴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 자원과 개인의 청춘을 쏟아부어 만들어진 인재가 정작 국가나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를 냉정히 따져보면, 그 투입 대비 산출은 초라한 수준이다.

물론 의료는 필수적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사회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필수적'이라는 것과 '국가 발전을 견인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신약 개발, 인공지능처럼 국가 경쟁력을 실제로 밀어올리는 영역에 최상위 인재가 투입되었을 때와, 그 인재가 동네 의원이나 피부미용 시술로 흘러갔을 때의 사회적 산출은 전혀 다르다. 개원가에서 보톡스와 필러, 탈모 클리닉이 성행하는 현실은 개별 의사에게는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이겠지만, 국가 전체의 부가가치 창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최고의 두뇌들이 수십 년째 이런 구조에 갇혀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이 나라가 치르고 있는 기회비용이다.

4. 쏠림의 원인과, 불편하지만 유일한 해법

그렇다면 왜 이런 쏠림이 생기는가. 답은 단순하다. 일반 국민이 체감하기에 의사와 다른 직업 사이의 삶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소득, 고용 안정성, 사회적 존경, 정년 없는 개원의 자율성까지, 의사라는 직업이 제공하는 삶의 총합적 안정감을 따라올 직업이 마땅치 않다.

이 격차를 줄이는 방법은 이론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다른 직업군의 소득과 삶의 질을 의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의 삶을 다른 직업군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전자가 이상적이지만, 대한민국의 산업 구조와 재정 여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중소기업 연구원의 처우를, 스타트업 개발자의 고용 안정성을, 기초과학 연구자의 사회적 존중을 의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수십 년의 구조 개혁과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반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빠르고 직접적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 공급을 확대하고, 개원 규제를 손보고, 필수의료가 아닌 영역의 초과 수익 구조를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격차는 줄어든다. 불편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더 빠르게 작동하는 레버다. 격차 해소가 목표라면, 위로 끌어올리는 길이 막혀 있을 때 남는 선택지는 아래로 맞추는 길뿐이다.

결론

아이들은 단 하나의 정답을 향해 청춘을 갈아 넣고, 그 정답을 손에 쥔 사람들은 사회 발전과는 무관한 자리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며, 정작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분야들은 인재 기근에 시달린다. 이대로 가면 의대에 가지 못한 아이도, 의대에 간 아이도, 그 부모 세대도 결국 다 함께 망가지는 구조로 수렴할 것이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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